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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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무게로안느끼게

#박완서

#세계사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 수록된 글과 미출간 작품을 포함한 46편의 글이 실린 책이다. 박완서 작가님은 어쩌면 안 보이는 눈과 코와 귀와 마음을 하나씩 더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같은 현상, 관계, 자연 등을 보면서도 보통 사람보다 더 자세히 보고 더 깊이 맡고 더 귀 기울여 듣고 더 진하게 느끼니 말이다. 그 민감함에 따뜻함에 다정함에 때론 날카로움에 폭 빠져 읽었다.

 

 

 

 

재 속에 밤이나 새끼 고구마를 파묻고 기다리노라면 이윽고 피식하는 싱거운 소리를 내며 말랑말랑해졌다는 걸 알려왔다._69

 

고구마를 호일에 돌돌 말아서 숯불 속에 구워 먹어본 사람이라면 다들 이 문장에 미소 지을 것이다.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런 묘사가 참 좋다.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 건 기독교 정신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신이고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이란 바로, 참으로 그리고 골고루 민주적인 사고와 생활 방법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이제 겉모양이 드높고 내부 장치가 으리으리한 고층 건물만 가지고 근대화를 뽐낼 게 아니라 그 속에 근대적인 정신을 담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_126

 

 

1979년에 작가님이 했던 고민, 2024년 현대에는 어떻게 변했나 곰곰 생각해 본다. 우리 민주주의는 자기 편할 대로의 민주주의 같아진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고, 겉모양을 중시하는 세태는 여전히 남아있어 씁쓸하다.

 

 

 

 

<특혜보다는 당연한 권리를>

 

나는 제대로 된 논리로 펼치는 비판을 좋아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개선을 위한 비판일 때 말이다. 박완서 작가님의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비판의 글이 참 좋다. 내 말대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여 고함치는 사람의 말을 따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다. 무게 있는 목소리를 통해 정돈된 논리를 가진 말을 사람들은 더 신뢰한다. 하지만 요즘 그런 사람들은 극히 드물고 목청에 대세를 맡겨 버리는 소극적인 태도가 나만 잘하면 된다는 개인주의적인 사고가 대세란 사실에 또 서글퍼진다.

 

 

폭력이 용기와 다르듯이 편견은 신념과 다르다. 신념은 마음을 열고 얼마든지 남의 옳은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살찌우려 들지만 편견은 남의 옳은 생각을 두려워하는 닫힌 마음이다. 결국 폭력이나 편견이나 똑같이 허세일 뿐 진정한 힘은 아니다. 그러니까 정말 두려운 건 목청 높은 편견이 아니라, 그 목청에 대세를 맡겨 버리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소극적인 태도인지도 모르겠다._130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마라톤 1등 주자를 보고 싶은 우리 작가님. 버스 안내양과 실랑이까지 하고 내려, 치마를 펄럭이며 달려가면서 아아, 신나라. 오늘 나는 얼마나 재수가 좋은가하고 혼잣말을 한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귀여우셔 혼자 베시시 웃는다. 크게 웃거나 뭔가 열광하고 싶은 마음을 군중의 환호에 섞여 표출하고 싶었던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신나게 환호해주려던 1등이 이미 지나간 지 한참인 줄 알고 실망한 작가님. 그저 조금 우습고 불쌍하기만 할 줄 알았던 꼴찌의 그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고 박수와 환성을 보낸다. ! 이번엔 또 멋지셔! 조용한 군중 사이에서 먼저 박수갈채를 보내는 용기에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 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밖에 생각 안 했었다. 그러나 앞으론 그것을 좀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 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에._173

 

 

 

 

1973년에 작가님이 젊은 세대에게 하신 말씀은 지금 우리나 우리보다 더 젊은 세대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다.

 

 

그래 도전을 하려거든 철저히 해라. 속 빈 강정인 기성세대에게 너희들의 알찬 내실로 맞서거라. 팝송을 들으면서라도 좋으니 지독하게 공부하고 밤새워 명작을 읽고 진지하게 고민하거라._213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없다. 오히려 진지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을 진지충이라고 비하하기까지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벼운 농담, 재미, 짜릿한 감정적 쾌감만을 추구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남자아이들이 모여 하는 이야기가 게임 아니면 연예인이나 유튜브 이야기라는 사실이 서글픔을 넘어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독서 토론만한 해법이 있을까 싶다. 이미 쇼트 영상에, 자극적인 게임이 주는 도파민에 중독된 아이들을 어떻게 읽게 할지, 생각하게 할지 그것이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이 팍팍해

남을 살필 여유를 잊은 이들에게

 

훈훈한 옛 정이 그리운 이들에게

 

낯선 우리말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70~90년대 대한민국의

사회를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추천합니다!

 

 

 

 

#세계사 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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