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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ㅣ 나태주의 인생 시집 1
나태주 지음, 김예원 엮음 / 니들북 / 2025년 11월
평점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몸이 기억하는 12월인가.
겨울을 앞두고 몸살이 났다. 입천장은 까지고 물만 마셔도 쓰라린 상태. 식은 땀이 나고 어지러웠다. 고함량 비타민을 입에 털고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내리 잤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삼일째 되니 주변에 둔 책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토록 좋아하는 책도 건강해야 눈에 들어오는 상황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제목만 봐도 위로가 되는 책이 있다. 나태주의 인생시 모음집 『참 잘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가 그러하다. 12월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뭘 했다고 12월인가. 그치만 나태주 시인은 시로 토닥여준다. 참 잘했다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뭘 더 잘하려고 하냐고. 몸도 탈이 난 걸 보니 힘들었나보다. 충분히 잘했으니 이제 쉬어도 된다고 위로해준다.
괜찮아, 조금씩 틀리는 것이 인생이란다.
실수도, 서툰 것도 너의 인생,
잘했다, 참 잘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참 잘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는 나태주의 인생 시집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다. 5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쓴 시를 다시 모아서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했다. 나태주 선생님의 일급 독자인 김혜원 작가가 엮은 시선집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첫 번째 책은 '청소년을 위한 시집'이라고 시인의 말에서 언급하고 있다. 시에 목말라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나태주 시인의 섬세함이 담겨 있다. 시인이기 이전에 선생님으로 오랜 시간 학교에서 근무하셨던 것도 아이들을 위한 사랑이 항상 있었으리라. 청소년들을 향한 마음을 처음으로 엮어 낸 시집은 나태주 시인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조금은 손해 보는 삶을
생각해 보리라 이 가을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잘못한 일보다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일이 없었나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해준 일은 없었나
조금은 천천히 걸으며 숨 쉬며
뒤돌아보리라 이 가을엔
지난 여름 나의 편협 나의 아집
나의 성급함 나의 속단
장롱 속에 눅진 옷가지들을 꺼내어
햇볕에 말리우듯
그것들을 꺼내어 말리우리라
이 가을엔.
- 「이 가을엔」 , 나태주
지금이 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
그런데 그걸 너만 모르지. (좋은 때)
<좋은 때> 시를 읽다가 아나운서 이금이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40대 이금이가 50대 인생 선배님을 만나서 밥을 먹다가질문했다고 한다. 40대 인생은 어떤지에 대해서. 그랬던 인생 선배님이 하시는 말이 "40대가 인생에서 제일 즐거울 때야. 즐겨라"라고. 10년 뒤, 50대 이금이가 다시 60대 인생 선배님을 만나서 같은 질문을 했다. 선배님은 다시 "50대가 인생에서 제일 즐거울 때야."라고. 맞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다. 그런데 그걸 나만 모르고 있다. 힘들거라고, 괴로울거라고 미리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좋은 때가 언젠가 올거라고 기다리기만 한다.
나태주 시인을 문학 강연에서 뵌 적이 있다. <풀꽃>을 쓴 시인의 언어는 어떨까? 하면서 기대감에 나태주 시인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근엄할 것 같았던 편견이 싹 지워지고 친근한 옆집 아저씨 느낌이었다. 만나면 곧바로 웃으며 인사 받아주시는 옆집 아저씨. 그런데 유명한 시인이다. 어떻게 하면 나태주 선생님처럼 멋진 시를 쓸 수 있을까? 그저 상상만하며 멀게 느껴졌던 분이 옆에 앉아 계시는 순간이었다.
『참 잘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스페인의 인상주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의 명작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책표지부터 시작해 책 속에 가득 배치되어 있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마주한 호아킨 소로야의 아름다운 그림들이 생각나는 순간. 빛의 순간을 포착한 호아킨 소로야와 햇살 같은 문장을 짓는 나태주의 시와 함께 만나니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의 바다랄까. 마치 스페인 바닷가에서 시를 읽고 있는 기분이 든다. 동양과 서양이 손잡은 환상의 콜라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돌아보니 2025년은 시와 친구가 되는 시간이었다. 봄에는 시인을 만나 수업을 듣고 즉석 시를 썼다. 그토록 뜨거웠던 여름은 시 필시로 더위를 잊었다. 이메일로 시를 보내주는 [우리는 시를 사랑해] 는 세상을 보는 지평을 넓혀주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나태주 시인의 『참 잘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로 마무리하게 된 것도 감사하다. 아름다운 시는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손 끝으로 필사를 하며 꼭꼭 씹어 마음으로 남기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 몸도 마음도 분주한 12월은 『참 잘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와 함께 시 필사를 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시간 보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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