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면허 - 이동하는 인류의 자유와 통제의 역사
패트릭 빅스비 지음, 박중서 옮김 / 작가정신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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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작가정신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여권은 개인에게 공식적인 신원[정체성]을 부여하며, 특정 민족과 인구의 이동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을 진작시키는 물건이다. 이것이야말로 여권의 가차 없는 역설이다. 여권이란 본래 독립성과 이동성, 도피와 안식처를 약속하지만, 이와 동시에 국경을 넘는 개인들의 이동 통제와 국토방위를 보장한다는 미명 하에 정부 감시와 국가권력의 필수 도구로도 사용된다. 다시 말해 여권은 개인의 정치의 접점 그 자체에 자리잡고 있다.

<여행 면허>, 프롤로그 23쪽 중에서





여권을 잃어버려 울고 또 울었던 시간들이 있다. 국제 미아가 이렇게 되는거구나 싶었다.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임시 여권증을 발급 받고 나오는 길, 그리고 무사히 한국에 도착한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여권은 국경을 넘는 개인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공식적인 신원이다. 해외여행에서 여권을 잃어버린 경험은 나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대사관에서 경험한 대한민국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되었다. 여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영어학 교수인 패트릭 빅스비가 쓴《여행 면허》에 나와 있다. 말 그대로 여권에 대한 A to Z를 담고 있다. 고대 여권에서부터 전자 여권까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두 번 다시 여권을 가볍게 대하지 못할 것이다.” _《지오그래피 렐름》

“여권의 언어적 여정과 그 밖의 많은 것을 탐사하며 인상적으로 조사한다.” _《월스트리트저널》

“여권의 강력한 힘과 여권의 불평등성이 주는 고통을 깔끔하게 설명한다.” _《AFAR 매거진》



여권이라는 작은 책자는 무엇을 이야기 해 주는 것일까? 여권은 세계적으로 가장 친숙하고, 가장 많이 사용되고, 가장 사회적인 서류이다. 인간의 이동과 정체성을 정의하는 복합적 사회 메카니즘을 내포한다. 여권 제도의 근본적 불평등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작은 책자 하나로 해야 할 말이, 전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장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 여권에 대해 말한다. 여행서류(원시 여권)에 대한 최초의 문헌으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경의 느헤미야 2장 7절-9절 말씀이 있다.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느 2:7)를 보면 느헤미야가 유다로 가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돕기 위해 페르시아 왕에게 '안전 통행 편지'를 요구하는 대목이 나온다. 말 그대로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공식 문서 즉, 지금의 여권을 의미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안전 통행증으로 확인할 수 있는 편지는 (쐐기 문자로 점토판에 적힌) 아마르나 문서이다. 이 문서는 소지자에게 발급 군주의 영토를 지나가는 과정에서 안전한 통행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부터 국경을 넘을 때 안전한 통행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2장은 동방견문록을 지은 마르코폴로 이야기는 마치 그와 함께 세계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 마르코폴로는 베네치아를 떠나 중국, 인도, 일본 등지를 여행한 최초 유럽인이다. 무사히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여행 서류 덕분이었다. 실크로드에서는 먼 길을 오가는 사람과 물건의 이동을 통제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때 필요한 여행 서류는 "패자"이다. 중국어로는 파이자라고 하며 나무나 청동, 은, 금으로 만들어진 패였다. 특별히 칸이 발급한 공식 황금 패자는 마르코 폴로에게 수여되었다. 황금 패자는 칸의 영토 전체, 실크로드 다른 모든 관할 구역으로 갈 수 있는 허가증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하이패스였던 셈이다.



3장 근대 국가와 근대의 시민에서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위조된 여권을 사용하려 했던 도즈/더글러스이다. 여성이었던 도즈는 신원을 더글러스로 탈바꿈해 위조된 서명과 위조된 여권으로 프랑스나 독일로 가려고 했다. 여권 발급처에서의 속임수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여행을 허가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 간, 젠더 간 여행을 위해서였다."고. 19세기 여권 신청자는 남성이었고 여성들은 '그'의 신청서에 기재되는 식이었다. 여권에서도 반영된 남성과 여성의 위계가 있었다는 것, 여권의 불평등성을 알 수 있다.



4장은 현대식 여권의 등장에 대해서 다루며 유명한 인사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무국적자로 출국비자 없이 스페인 국경을 넘지 못하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생존을 위해 본인과 얼굴이 유사한 친구에게서 빌린 여권으로 프랑스 파리까지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유대계 독일인 한나 아렌트(해나 아렌트)는 여권 없이 10년이 넘도록 무국적 상태였다. 무국적 상태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다룬다. '언젠가 유명해질 여자'인 한나 아렌트는 비밀 조직의 도움으로 뉴욕행 여객선에 탑승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로지 명성"만이 안전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테슬라 회장 일론 머스크는 어떤 사람인가? 남아공(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캐나다 여권으로 미국으로 향한다. 이어 외국인 취업 비자로 성공한 미국 이민자, 억만장자 사업가, 나아가 화성 이민자가 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패트릭 빅스비는 코로나 펜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영국, 미국에서 시작해 독일, 러시아, 중국, 프랑스의 사례까지 광범위하게 흥미로운 일화를 제공하며 여권이 갖고 있는 강력한 힘과 역설적인 측면도 동시에 설명해내고 있다.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수집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하며 입국장이나 출국장에서 여권을 볼 때마다 패트릭 빅스비의《여행 면허》가 떠오르게 되리라. 특히, 여권의 여정과 정치적 접점에 대한 관심이 많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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