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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면 종말 - 안보윤 산문
안보윤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9월
평점 :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소설가로 데뷔한 지 20년. 안보윤의 첫 산문집이 작가정신에서 <외로우면,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애정하는 소설가의 첫 산문집이라니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조금씩 아껴 읽었다. 한번에 다 읽으면 그 마음이 금방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안보윤은 어린 시절 스스로를 질책하고 비난하느라 하루를 다 쓰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아빠의 돼지 저금통을 흔들어 동전을 몰래 가져가던 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돼지 저금통 동전 넣는 입구에 머리핀을 쑤셔 넣고 열심히 흔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 동생은 저금통에 있는 돈을 훔친다고 고자질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쿨하게 언니는 줄넘기를 하러 간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윽박질러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을 시간을 주는 것. 언니의 줄넘기 소리가 주는 교훈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날의 줄넘기>는 그녀가 두 번 다시 저금통에 손대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외로우면 종말>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산문임에도 마치 소설을 마주하는 것처럼 느껴진달까. 소설 <밤은 내가 가질게>에서 나오는 장면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나’의 조카 세연에게 거짓말 놀이를 가르치는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햇빛 같아 버겁고 어떤 사람은 장마처럼 집요하다. 어떤 관계는 나를 부서지기 쉬운 무엇으로 한없이 졸아 들게 만들기도 한다. 갈라진 마음을 관계에서 위로받을 수 없다면 내 안으로 손을 뻗으면 될 일이다. 오래도록 문질러 온기를 채우다 보면 부드럽고 촉촉해진 내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뻗을 용기 를 얻게 되겠지. 그런 식으로 마음이, 관계 가, 시간이 익어갈 것이다.
_본문 중에서
거실 바닥에 떨어진 까만 시계 숫자판들.
바닥에 엎드린 채 새까만 숫자판을 주우며 <시간을 주워 담는 오후>라고 명명하는 안보윤의 시선을 따라간다. 손에 잡히지 않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숫자판을 주우며 손에 잡힌 물성으로 대치하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어느덧 2025년 9월이다. 누가 시간을 가져갔는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허무하다고 해야할까.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2025년, 나 또한 그녀처럼 바닥에 쏟아진 시간을 주워담고 싶어진다.
안보윤은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시선을 옮긴다. 쏟아지는 폭우, 계속되는 장마에 새들이 몸을 피할 곳이 없음을 걱정한다. 전지 작업으로 가지가 잘라나가 빈약하고 앙상한 가로수를 보며 나무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이 맨 몸으로 비를 맞을 수 밖에 없는 새를 걱정한다. 때로는 어린 아이들이 괴롭히는 길고양이의 안전을 걱정한다. 불이 난 아파트 창문에 매달린 고양이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길고양이의 얼굴을 손으로 후려치는 영상으로 보고 낄낄 웃는 사람들을 보며 온 마음을 다해 걱정한다.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들은 여기저기 드러나있다.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자리 차지를 한다며 욕설을 퍼 붙는 이에게 한 마디 내뱉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내가 만약, 그 상황이었더라면 그 말조차 내뱉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만요. 잃어버린 걸 찾아야 해서요.”
시외버스 하차 과정에서 어떤 남성이 스마트폰 불빛을 바닥에 비추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자 앞 좌석에 앉은 분들도 함께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함께 찾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 안경이 좌석 옆에 낀 거 아닐까요?”
앞 좌석 아주머니의 조언에 남성은 좌석 옆에서 잃어버린 안경을 찾을 수 있었다. 이내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내렸다. 안경 찾기로 인해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버스 안 공기는 금방 온기로 가득찼다.
그 순간, <외로우면 종말> 산문 속에 담긴 구절이 떠올랐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모르는 이의 잃어버린 안경을 찾아주기 위해 애썼던 마음들이 ‘적당한 거리에서 꾸준히, 적당한 온기를 건네는 일. 서로의 마음을 둥글게 문질러 은은한 애정이 차오르게 만드는 일’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아직은 사람을 사랑할 때이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여기는 당신께 진심의 성실한 안내자, 소설가 안보윤의 <외로우면, 종말>의 일독을 권한다. 아니, 두 번, 세 번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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