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부>는 열여섯 살의 카를 로스만이 배를 타고 미국으로 향한다. 배에서 내리다가 우산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난 카를 로스만은 배에서 우연히 배에서 화부(난로지기)가 직업인 어떤 남자를 만난다. 그는 배에서 일하며 불공정한 일을 당해 불만이 상당하다. 이유 없이 해고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카를 로스만은 남자를 대신해 정의의 사도가 되어 나선다. 흥분하는 화부와는 달리 논리 정연하게 말을 잘하는 카를 로스만, 그러다 우연히 외삼촌을 만난다. 외삼촌은 상원 의원으로 선장과의 친분도 있다. 외삼촌은 뜬금없이 카를 로스만에 대해 폭로한다. 가정부가 카를 로스만을 유혹해서 아이를 낳았고 카를 로스만의 부모는 양육비 지불을 피하고, 나쁜 소문이 미칠까 두려워 카를 로스만을 미국으로 매몰았던 것이라고. 이 과정에서 화부의 문제가 흐지부지 되면서 카를 로스만은 외삼촌이 마련한 보트를 타고 떠나게 된다.
<화부>는 부당한 권력과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구조적 폭력이 정당화됨을 알 수 있다. 일은 일대로 하지만 제대로 된 정의는 찾아 볼 수 없다. 카를 로스만이 이를 도우려하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여기에 야콥 외삼촌의 등장으로 인해 카를 로스만은 정의에 맞서 싸우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저 모르는 화부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네 문제나 해결하라는 식으로 끝나버린다.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부당한 권력과 억압은 누가 깨뜨릴 수 있는가? 약자의 목소리는 소멸되기 쉽다. 이방인인 카를 로스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선고>(1912)는 주인공이 러시아에 사는 친구에게 자신의 약혼 소식을 편지로 전할지 고민한다. 편지와 관련해 주인공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너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물에 빠져 죽어라."고 아버지가 말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죽음을 선고하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그저 위선적이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 채 절대적인 명령이라 생각하고 거리로 뛰쳐나가 아버지의 말대로 행한다. 왜 아들은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말에 복종했을까? 이 또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아니라 절대적인 권위에 의한 일방적인 선고였으며 아들을 근거 없는 파멸로 이끌었다. 이러한 내용의 원인은 프란츠 카프카가 실제로 아버지를 두려워했다고 전해지며 약한 아들과 절대적인 아버지의 구조가 <선고>에 투사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변신>은 세일즈맨 그레고르 잠자가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한다.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반응이 주요 포인트다. 벌레로 변한 것에 충격을 받고 연민 상태였다가 점차 부담을 느끼고 혐오의 대상으로 변질된다. 급기야 사과를 던져 벌레를 죽이려드는 아버지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세일즈맨으로 가족의 경제를 담당했던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되자 가족들 속에서 소외되는 건 시간 문제다. 여동생이 그나마 최선을 다해 벌레를 돌봐주지만 점차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버둥거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는 그레고르 잠자를 보며 우리 시대의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은 근거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구조적 폭력이 느껴진다. 화부가 당한 부정의를 아무도 받아주려하지 않고, 아버지의 선고에 부당한 이유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아들의 모습, 벌레가 되어 죽여 마땅한 대상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그러하다. 110년 전의 단편 소설임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은 콘크리트처럼 변하지 않는 인식과 절대적 권력, 복종, 권위라는 무거운 장벽들이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프란츠카프카의 3편의 소설은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단편선을 엮어 출간하려 했다고 전한다. 따로 읽히기도 하지만 모두 아버지와 아들이 등장하는 소설이기에 <아들>이라는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프란츠카프카식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이 시대에 정의는 어디서 살아 숨쉬고 있는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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