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북스에서 무료로 대여해주길래 읽은 책이다. 제목에서부터 스릴러나 호러 장르의 냄새가 난다. 사실은 도심 속에서의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은 대리 운전 기사로 일하고 있는 정명환. 보증 사기로 떠안은 거액의 사채로 인해 사채업자에게 두들겨 맞고 정해진 기한까지 갚지 않으면 딸을 해치겠다는 협박을 받는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나타난 김 실장이라는 의문의 인물이 명함 한 장과 함께 제안을 하는데…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이면 한 명 당 1억 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명환은 황당무계한 김 실장의 제안을 처음엔 장난으로 여겨 넘기지만, 곧 일어난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이 살인 게임에 발을 들이게 된다.읽다 보니 <배틀 로얄>이나 <헝거 게임> 시리즈가 연상된다. 이런 주제로 많은 소설과 만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 작품의 차별적인 요소라면 각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함께 인간적인 면을 좀 더 부각했다는 것이다. 다만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이 수시로 튀어나와 누가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도 않고, 다소 중구난방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설정이 허술한 탓인지 중반부터는 몰입도가 떨어지며 스토리 전개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혹시 용두사미급 전개로 이어지진 않을까 불안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됐는데 그래도 결말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지어져 만족스러웠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사이비> 그리고 <부산행>,<염력>의 감독으로 알려진 연상호 감독의 만화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려다 사정상 완성하지 못했는데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화라는 형식으로 만들어 보았다고 한다.이야기는 주인공이 갓난아기일 때 집을 나간 어머니가 산 속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사체 부검 결과 어머니는 실종 직후에 사망하였고 사인은 낙상 또는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인공은 어머니 없이 시각장애인인 아버지가 홀로 키워왔는데,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버지로부터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심지어 영정 사진으로 쓸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았는데 부고를 듣고 찾아온 어머니의 형제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니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영희는 사진이 없어. 사진 찍기를 싫어했어. 얼굴이 괴물 같았거든...”어머니의 실종과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 그의 어머니 영희의 얼굴이 아주 못생겼었다고 말한다. 조소와 혐오가 담긴 말과 표정들... 그간 발표된 연상호 감독의 영화들이 그랬듯 이 만화 역시도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인간 내면의 추악함과 나약함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특히 아버지가 주인공에게 ‘자신이 이룬 것을 그냥 받아먹는 기생충’ 운운하며 일갈하는 장면은 세대갈등이 극대화된 현 시대를 보여주는 것 같다. 탁월한 이야기꾼 연상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영화평론가, 작가, 방송인인 허지웅이 여러 매체에 쓴 글을 모은 책이다. 나온 지 꼭 2년이 되었는데 마을도서관에서 눈에 띄어 읽게 되었다.바로 이전 책인 <버티는 삶에 관하여>도 그랬지만 이 책 역시 저자의 취향과 생각이 확실하게 드러난 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읽으면서 때로는 블랙코미디 같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2년 전의 기억들이 떠올라 주먹을 불끈 쥐고 입술을 꽉 다물게도 했다.저자가 좋아하는 영화와 배우, 아쉽게도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추모글 같은 것들도 여럿 있는데 무심한 듯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문장이 좋다.한국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글들에 공감이 많이 갔다. 왜 책 제목에 ‘친애하는’과 ‘적’이란 단어를 함께 썼는지 알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이 공간 역시 애증의 대상이지만 결코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시련이 고통스러운 만큼 더 큰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그 진리는 운명을 개척해 나아가는 데 꼭 필요했다 나에게 성경을 보라고 권한 강사가 준 지혜로운 충고 덕분에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더 분명히 알게 된 것이다. 말씀이 주는 지혜로 삶의 시련을 이겨내지 않는 한, 성경 내용은 대부분 의미가 없다. 하나님은 이런 이유로 성경 속 모든 종들에게 갈등을 겪도록 허락하셨고, 같은 이유로 우리도 갈등을 겪는다.
『중국 전역을 휩쓸었던 이 군중 운동은 6월 4일의 총성 속에서 재빨리 진압되었다. 같은 해 10월, 우리가 다시 베이징 대학을 찾았을 때는 이미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웨이밍호(未名湖) 호반에는 젊은 연인들의 그림자가 여기저기 나타났고 학생 기숙사 안에서는 마작을 하는 소리와 함께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름이 한 번 지나갔을 뿐인데 그 사이에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마치 지난 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이처럼 거대한 대비는 한 가지 사실을 여실히 설명해주었다. 바로 톈안문 사건이 중국인들의 정치적 열정이 한 차례 집중되어 폭발한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문화대혁명 이래로 누적되어온 정치적 열정이 마침내 깨끗이 발산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뒤로는 부(富)에 대한 열정이 이러한 정치적 열정을 대신했고,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돈을 버는 데 집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1990년대의 경제적 번영이 찾아왔다고 할 수 있다.』중국 인민에게 거대한 전환점이었던 톈안문 사건에 대한 글을 읽으며 우리의 6월 민주화 항쟁을 바라본다. 불의와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주먹을 들어올렸던 앞선 세대에 늘 빚진 마음이다.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느꼈던 80년대의 공포정치 이후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누려온 민주적 가치들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자. 뒤에 올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