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인사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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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열림원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잘 자요, 다정한 한 마디에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

누군가에게 잠들기 전에 잘 자요, 라는 말을 듣는다는 건 차가운 마음조차 몽글몽글해진다. 표지에 바닷가에서 맨 발로 파도를 마주하는 여자의 뒷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보이는 책 <밤 인사>를 만났다. 새벽의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매혹적인 지도가 되어줄 것이라는 윤고은 소설가의 추천사가 눈에 들어온다. 새벽의 감각이라니, 몇 달전 발리의 일출을 보겠노라고 마주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똑같은 해라고 하지만 발리에서의 일출은 어떨까, 이른 새벽에 운동화를 신고 바닷가로 나갔다.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사누르 바다, 고요하고 또 고요한 바다. 서늘하기도 하고, 눈 앞에 캄캄한 어둠이 내려 앉아 있는 느낌적 느낌. 구름으로 인해 일출을 볼 수 없었지만 밝아오는 시간들이 서늘했던 시간들을 따뜻하게 만들어 줬다.



소설 <밤 인사>에서는 소설가로 활동 중인 미나가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우연이 계속되어 운명처럼 마주한 시간들을 담담히 그려나간다. 2년 전, 프랑스 니스행 열차에서 만난 남자 장에게 미나는 한 가지 제안을 받게 된다. <어떤 여름>의 후속작을 써 보는 건 어떻겠냐고, 미나는 이를 받아들여 <어떤 겨울>을 써 보기 위해 다시 파리행 비행기를 탄다. 공항에는 장이 마중을 나왔다. 과연 그 둘은 어떤 사이일까? 궁금함이 이루말 할 수 없지만 처음하는 스킨십이라고는 공항에서 한 가벼운 포옹이 전부다. 장은 SNS로 2년 간의 미나의 일상을 다 알고 있다. 이대로, 영원히. 소개 문구까지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 장과 함께 프랑스 곳곳을 여행하기 시작하며 여행하는 소설이 시작된다.



밤 인사.

세상의 모든 밤을 향해,

잘 자요.

-51쪽-




파리, 부르고뉴, 세트, 페르피냥, 포르부. 장과 미나가 함께 여러 공간을 천천히 걸으며 발터 벤야민, 조아킴 롱생, 폴 발레리의 궤적을 좇는다. 발터 벤야민은 유대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 철학자이다. 나무위키 검색에는 그가 잊혀져가는 과거를 재구성하고 그 과거에 어떤 희망이 있었는지를 탐구하며, 유럽의 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미나는 발터 벤야민이 책을 출간할 때마다 애인 도라에게 헌정한 것에 집중한다. 오갈 데 없는 전남편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은 도라, 이혼한 전처를 다시 찾는 벤야민의 심리와 행동은 무엇인가. 그렇게 벤야민이 이혼한 전 아내의 집에 머물렀던 것처럼 미나와 장도 그곳을 둘러본다. 장이라는 남자가 갖는 미나에 대한 감정은 SNS에서 엿보기에서 동경, 추앙까지 변모한다. 미나와 함께 장이 부산에 가고 싶다고 고백하며. 과연, 장은 부산에 갈 수 있었을까?


<밤 인사>가 미나와 장의 이야기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사랑에 가 닿지 않은 우연한 만남의 연속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다. 이에 작가는 윤중이라는 이름을 지닌 남자를 미나 곁으로 가져온다. 윤중은 파라-n 이라는 이름의 (소설) 묵독 모임에서 만나 아는 사이이다. 모임을 마치고 갑자기 미나를 차에 태우고 간절곶으로 향하는 윤중. 스마트폰을 버리고 열두 시간의 조약돌을 가지고 돌아오게 해 준다고 한다. 이 남자는 미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미나가 프랑스에 가 있는 동안 카톡으로 윤중은 미나를 향해 짧은 안부와 뉴스 기사를 보낸다. 미나와 결이 맞는 느낌적 느낌. 척하면 척, 서로의 끌림이 시작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의 재회는 어긋나게 만들어버리는 작가의 얄궂음이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윤중, 미나, 장이 한 공간에 있었으면 이야기는 또 어떻게 흘러갔을까.


빛바랜 추억들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들이 오래 오래 기억될 때가 있다. 미나에게 윤중도 장도 그러하다. 미나 입장에서, 장의 입장에서, 윤중과의 엇갈림이 계속되며 이야기는 밤 인사를 조용히 전한다. 자니? 가 아니라 잘 자요. 세상 다정한 밤 인사는 우리에게 너는 그 때 우연한 추억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냐고 묻는다. 잘 자요. 누군가에게 했던 다정한 밤 인사가 생각나는 소설이다.


#밤인사 #함정임 #열림원 #소설

사랑은 잃어버린 것과 연관된다.

끝날 것 같지 않는 통로를 빠져나오면서 꿈에서 깼다. 뒤돌아보기 두려운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꿈에 그를 본 것 같았다.

그라는 느낌일 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상실은 사랑을 입증한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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