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역사적 충동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에세이 <코끼리를 쏘다>에는 1936년 가을에 발표한 작품으로 어느 한 줄이건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일에 힘썼다는 것을 증명한다. 도시를 해집고 인명피해까지 낸 코끼리를 쏠 생각은 없었지만 조지 오웰 뒤를 따라오는 군중 2000명이 있다는 건, (풀밭에서 풀을 먹고 있는) 코끼리를 쏘게 만들었다. 손에 소총을 들고 서 있는 그 순간을 조지 오웰이 솔직하게 말한다. 그 순간 나는 백인의 동양 지배가 공허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군중 2000명이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나는 소총을 들고 있고, 코끼리는 내 눈 앞에 있고.
넷째, 정치적 목적이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조지 오웰의 표현이 시원하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조지 오웰은 안 맞는 직업(버마에서 인도 제국경찰)을 5년 동안 하고 그 뒤로 빈곤과 좌절을 겪으며 권위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고 고백한다. 처음으로 노동계급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에세이 <스파이크>에 잘 나타나있다. 노숙자를 위한 임시 무료 수용소에 머물게 되면서 배가 고프기 때문에 영혼 문제를 생각할 여유 조차 없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다음 끼니가 확실한 경우가 거의 없고, 이도 들어가지 않는 딱딱한 빵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 모두 다 쓰레기니까,라고 말하는 스파이크에서의 생활이 그러한 노동계급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이 되었다. 히틀러의 등장과 스페인 내전의 발발로 인해 조지 오웰은 어디에 서 있는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더욱더 확실하게 알게 된다. 조지 오웰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어내는 일에 성공했다.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웰의 투명함이 그대로 보이는 에세이다. 그래서인지 조지 오웰이 더욱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처음에는 천재로 느껴져서 다가가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쓴 저술들이 어마어마한 양이었다고 한다. 소설 여섯 권, 르포 세 권, 에세이집 두 권을 포함해 수백 편의 서평과 칼럼을 포함한 에세이를 썼다고 알려진다. 이쯤되면 영국 새뮤얼 존슨 이후 최고의 에세이스트라는 미국 평론가의 찬사가 딱 맞다. 조지 오웰의 소설을 읽은 당신에게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권한다.
#조지오웰 #나는왜쓰는가
#한겨례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0기
#에세이 #책 #서평 #책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