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을 권리
김태경 지음 / 웨일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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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표적으로 삼는 순간 누구나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범죄가 언제 어느 때 일어날지 모릅니다. 묻지마 살인, 유괴, 폭행 등 뉴스에 나오는 수많은 사건 사고를 보며 통탄을 합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범죄 피해자가 받는 트라우마는 누가 치료해 줄까요? 오랜시간 트라우마 연구자이자 치료자, 임상수사심리학자로 활동한 김태경 교수가 있습니다.

범죄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김태경 교수의 첫 책, [ 용서하지 않을 권리 ]가 출간되었습니다. 많은 사례들을 만나며 수사 과정에서, 수사 후 여러 측면에서 느끼는 이야기들을 담아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피해자를 바라보는 적정한 시선과 태도가 무엇인지 공부합니다. 책은 피해자의 이야기에 국한하지 않고 피해자 가족들이 받는 또 다른 상처에 관한 이야기, 피해자 지원 실무자의 고충과 증언들도 생생하게 등장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4.16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생일>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부모님들은 분노하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고, 힘들어합니다.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림을 안고 살아가는 순남의 가족은 TV를 보다가 웃으면 아이를 잃은 사람이 TV를 보며 웃는다고 욕하는 불편한 시선에 또 다시 힘들어합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지 잘 보여줍니다. 아들의 생일이 돌아올 때 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복잡한 마음에 사로잡히는데요. 책 속에도 그렇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증언이 들어 있습니다.

진술 조사를 받을 때,

사건을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되게 힘들어서

중간에 화장실에 가서 헛구역질을 했어요.

그래도 버텨보려고 감정을 차단하고

애써 침착하게 이야기 했는데,

그게 조사하는 분한테는

이상해 보였는지 피해자답지

않다고 저를 막 혼냈어요.

-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에서 발췌 108쪽 -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Chapter 2 타인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착각>입니다. 1년 전, 살인으로 딸을 잃은 그녀에게 이웃이 해 준 말은 피해자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웃이 한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죽은 아이는 그만 잊고, 빨리 둘째를 낳아 허전한 마음을 채워요."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위로가 아니라 선을 넘은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혹은 우리가 자주 쓰는 "힘내세요,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라는 말도 피해야 할 위로의 말 중 하나입니다. 피해자에게는 이런 말들이 힘을 내라는 압박이 될 수 있고, 힘을 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좌절이 되는 말입니다. 위로를 하고 싶은 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침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지요.

공감이란, 같은 경험이 없어도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이해하되, 타인과의 심리적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강조된다.

진정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것은, 타인과의 심리적 경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심리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2차 가해를 범하는 사람들은 피해자 주변의 인물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가족들도 포함이 됩니다. 피해자에게 나름의 위로를 했다고 착각하고 자신의 행동이 2차 가해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최악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Chapter 3의 제목처럼 <작은 배려와 존중>입니다.

누군가 잠시 곁을 지켜주는 것,

말 없이 건네 준 물 한 잔,

옷을 챙겨입을 시간을 주는 것,

호기심에 찬 구경꾼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 등과 같은

작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154쪽 중에서

범죄를 겪고 난 피해자는 관계 부적응, 우울증, 자살, 스트레스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양상으로 힘들어합니다. 이럴 때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말처럼 *돌봐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길은 덜 외롭고 덜 고단할 수 있으며 인고의 시간도 줄어든다고 합니다. 배려심 있는 태도의 판사나 검사, 이제 당신은 안전합니다 라는 출동경찰의 말 한마디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줍니다. 이제는 회복적 혹은 전환적 사법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말에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뉴스에서는 범죄의 잔혹성만을 다루고 피해자들의 심리적 안정과 보상에 대해서는 논외시하는 분위기들,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조망하고 그들을 위한 안전망이 더욱 더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것, 그것이 책 [ 용서하지 않을 권리 ]가 이야기하는 처방전입니다.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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