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의 생각 없는 생각 - 양장
료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평점 :
품절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자기 소개 때,

돌아가며 말한다.

이름 고향 취미 지병.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센류(3줄 정도의 짧은 시)인데 지병에서 빵 터졌다.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지병을 공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것이다. 최근 소모임에서 자기 소개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내가 나를 제대로 알고 있나? 하는 물음이었다. 자기 소개를 하며 나를 찾는 시간을 갖게 되어 자기 소개 타임을 감사해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시선을 의식해 나의 어떤 부분을 공개해야 하는지, 무엇을 비공개해야 하는지 필터를 거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진짜 모습이 발견되면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고 만다. 런던베이글뮤지엄 브랜드 총괄 디럭터 료는 말한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진짜 나 자신으로 살아가라고. 열림원에서 출간된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은 진짜 나 자신을 찾는 시간들을, 과정들을 생각하게 해 준다.

료는 런던의 10평 남짓한 작은 카페에서 필터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 내리는 모습을 보다가 충격에 빠진다. 종이 필터에 물을 달랑 두 번에 무심하게 확 붓는 장면이었다. 기존에 료가 생각했던 빙글빙글 돌려 원두를 잔뜩 부풀리고, 천천히 물을 돌리며 커피를 내리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 각기 다른 인종과 다른 연령대로 보이는 바리스타 간의 부드러운 커뮤니케이션과 손님을 향한 스타일리쉬한 응대에 반하고 말았다. 그녀에게는 직업을 순식간에 바꿀 정도의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결심한다.



눈치채지 못했던,

한없이 보드랍고 작지만

반짝이는 소중한 것들이

늘 우리 가까이에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매일 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발견해 그 점들을 잇는,

늘 고운 선 긋기를 하면서 살다가,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너무나 아름다워 아직도 아쉽지만,

어쩌면 아쉽지 않은 마음으로,

왠지 부끄럽게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웃으며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료의 생각 없는 생각, 159p 중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계속 바라보는 일, 마음이 이끄는 글귀를 다시 보는 일. 좋은 소리를 계속 내어 보는 것. 살면서 소중한 것들을 떠올려본다. 생각 없는 생각이 아니라 생각이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 료의 깨달음은 어쩐지 멋있기만 하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라는 독특한 베이커리 카페를 만들어 자신 만의 방식으로 손수 운영하는 일에 어찌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깨닫는 순간, 깨닫고 실천에 옮기는 용기를 얻어 아쉬움이 하나도 없을 만큼 온 몸으로 쏟아내는 열정까지 가득하다. 뭘 하려고 하면 망설이다 시간을 다 보내는 나와는 대비되는 모습들이 매력적이다.

"진짜 나로 살 수 있는 용기" RYO는 런던에서 지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꽃과 식물, 자신의 스타일 대로 숙소를 꾸미면서 RYO만의 스타일로 만드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해외에 잠깐 머무는 동안 어차피 시들고 죽을 꽃과 식물을 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PHILOSOPHY RYO는 말 그대로 철학자의 삶을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해서 따라하는 것이 아닌, 나의 스타일을 찾아 그것을 구현하는 삶. 자신의 나태한 삶에 미친듯이 반성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다. 오일 파스텔로 강아지를 그리고 자신을 닮은 사람들을 그리며 예술적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모습도 신선했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말 그림도 RYO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중간 중간 글귀와 함께 RYO가 찍은 사진들도 감각적이다.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감성 어딘가.


'언젠가 나는 제일 내가 되겠지' 하고,

선명함 같은 건 도통 보이지 않던 낯선 길을,

오늘도 비뚤비뚤 빼곡히 걷고 있다.

- 료의 생각 없는 생각, 265p


비에 젖은 작은 새, 표현도 어찌나 신선한지. 약하고 두려움이 가득했던 RYO의 시절을 비유한 표현이다. 눈물을 흘리다가 소맷부리로 눈물을 훔쳐내는 비에 젖은 작은 새. 타인을 따라가느라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남의 눈치 보느라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추천한다. 하하하. 책을 읽고 나니 (나도 모르게) 오일 파스텔을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왜 잘 안되지? 하하하. 자유분방하고 키치한 옆집 언니 RYO의 매력 속에 빠져 들었다가 현생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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