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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평점 :
<오베라는 남자>로 유명한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이 6년만에 새롭게 출간되었습니다. 제목은 불안한 사람들, 원제는 Anxious people입니다. 표지에는 토끼탈을 쓴 남자가 창밖의 불꽃놀이를 보는 뒷모습이 그려져 있네요. 옆에는 하와이안 피자가, 와인이 그리고 오픈 하우스 전단지가 놓여져 있습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전개 될까요?
어쩌다 은행 강도가 된 여자와 어쩌다 인질이 된 사람들,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들의 이야기입니다. 철두철미하고 계획적이며 계산된 전문적인 강도, 그러한 강도를 잡기 위해 정의롭고 집요한 경찰을 떠올렸다면 오산입니다. 어설프고 바보같고 불안에 쌓인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요. 줄거리의 흐름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을 넘어서 프레드릭 배크만의 상상력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은행 강도, 인질극. 뭔가 귀 기울여 듣고 싶은 주제입니다. 그리고 책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다리'입니다. 다리 위에서 떨어져 죽으려는 남자와 그 남자를 말리고 싶어하는 또다른 남자. 그리고 일주일 뒤에 다시 다리 위에서 떨어져 죽으려는 소녀와 그 소녀를 구한 남자의 이야기도 의미있게 다가오더군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다시 경찰관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프레드릭 배크만이 대단한 것은 이야기의 주된 흐름을 유머의 그릇으로 담아내지만 그 안에 인생의 진리가 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어? 음료가 맛있네? 그런데 몸에도 좋네? 이런 느낌이랄까요.
책을 읽는 내내 은행 강도가 남자라고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습니다. 초반에 두 아이의 엄마라는 부분을 건너 뛰고 읽었나봅니다. 중간 부분 넘어서서 그 곳에 함께 있었던 인질들과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여성이라는 점을 발견해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전 남편이 집을 가져가게 되었고,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월세를 내지 않으면 두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에 은행 강도가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은행은 현금이 없는 은행이었는 점. 은행 강도는 오픈 하우스로 가게 되는데 손에는 장난감 총을 들고 있어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인질이 되게 됩니다.
오픈 하우스에 있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경찰서에서 진술을 할 때도 은행 강도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거나 잡담을 하기도 합니다. 본질은 은행 강도 사건을 해결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입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 자녀 양육에 대한 두려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나날이 오르는 집값과 함께 집을 장만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등이 대부분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혹은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들도 근원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지요. 우리들 모두는 불안한 미래 속에서 불안한 마음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불안을 치료해주는 심리상담사도 어렸을 때는 다리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던 경험이 있고, 불안을 치료하러 온 사라도 심리상담사와 거의 말싸움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아니, 세상에 뭐 이런 은행 강도가 다 있어? 라는 생각이 들 때면 은행 강도는 더 이상 오픈 하우스에 있는 인질들을 인질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배고픈데 피자를 주문해보자며, 경찰에게 하와이안 피자를 주문해달라는 인질들의 웃긴 이야기들도 이 책의 묘미입니다. 하와이안 피자도 파인애플이랑 햄 빼고 그 대신 바나나랑 땅콩을 넣은 피자를 주문합니다. 카프리초사 피자도 주문하지요. 이 상황을 보면 웃음을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최악의 인질이야. 당신들은 역대 최악의 인질이야."라고 되레 은행 강도가 혀를 내 두르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시대의 불안을 이리도 유머러스하게 서술한 작가가 어디 있을까요? 소설은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반전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됩니다. (중요한 반전은 책을 읽어보시면서 확인해주세요) 너무나 유쾌했던 소설, 하지만 깊은 의미가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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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은 몰랐는데 -101쪽
/진실은 무엇일까? 이 모든 사건의 진실, 진실은 이것이 여러 가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478쪽
/하지만 오늘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거든, 오늘 하루가 끝나고 밤이 우리를 찾아오거든 심호흡을 한 번 하기 바란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지 않은가. 날이 밝으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4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