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라이트, 성경의 핵심 난제들에 답하다>
처음엔 이 제목에 이끌려 책을 구매했지만,
책을 읽고 난 후 책 제목에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
저자 자신부터 난제들에 대한 답이 아니라고 서문서부터 밝히고 있지 않은가?

머리말서 크리스는(알지도 못하면서 친한척 한 번 해보자... 그가 이 글 읽을 것도 아니고...) 이 책이 `개인적인 책`임을, 또한 `신학적인 책`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아마 신학적인 책이 아니진 않을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몇 문장서 그는 이 책의 성격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주제들은 누구나 한번 쯤은 고민을 해 봤을, 그렇지만 교회내에서 쉽게 표출되기에 불편한 주제들이다. (크리스조차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으니 아마도 불편함의 이유는 목회자들도 잘 몰라서가 아닐까한다.)
그는 이런 주제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다.
신학적으로 접근하진 않지만
분명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리 어렵지도 않고
사실 책이 길지도 않다.

책이 괜히 더 무거워 보이는 건
그 주제들과, 제목과,
저자가 크리스토퍼 라이트이기 때문일 것인데...

그 것보다는 좀 더 부담없이 더 가볍게 읽고
더 무겁게 고민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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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 장준하의 항일대장정
장준하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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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은 왜 그리 급하게 왔던가?
고난의 36년을 천년 만년 같이 보내왔던 민족이
그 반가운 소식을 너무 급하게 왔다며 안타까워 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장준하는 국내 침투 계획을 준비했었다.
미군이 핵을 조금만 늦게 떨어뜨렸다면
작전은 아마 실행되었을 것이다.
(장준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 작전이 실행되었다면, 투입된 이들 모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찌알랴 역사를...

이 작전을 읽으며 같이 떠올렸던 인물이 있었다.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

이 작전이 실행되었다면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은 체 게바라가 아닌 장준하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상상이 즐거울 수록
현실은 괴롭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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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책임 - 한홍구 역사논설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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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위기의 대한민국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대선에 개입하고,
대통령 마음대로 한 나라의 정당을 해산시키고,
무고한 사람이 간첩이 되고,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는 배가 뒤집어 지더니
이제는 전염병이 온 나라를 뒤덥고 있다.

이러한 사실보다 더 무서운 사실이 있는데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한홍구 교수는 이러한 사실을 개탄하며 이러한 일들의 뿌리를 이 책을 통하여 밝히고 있다.
그는 특별히 보수를 말하며,
이땅에 진정한 보수가 사라졌음을 애석해하고 있는데,
어쩌면 진정한 보수 집안 출신인 그가 진정한 보수를 변호하고 있는게 아닐지...

독립운동가 출신의 할아버지와 제헌헌법의 기초를 세운 외할아버지를 둔 그의 가정이야말로 대한민국 진정한 보수집안이랄 수 있을 것이다.
현지 보수라 칭해지는 대한민국의 수구 카르텔을 보며 그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를 넘어 모독을 느낄만 하다.
책임지지도 않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집단을 향한 그의 일갈이 이 책에 담겨있다.

보수가 보수답기만 했어도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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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에 대해 생각해본다.

세계 제2차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처칠은 v를 그리고 라디오 연설을 하며 공중과 바다에서 싸웠지만
스탈린은 육군 대 육군으로 세계최강 독일 군대를 힘으로 눌렀다.

그는 또한 경제 발전의 지도자였다.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근대화를 이뤄가고
또한 프랑스는 혁명으로 그 나름의 민주화를 이뤄가고 있을 때,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그들의 소설에서 러시아를 지주 제도가 남아있는 후진 농업국가로 그리고 있었다.
스탈린은 그런 러시아를 세계 2대 강대국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를 위대한 국가 지도자라고 한다면?

근데 똑같은 논리로 독재자를 위대한 국가지도자라고 하는 이들이 참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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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이 없는 이에게 상실의 경험은 어쩌면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이에게도 상실은 찾아온다.
어쩌면 이 따위 책을 읽으며 상실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상실을 경험치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글좀 쓴다는 이 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의 경험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경험은 글로 남기 때문...
그중 특별히 두 사람의 글을 읽어보았다.

비슷한 아픔이지만 참 대조적인 두 글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와
제럴드 싯처의 `하나님 앞에서 울다`

두 글은 집필동기부터 다르다.
박완서 선생님의 책은 참척을 겪으며 본인 스스로의 슬픔을 이겨내려 은밀히 쓴 글들이 엮여 출간이 된 것이고,
제럴드 싯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자들에게 슬픔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알리기 위해 글을 썼다.
박완서 선생님은 끊임없이 왜인가를 묻지만,
싯처는 왜인가를 납득해간다.
박완서 선생님은 현재를 말하지만
싯처는 미래를 말한다.

누구의 글이 더 우위에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상실, 곧 시대의 상실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 상실에 관해 쓴 글에 공동체의 상실을 묻는 다는게 연목구어적인 발상임을 기꺼이 인정함에도 나는 당돌히 싯처에게 묻고 싶다.
보다 거대한 상실앞에서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울어야 하냐고...

홀로코스트 앞에서, 킬링필드 앞에서, 5.18앞에서, 세월호 앞에서 상실을 단지 개인이 극복해나갈 과제로서만 인식하는게 가능한 일인가?

오늘도 하나님께 묻는다.
당신은 과연 어디에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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