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준비가 안 됐다.
그것도 한참 부족했다.
그 때 나에게 없었던 것은
실력이었을까, 기회였을까,
아님 둘 다였을까.
정답이 무엇이든 나는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겉돌았다.
어느 한 군데에도 흡수되지 못하는
위태로운 주변인이었다.
112쪽
9급 공무원과 그 동기들의 이야기. 31살 이서기 친구들의 이야기까지. 책 표지에는 한걍뷰가 보이는 석양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군요. 그런 뷰를 볼 수 있다는 건 한강 근처에 아파트가 있어야 하며, 한강 뷰를 볼 수 있는 아파트는 실거래가가 얼마이며.. 자본주의의 생각으로 감성은 사라지고 복잡해집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현실을 오롯이 반영한 이서기를 비롯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습니다. 책 달러굼트 꿈 백화점을 읽을 때는 가상의 세상에서 꿈을 파는 백화점이라니!!하며 현실에도 그런 백화점이 있다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저 소설처럼 느껴졌기에 편히 읽었더라면 반면에 이 책은 대입, 취업, 직작생활, 돈, 결혼, 아이 등 이른바 우리 삶의 주요 문제에 대해서 이서기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남일 같지 않은 이야기. 그래서 더 와 닿는 이야기. 행정고시 3수를 하고, 9급 공무원에 합격한 이서기. 시보를 떼고 9급에서 8급으로 승진도 하고 마음을 잘 알아주는 현우와 결혼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월 200은 못 벌지만 집(주공아파트)부터 덜컥 구입하게 됩니다. 집을 샀다는 이서기의 이야기는 주변 주무관들에게 입소문처럼 퍼지게 되네요. 공무원 이서기의 사회생활이 이럴 때 더욱 힘들게 느껴집니다. 사적인 영역이 침범되는 순간, 공적인 영역에서도 뭔가 분노가 치밀어오르지요.
반면 이서기의 친구들은 또 다른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원으로 일하는 여정,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며 신한은행에 입사해 대리로 승진한 소라, 판교에서 아이폰 앱 개발자로 일하는 라라, 아이를 키우는 슬기의 이야기. 저마다의 색깔로 살아가다 쭈쭈바를 먹으며 한 때를 공유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함께 만나 까르르 웃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월 200이라는 작고 소중한 월급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서기는 더욱더 단단해짐을 느낍니다. 주변에 계시는 주문관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후임이 들어오면서,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9급이 6급에게 반항했다는 소문이 퍼져 이서기에게 위기가 닥쳐왔지만 그까이꺼~하면서 당당하게 이겨냅니다. 아버지가 하시던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 둬~'라는 말이 어쩐지 위로가 됩니다.
직장 생활, 부동산, 취업, 돈, 결혼 등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하나의 주된 이야기로 끌어내는 힘이 굉장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이 허구가 아니라 찐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자본주의 세상에서 공무원이 겪는 고민들, 2권이 더욱더 기대되는 책입니다. 과연 이서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친구 소라와 여정, 라라, 슬기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