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 이어령 유고시집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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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네가 운전하며 달리던 가로수 길이 거기 있을까

네가 없어도 바다로 내려가던 하얀 언덕길이 거기 있을까

바람처럼 스쳐간 흑인 소년의 자전거 바큇살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을까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중에서

안녕히, 이어령 유고시집,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이어령 교수님.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2022년 2월 26일. 향년 89세의 나이. 딸 이민하 목사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찢어질 듯한 마음을 담아 쓴 시를 만났습니다. 제목은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시대의 지성인이기전에 한 아이의 아버지였던 이어령 교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시집에 담겼습니다.

[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1부 ‘까마귀의 노래’는 신에게 나아가 얻은 영적 깨달음과 참회를, 2부 ‘한 방울의 눈물에서 시작되는 생’은 모든 어머니에게 보내는 감사와 응원을, 3부 ‘푸른 아기집을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순수와 희망을, 4부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는 딸을 잃고 난 후 고통과 그리움의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 부록은 평소 탐미했던 신경균 도예가의 작품에 헌정하는 시라고 합니다.

1부와 4부의 시들이 빛나는 건 생의 처음과 마지막이 느껴지기 때문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무신론자에서 하나님을 믿게 된 이어령 교수의 고백들이 1부 까마귀의 노래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아주 가까이 기도를 드린다고, 저 영원한 빛과 소리에 접속하기 우해서 주님의 비밀번호를 찾기 위해서 손을 모은다고 말합니다. 까마귀처럼 검은 날개를 흰 눈처럼 희게 해 달라는 기도는 죄로 물든 마음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정결하게 씻어달라는 고백처럼 느껴졌습니다.

4부는 딸 이민하 목사를 하늘로 보내고 난 후의 고통을 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네가 없는 곳에서 아빠는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있다는 표현이 먹먹하게 느껴집니다. 지금이라도 부르면, 지금이라도 전화를 걸면 당장이라도 달려올 것 같은데, 당장이라도 전화를 받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헌팅턴비치는 딸이 살던 곳의 바닷가라고 합니다. 그곳에 가면 네가 있을 것 같은데, 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너만 빼고 나머지는 다 그대론데.. 하면서 딸을 향한 아버지의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살아 있는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네가 간 길을 지금 아버지도 간다고 마지막 말을 내뱉으시고는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딸을 안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셨겠지요.

시를 읽다보면 아이처럼 순순한 이어령 교수님의 마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존경, 딸에 대한 사랑,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 등 언어를 통해 탁월한 감각들을 보여줍니다. 지금 다시 이어령 교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니 너무나 먹먹해집니다. 삶과 죽음 속에서 수많은 공명들이 느껴지는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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