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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용어의 탄생 - 역사의 행간에서 찾은 근대문명의 키워드
윤혜준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1월
평점 :
「이 책은 ‘근대문명의 키워드’인 말의 역사를 다룬다.」 _머리말
#근대용어의탄생
#윤혜준 지음
#교유서가
늘 느끼는 거지만 이번에도 교유서가의 책표지는 세련미가 넘친다. 조금 묵직한 이지미를 풍기는 제목과도 썩 어울린다. 근대문명의 키워드를 선정한 기준이 뭘까 궁금했는데 머리말을 펼치자마자 친절하게 알려준다.
「여기서 말하는 근대문명의 키워드는 전문학자들에게 중요한 용어가 아니라 ‘문명’을 구성하고 살아가는 모든 일반인이 자주 쓰는 말,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말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표현이다.」 _7
키워드는 ‘열쇠가 되는 말’을 뜻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말들을 「‘근대문명’의 내력과 내면을 살펴보고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라고 말한다.
-America(아메리카)
-business(비즈니스)
-capitalism(자본주의)
-competition(경쟁)
-constitution(헌법)
-consumption(소비)
-currency(통화)
-democracy(민주주의)
-empire(제국)
-enlightement(계몽)
-freedom/liberty(자유)
-industry(산업)
-law/justice/equity(법)
-machine/engine(기계)
-president(대통령)
-progress(진보)
-project(프로젝트)
-reasonable(합리적)
-reform/reformation(개혁)
-review(리뷰)
-revolution(혁명)
-transportation/traffic(교통)
-university/college(대학)
-utopia(유토피아)
대부분 흥미로웠지만, 꼭 소개하고 싶은 키워드는 ‘진정한 법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law/justice/equity(법)’, 요즘 대한민국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president(대통령)’,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review(리뷰)’ 세 가지다.
#law/justice/equity(법)
저자는 법의 사전적 정의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 국가 및 공공 기관이 제정한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따위이다.’를 언급하면서 ‘국가와 공공 기관 권력을 잡은 이들일 법을 자기들 뜻대로 주무를 여지를 열어 놓았다’고 말한다. 17세기 초 국왕 찰스 1세가 영국의 공통법을 무시하는 것의 불만으로 국왕에게 권리청원을 제출하는데 가장 주도적이었던 에드워드 쿡 경의 일침이 정말 사이다다.
「전하께서는 학식이 훌륭하고 타고난 역량이 뛰어나시지만 영국의 법을 깊이 공부하여 전하의 백성들의 생명, 상속, 물권, 운명 등과 관련된 문제들을 훤히 알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연 이성이 아니라 인위적 이성과 법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법을 파악하는 수준에 이르려면 오랜 공부와 경험이 요구됩니다.」 _157
이 에드워드 쿡 경의 반박문을 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듣기 좋은 사탕발림의 아부 말고 이렇게 쓰지만 옳은 소리를 해줄 누군가가 절실한 요즘이다. ‘법’을 정치 권력의 통치 행위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지만, 사실 고대 그리스에서 법을 이르는 말에는 ‘정의’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로마에서도 ‘법’의 또다른 이름은 ‘정의’를 뜻하는 ‘ius’였다고 한다. 우리 법은 과연 정의롭게 시행되고 있는 걸까?
#president (대통령)
대통령의 한자가 ‘큰 대大, 거느릴 통統, 거느릴 령領’이 합쳐져, ‘크게 거느리고 다스린다’는 의미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메이지시대에 일본인이 영어 ‘president’를 ‘大統領’로 번역해서 옮긴 말이라고 한다. 라틴어 praesident/praesidens는 조직을 대표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다스리는’ 통치의 의미가 아니라고 한다. ‘president’는 선출된 대표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인 ‘의장’ 정도의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거다. 대통령이 국민을 존중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마치 대통령을 왕권으로 착각하는 것이 일본이 만들어 놓은 ‘대통령大統領’이란 이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review (리뷰)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이 일상이 된 나는 리뷰라는 키워드에 단연 끌렸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리뷰’의 첫 대상은 인쇄 출판물이었다. review는 원래부터 ‘비평’이나 ‘평가’의 뜻을 포함하지 않았고 저자 스스로가 자기 글을 검토하고 다시 수정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18세기 초 대니얼 디포가 출간한 정기간행물 <프랑스 상황 리뷰 및 국내 사건들에 대한 관찰>로 인해 사람들에게 리뷰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친숙해졌다는 거다. 뒤에 이은 <먼슬리 리뷰>와 그 라이벌로 부상한 <크리티컬 리뷰>에서는 신간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글을 실었다. 20세기에 들어서 review는 책이 아닌 다른 문화 상품에 대한 평가도 review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각 키워드마다 큰 역사적 사건과 연결되어 있거나 사회적인 큰 변화를 겪으며 다른 의미를 포함하게 된 다양한 이야기가 엮여 있고, 문학 작품들 속에서 그 키워드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발췌해준 문장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세계사적 지식이 부족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같은 인물이나 같은 사건, 같은 단어들이 반복해서 나와서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존 로크나 애덤 스미스, 윌리엄 호가스, 샤를 드 몽테스키외란 이름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역사와 언어,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다.
#교유당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