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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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단편 8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제목의 ‘비행운’이 비행기구름을 뜻하는 말인가 보다 했었는데, 읽는 도중에는 ‘비(非)-행운’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작품 해설에도 역시 그런 중의적인 해석이 나와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딱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정들이 소름끼치게 현실적이고, 그들이 처한 자질구레한 상황들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치밀하게 묘사된다. 아득한 절망 너머에 간혹 실낱 같은 희망이 보이기도 하지만, 손을 뻗어 붙잡기에는 허탈한 결과가 예상되는 현실이다.

하지만 작가는 단지 불행을 전시하고 주인공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바벨탑처럼 끝없이 쌓여올려지는 문명의 이기, 자본의 유혹에 하릴없이 휩쓸리는 도시인들, 그 속에서 무언가 희망을 갖고 버둥거릴수록 수렁에 더욱 빠져드는 사람들... 그들을 그저 연민어린 시선으로만 바라보기보다는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지, 문제의식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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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
마리아 스토이안 글.그림 / 북레시피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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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성폭력 피해자들의 사례를 옴니버스 형태로 구성한 그래픽 노블이다.

이 책에 소개된 스무 개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얼마나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서 빈번하게 성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책에는 신체적 강자인 성인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때로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여성이 남성에게, 미성년자가 성인에게,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등 특정 대상에 국한되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님을 놓치지 않는다(물론 대다수가 강자에 의한-약자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만큼은 공통적이다.).

성폭력이라는 범주 안에서 형태도 다양하다. 강간, 신체적 접촉, 물리적 폭력, 언어적 폭력, 성희롱, 스토킹 등... 가해자는 순간의 쾌락과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이러한 행위를 하지만 피해자에게는 씻기 힘든 상처와 고통만을 남길 뿐이다.

작가는 한국어 독자들에게 남긴 서문에서 말한다. ‘이 책은 전 세계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특별한 소수만의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연대해야 하는 일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 책의 좋았던 점은 단순한 사례 모음집에서 그치지 않고 성폭력에 대한 대응책, 예방책을 말미에 제시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도 음지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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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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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제목을 보면 글쓰기 비법에 대한 책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말과 글을 다루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제목에 ‘조르바’가 들어간 것은 이윤기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국내에 최초로 번역하여 소개하였으며, 스스로를 조르바와 동일시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2010년 심장마비로 작고한 뒤 글쓰기와 번역에 관한 글들을 딸인 이다희 번역가가 찾아 한 권으로 묶어 내었다. 서문에는 이런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아마도 우리 팀이 가뿐히 승리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버지는 TV에서 ‘보여집니다’ 같은 말이 나오면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질색을 했다.
“이럴 때는 ‘보인다’고 하면 되지, ‘보여진다’고 할 필요가 없어. 응? 다희야.” 
(중략)
난 가끔은 좀 조용히 TV만 보고 싶었다.

말과 글에 관한 한 이윤기는 고집스런 원칙주의자로 보인다. 그러나 때로는 사투리나 속어나 은어 등의 사용에도 상당히 열려 있는 태도를 취한다. 어쨌든 언어의 사용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하고 고민한 사람이었다. 특히 우리말과 한글이 펄떡거리며 살아 숨쉬는 말과 글이길 바랐던 것 같다.

단어 한 개, 문장 한 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했던 작가이기에 곱씹어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들어 그냥 언어적으로 뜻만 통하는 것이 아닌, 군더더기 없고 아름다운 말과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인다. 그런 점에서 자극을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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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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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날 때마다 틈틈이, 가볍게 읽기 좋은 <아무튼~> 시리즈의 열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을 쓴 조지영은 불어를 전공했지만 재능과 노력 부족으로 인해 전공과는 다른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외국어를 잘하고 싶다는 로망이 있어 ‘외국어 3개월 정도만 배워보기’를 취미로 삼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으나 실은 언어적 감각이 뛰어난 분으로 보인다). 저자가 발을 담갔거나 지금도 취미로(!) 공부하는 언어는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하다. 각 언어마다 처음 빠지게 된 계기, 우리말과는 다른 문법 체계 때문에 좌절했던 경험 등을 재미난 에피소드를 곁들여 얘기하고 있다.

어학 초심자라면 공감할 대목이 많다. 꼭 해당 언어를 마스터하고 말겠다는 결심까진 아니더라도 야심차게 교재부터 사서 어학을 시작한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두세 달이 못 되어 흐지부지하게 된 쓰린 기억도...

이 에세이가 좋았던 점은 쓸데 없이 진중하지도, 과하게 개그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표지의 일러스트처럼 마치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듯 경쾌한 문체를 구사한다. 외국어를 대하는 글쓴이의 자세도 그러한 것 같다. 언어의 세계를 산보하듯 자신에게 맞는 보폭과 속도로 꾸준히 걷는 것. 서평을 쓰다 보니 결제해 놓고 한동안 잊고 있던 어학 수강 앱의 존재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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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무튼, 로드무비 - 다른 사람이 되길 바란 적이 있어? 아무튼 시리즈 13
김호영 지음 / 위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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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리즈 중 뭘 고를까 하다가 로드무비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로드무비 하면 대표적으로 <이지 라이더>가 우선 떠오르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나 <델마와 루이스>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생각나는데 저자는 몇몇 감독들의 영화를 중심적으로 소개하면서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을 덧붙이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가 미국의 영화를 주로 소비하다 보니 유럽 영화들은 아무리 유명한 감독의 것이라도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빔 벤더스나 장 뤽 고다르, 카우리스마키 등 이 책에 언급된 감독들의 영화들은 언젠가 주욱 한 번 감상하고 싶어졌다.

에세이인 까닭에 ‘로드무비란 무엇이다!’ 라고 딱히 이 책에서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저자가 짐 자무시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표현한 ‘벼랑 끝에 내몰린 청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독의 세계’라는 문장을 보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목적지가 없어도 무작정 떠날 수밖에 없는, 그 가운데 길을 잃거나 목숨을 잃기도 하는 여정. 인생을 흔히 길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로드무비는 유독 청춘을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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