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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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무게로안느끼게

#박완서

#세계사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 수록된 글과 미출간 작품을 포함한 46편의 글이 실린 책이다. 박완서 작가님은 어쩌면 안 보이는 눈과 코와 귀와 마음을 하나씩 더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같은 현상, 관계, 자연 등을 보면서도 보통 사람보다 더 자세히 보고 더 깊이 맡고 더 귀 기울여 듣고 더 진하게 느끼니 말이다. 그 민감함에 따뜻함에 다정함에 때론 날카로움에 폭 빠져 읽었다.

 

 

 

 

재 속에 밤이나 새끼 고구마를 파묻고 기다리노라면 이윽고 피식하는 싱거운 소리를 내며 말랑말랑해졌다는 걸 알려왔다._69

 

고구마를 호일에 돌돌 말아서 숯불 속에 구워 먹어본 사람이라면 다들 이 문장에 미소 지을 것이다.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런 묘사가 참 좋다.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 건 기독교 정신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신이고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이란 바로, 참으로 그리고 골고루 민주적인 사고와 생활 방법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이제 겉모양이 드높고 내부 장치가 으리으리한 고층 건물만 가지고 근대화를 뽐낼 게 아니라 그 속에 근대적인 정신을 담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_126

 

 

1979년에 작가님이 했던 고민, 2024년 현대에는 어떻게 변했나 곰곰 생각해 본다. 우리 민주주의는 자기 편할 대로의 민주주의 같아진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고, 겉모양을 중시하는 세태는 여전히 남아있어 씁쓸하다.

 

 

 

 

<특혜보다는 당연한 권리를>

 

나는 제대로 된 논리로 펼치는 비판을 좋아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개선을 위한 비판일 때 말이다. 박완서 작가님의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비판의 글이 참 좋다. 내 말대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여 고함치는 사람의 말을 따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다. 무게 있는 목소리를 통해 정돈된 논리를 가진 말을 사람들은 더 신뢰한다. 하지만 요즘 그런 사람들은 극히 드물고 목청에 대세를 맡겨 버리는 소극적인 태도가 나만 잘하면 된다는 개인주의적인 사고가 대세란 사실에 또 서글퍼진다.

 

 

폭력이 용기와 다르듯이 편견은 신념과 다르다. 신념은 마음을 열고 얼마든지 남의 옳은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살찌우려 들지만 편견은 남의 옳은 생각을 두려워하는 닫힌 마음이다. 결국 폭력이나 편견이나 똑같이 허세일 뿐 진정한 힘은 아니다. 그러니까 정말 두려운 건 목청 높은 편견이 아니라, 그 목청에 대세를 맡겨 버리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소극적인 태도인지도 모르겠다._130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마라톤 1등 주자를 보고 싶은 우리 작가님. 버스 안내양과 실랑이까지 하고 내려, 치마를 펄럭이며 달려가면서 아아, 신나라. 오늘 나는 얼마나 재수가 좋은가하고 혼잣말을 한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귀여우셔 혼자 베시시 웃는다. 크게 웃거나 뭔가 열광하고 싶은 마음을 군중의 환호에 섞여 표출하고 싶었던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신나게 환호해주려던 1등이 이미 지나간 지 한참인 줄 알고 실망한 작가님. 그저 조금 우습고 불쌍하기만 할 줄 알았던 꼴찌의 그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고 박수와 환성을 보낸다. ! 이번엔 또 멋지셔! 조용한 군중 사이에서 먼저 박수갈채를 보내는 용기에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 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밖에 생각 안 했었다. 그러나 앞으론 그것을 좀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 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에._173

 

 

 

 

1973년에 작가님이 젊은 세대에게 하신 말씀은 지금 우리나 우리보다 더 젊은 세대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다.

 

 

그래 도전을 하려거든 철저히 해라. 속 빈 강정인 기성세대에게 너희들의 알찬 내실로 맞서거라. 팝송을 들으면서라도 좋으니 지독하게 공부하고 밤새워 명작을 읽고 진지하게 고민하거라._213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없다. 오히려 진지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을 진지충이라고 비하하기까지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벼운 농담, 재미, 짜릿한 감정적 쾌감만을 추구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남자아이들이 모여 하는 이야기가 게임 아니면 연예인이나 유튜브 이야기라는 사실이 서글픔을 넘어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독서 토론만한 해법이 있을까 싶다. 이미 쇼트 영상에, 자극적인 게임이 주는 도파민에 중독된 아이들을 어떻게 읽게 할지, 생각하게 할지 그것이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이 팍팍해

남을 살필 여유를 잊은 이들에게

 

훈훈한 옛 정이 그리운 이들에게

 

낯선 우리말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70~90년대 대한민국의

사회를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추천합니다!

 

 

 

 

#세계사 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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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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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가장 재미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_116

 

 

 

 

#수없이많은바닥을닦으며

#마이아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교유서가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쓴 이 일기를 한국의 어느 독자()가 저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읽고 있다는 사실을 마이아 에켈뢰브가 알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한편으론 그가 그토록 바뀌길 바랐던 전쟁과 노동자와 여성의 권리, 차별, 환경 등의 문제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일부는 더욱 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현실만은 그가 몰라서 다행이기도 하다.

 

 

 

한 여성 청소 노동자의 일기를 통해 1965~1969년 세계정세를 알 수 있다. 어떤 전쟁이 일어났고 입에 담기 힘든 학살이 자행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는지, 왜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지, 가난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어떻게 버텨왔는지도.

 

 

 

문장이 수려하거나 묘사가 치밀하거나 어휘가 새롭지도 않은 일기지만, 좋다. 왜 좋을까?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5남매를 키우기 위해 청소 노동을 하지만,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의 일기. 아이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빚은 자꾸 늘어나고 그 와중에 아이는 자꾸 아프고 일은 고된 속에서도 글쓰기가 가장 재미있다는 사람의 일기. 자기 코가 석자이면서 요르단 난민을,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사들을, 한반도의 위기, 홍콩 마약 문제, 극한의 상황에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을 걱정하느라 가끔 있는 기쁜 일에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의 일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고통을 오롯이 흡수해서 저절로 체감해버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고난의 짐을 마음으로 함께 지고 가는 사람이다. 에켈뢰브가 고단한 자기 삶 속에 침잠되지 않고, 더 힘든 사람들을 돌아보고 마음 쓸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의 힘이다.

 

 

 

나는 일기를 계속 쓴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좀더 편안해질 것이다._49

 

 

꾸준히 쓰고 독자 투고를 하면서 청소 노동자이기만 했던 그는 작가의 길로 조금씩 나아간다. 결국 52세의 나이에 일기 소설로 데뷔를 하고 성공한다.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또 나는 그녀가 소원하던 아파트에 살게 됐을지가 너무 궁금하다. 일기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5남매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도.

 

 

 

교훈은 이렇다. 너무 편하면 절대로 좋은지 알 수 없다. 그러면 아무것도 아쉬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_169

 

-더 편리함만 추구하는 삶이 옳은가? 우리는 이제 좀 그만 편리해도 되지 않을까? 일기 속에서 개인의 자동차 소유권이 생기고 도로에 차가 늘어나자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발전에는 항상 부작용이 따른다. 나는 요즘 AI가 무섭다. 그 부작용을 우리 인류는 감당할 준비가 되었을까?

 

 

 

글쓰기가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 간절히 쓰는 사람만큼은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한 명 한 명의 구원이 더해질 때 세상도 조금씩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 책은 믿으라는 말도 없이 믿게 만든다._이문영(기자·작가)

 

이문영 기자의 추천사에 공감 백 개를 보낸다.

 

 

 

 

 

#교유당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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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용어의 탄생 - 역사의 행간에서 찾은 근대문명의 키워드
윤혜준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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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근대문명의 키워드인 말의 역사를 다룬다._머리말

 

 

 

#근대용어의탄생

#윤혜준 지음

#교유서가

 

 

 

늘 느끼는 거지만 이번에도 교유서가의 책표지는 세련미가 넘친다. 조금 묵직한 이지미를 풍기는 제목과도 썩 어울린다. 근대문명의 키워드를 선정한 기준이 뭘까 궁금했는데 머리말을 펼치자마자 친절하게 알려준다.

 

 

여기서 말하는 근대문명의 키워드는 전문학자들에게 중요한 용어가 아니라 문명을 구성하고 살아가는 모든 일반인이 자주 쓰는 말,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말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표현이다._7

 

 

키워드는 열쇠가 되는 말을 뜻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말들을 근대문명의 내력과 내면을 살펴보고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라고 말한다.

 

 

-America(아메리카)

-business(비즈니스)

-capitalism(자본주의)

-competition(경쟁)

-constitution(헌법)

-consumption(소비)

-currency(통화)

 

-democracy(민주주의)

-empire(제국)

-enlightement(계몽)

-freedom/liberty(자유)

-industry(산업)

-law/justice/equity()

-machine/engine(기계)

 

-president(대통령)

-progress(진보)

-project(프로젝트)

-reasonable(합리적)

-reform/reformation(개혁)

-review(리뷰)

-revolution(혁명)

-transportation/traffic(교통)

-university/college(대학)

-utopia(유토피아)

 

 

대부분 흥미로웠지만, 꼭 소개하고 싶은 키워드는 진정한 법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law/justice/equity()’, 요즘 대한민국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president(대통령)’,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review(리뷰)’ 세 가지다.

 

 

 

#law/justice/equity()

 

저자는 법의 사전적 정의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 국가 및 공공 기관이 제정한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따위이다.’를 언급하면서 국가와 공공 기관 권력을 잡은 이들일 법을 자기들 뜻대로 주무를 여지를 열어 놓았다고 말한다. 17세기 초 국왕 찰스 1세가 영국의 공통법을 무시하는 것의 불만으로 국왕에게 권리청원을 제출하는데 가장 주도적이었던 에드워드 쿡 경의 일침이 정말 사이다다.

 

전하께서는 학식이 훌륭하고 타고난 역량이 뛰어나시지만 영국의 법을 깊이 공부하여 전하의 백성들의 생명, 상속, 물권, 운명 등과 관련된 문제들을 훤히 알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연 이성이 아니라 인위적 이성과 법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법을 파악하는 수준에 이르려면 오랜 공부와 경험이 요구됩니다._157

 

 

이 에드워드 쿡 경의 반박문을 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듣기 좋은 사탕발림의 아부 말고 이렇게 쓰지만 옳은 소리를 해줄 누군가가 절실한 요즘이다. ‘을 정치 권력의 통치 행위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지만, 사실 고대 그리스에서 법을 이르는 말에는 정의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로마에서도 의 또다른 이름은 정의를 뜻하는 ‘ius’였다고 한다. 우리 법은 과연 정의롭게 시행되고 있는 걸까?

 

 

 

 

#president (대통령)

 

대통령의 한자가 큰 대, 거느릴 통, 거느릴 령이 합쳐져, ‘크게 거느리고 다스린다는 의미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메이지시대에 일본인이 영어 ‘president’大統領로 번역해서 옮긴 말이라고 한다. 라틴어 praesident/praesidens는 조직을 대표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다스리는통치의 의미가 아니라고 한다. ‘president’는 선출된 대표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인 의장정도의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거다. 대통령이 국민을 존중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마치 대통령을 왕권으로 착각하는 것이 일본이 만들어 놓은 대통령大統領이란 이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review (리뷰)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이 일상이 된 나는 리뷰라는 키워드에 단연 끌렸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리뷰의 첫 대상은 인쇄 출판물이었다. review는 원래부터 비평이나 평가의 뜻을 포함하지 않았고 저자 스스로가 자기 글을 검토하고 다시 수정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18세기 초 대니얼 디포가 출간한 정기간행물 <프랑스 상황 리뷰 및 국내 사건들에 대한 관찰>로 인해 사람들에게 리뷰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친숙해졌다는 거다. 뒤에 이은 <먼슬리 리뷰>와 그 라이벌로 부상한 <크리티컬 리뷰>에서는 신간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글을 실었다. 20세기에 들어서 review는 책이 아닌 다른 문화 상품에 대한 평가도 review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각 키워드마다 큰 역사적 사건과 연결되어 있거나 사회적인 큰 변화를 겪으며 다른 의미를 포함하게 된 다양한 이야기가 엮여 있고, 문학 작품들 속에서 그 키워드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발췌해준 문장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세계사적 지식이 부족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같은 인물이나 같은 사건, 같은 단어들이 반복해서 나와서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존 로크나 애덤 스미스, 윌리엄 호가스, 샤를 드 몽테스키외란 이름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역사와 언어,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다.

 

 

 

#교유당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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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바라본 시작 -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얻게 된 이야기
장연호 지음 / 도서출판이곳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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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험생이 혈액암을 이겨낸 이야기지만 어쩌면 고3 수험생이 초능력을 얻게 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은 보지 못하는 행복을 찾는 초능력 말이다!”

 

 


 

 

 

사람은 복잡한 것 같지만 참 단순해서 직접 겪어 보기 전에 깨닫지 못하는 일이 많다. 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는 게 당연해서 그 소중함을 모르고, 내가 건강할 땐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 건강을 가진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지 못한다. 교통사고만이 사고가 아니다. 3 기말고사를 앞둔 저자에게 그야말로 사고처럼 일어난 혈액암 판정으로 그는 하루아침에 수험생에서 백혈병 환자가 된다.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기에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독감만 걸려도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지고 우울해지는 나는 저자의 혈액암 판정과 고통스런 항암치료와 골수 이식 치료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겹게 느껴졌다. 다행히 그는 아버지의 지극한 간호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위로에 힘입어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 다독이며 치료 과정을 잘 이겨낸다. 겨우 성인이 되어가는 경계선에 있던 그가 이렇게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고 더 어려운 환우들에게 용기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겸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혈액암 투병 기간을 거치며 19세의 나이에 죽음에 깊이 생각하고 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그의 결론은 사랑이다. 좋은 대학도, 성공도 아닌 사랑하는 일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최근에 읽은 <오두막>과도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무턱대고 사랑을 퍼주는 삶이 비현실적이라 비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책을 읽어 보라. 그가 이런 마음에 다다른 과정을 본다면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주영아 넌 꿈이 뭐야?’

 

?”

 

······

 

나는 건강한 사람이 꿈이야.”_74

 

 

소아암 병동에서 만난 15살 소년과 저자가 주고받은 이야기다. ‘건강한 사람이 꿈인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 건강, 내 가족의 건강이 얼마나 감사한 선물인지 알면 돈이 조금 없어도, 집이 허름해도, 차가 후져도, 최신 핸드폰을 못 가져도,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되는 일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반성했다. 아이들은 내맘같이 따라주지 않고 할 일은 태산이고 마음은 바쁘다 보니 감사함을 잊고 살았다. 불과 며칠 전 아이들이 장염에 걸려 시체처럼 누워만 있을 때는 빨리 낫기만을 바랐으면서. 아이들이 건강해지니 또 다른 불만이 생기는 거다. 물론 나는 죽을 고비를 넘겨보지 않았기에 지은이와 같은 마음이 되긴 어렵겠지. 그럼에도 자기가 너무 불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지나치게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사랑으로 채워진 저자의 삶은 앞으로 더욱 빛날 거라 감히 예견해 본다.

 

 

 

 

 

10대의 마지막을 소아암 병동에서 보내며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보고, 죽을 고비도 넘겨봤지만 괜찮다. 치료가 다 끝난 지금도 마음껏 꿈꾸기보다 솔직히 건강부터 걱정해야 하지만 괜찮다. 내가 이제 그것들을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괜찮다. 오히려 나는 얼마나 행복한 줄 모르겠다. 값없이 받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정말 눈물 나도록 감사하다. 백혈병 그 자체만 보면 엄청난 불행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불행을 겪어봤기에 행복이 쉬워졌다._189

 

 

 

힘든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는 아름답다. 하지만 힘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보내는 관심은 오히려 독이다. 특히 예상치 못한 불행을 맞아 아직 본인이 처한 상황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허락해 주어야 한다. 불행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고 타인의 위로를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존중이며 성숙한 배려가 아닐까._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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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15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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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재난이 발생하면, 자신들이 신뢰하던 힘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겠죠. 그들은 실망한 나머지 내게 마음을 열거나 아니면 더욱 분명하게 나에게서 독립하겠죠._205

 

 


 

 

 

엄청난 사건이나 자연재해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저마다 다르다. 자신이 가장 믿었던 돈과 권력의 무력함에 분노하며 신을 찾기도 하고, 신이 있다면 이럴 리가 없다며 무신론을 더 확고히 하기도 한다. 내가 믿었던 신이 자신의 것을 앗아갔다고 원망하며 신앙을 버리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의지할 이는 그분밖에 없다는 믿음을 견고히 다지기도 한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을 주는 흔하지 않은 책이다. 일부 사람들이 성경을 자세히 보지 않고 기독교를 배척하는 이유는 역사 속에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온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악행들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자유를 주셨지만,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자유는 인류를 경쟁과 분쟁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자유를 주었나? 왜 악한 범죄를 막지 않는가? 왜 사랑한다면서 고통 속에 절규하게 만드는가? 우리는 수많은 왜로 하나님을 심판하려 든다. 책 속의 주인공 맥은 아이들이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지 한탄할 정도로 사랑했던 딸 미시를 잃고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아내 낸은 하나님을 파파라고 부른다. 어느 날 맥은 그 파파로부터 피 묻은 미시의 빨간 드레스가 발견되었던 오두막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받는다.

 

 

툭하면 만약에게임에 빠져들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매일 밤 미시를 구하지 못하는 악몽에 시달리던 맥은 혼자 오두막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이 책은 그곳에서 하나님인 파파와 성령인 사라유, 예수님을 만난다. 맥은 서로 구속하지 않고 서열 따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존재하면서도 통일성 있는 그들의 관계에 놀란다. 그들과 보내는 이틀 동안 세상에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에 대한 의구심이 풀리고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이해하면서 영혼의 치유를 받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내가 선한 행동을 해서, 내가 헌금을 많이 해서 복을 받는다는 오해를 풀어주는 내용이 좋았다. 하나님은 그리 째째한 분이 아니신걸. 율법을 주신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율법은 어떤 사람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음을 사람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음을 깨우치기 위한 수단이란 걸, 완전하신 분 예수 한 분을 통해 우리가 관계 속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음을 알게 한다.

 

 

세상에는 머리를 굴려가며 옳은 이야기를 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은 정답만을 말하도록 주입받아 왔죠. 하지만 그들은 나를 전혀 몰라요._340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사람들도 스스로 물어볼 수 있게 하는 문장이다. 나는 과연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동사이자 스스로 존재하며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하시는 참 하나님을 믿는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겐 성경을 바탕으로 지어낸 이야기로 자기의 믿음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책이며(물론 하나님의 흑연 여성의 모습을 하거나 사라유가 아시아 여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꾸민 것이며 실제 하나님이 개인에게 편지를 보낼 리도 없겠지만), 치유되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꽁꽁 숨기느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겐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선물이 되어줄 수 있을 책이다.

 

 

 

필사하며, 문장을 곱씹으며, 나의 마음을 돌아보며 읽느라 오래 걸렸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선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로 이어지면서 4달 만에 12,000부가 판매된 이유를 충분히 알겠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선물하고 싶은 사람 여럿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여러 책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성경을 제외하고) 갑진년에 이렇게 값진 책을 읽을 기회를 주신(장바구니에 오래 담아두기만 했는데 ^^;) 세계사에 감사드린다.

 

 

 

#세계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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