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그래도 헤어질 순 없잖아 - 오래된 연인.부부를 위한 사랑의 심리 보고서
율리아 온켄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끝->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이야기들의 뒤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상최대의 목표, 결혼까지 모든 역경을 이겨낸 이 주인공 선남선녀들의 결혼 생활은 그냥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뭉뚱그려져 마무리된다. 과연 그들은 행복했을까. 그 <둘>이 정말 끝까지 처음의 그 둘이었을까. 혹시 왕자가 이웃나라 공주와 놀아나지는 않았을까. 신데렐라는 시아버지 왕에게 집안이 형편없다고 무시당하지는 않았을까.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완결되어 해피엔딩의 행복한 미소 속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줄 알았다. 모든 동화들이 그랬고, 모든 드라마들이 그렇게 사랑을 확인했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들은 이제 다 안다. 지금부터 부딪히는 문제들이 점차 얼마나 불어나게 되고, 결혼은 지지고 볶는 현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급기야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안을 줄 알았던 환상은 깨지고, 치약 끝부분부터 짜서 쓰지 않고 꼭 중간 부분을 꾸욱 눌러놓는 남편,  컵은 여기저기에 서 너 개씩 바닥이 말라붙은 채 내버려 두는 <그 인간>에게 염증이 나기 시작하고 사소한 일로 싸우다 ‘이럴 바에야 이혼해!’라는 말이 튀어 나오고 만다. 처음엔 ‘설마,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냥 ‘밥 먹어’같은 일상적인 문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번번이 마음 속에서 꿈틀꿈틀 기어나오는 문장, <그래도 헤어질 순 없잖아.>


<그래도 헤어질 순 없잖아>라는 책을 집어드는 데는 몇 초면 충분했다. 제목이 친구가 되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래, 그래도 헤어질 순 없잖아.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한 적은 없고, 아마 앞으로도 이혼할 생각은 별로 없지만 가끔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라든지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처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식의 상념에 빠질 때가 있다. 남편이 아닌 다른 외간남자가 있어서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는 상상도 가끔 하고 만다. 몇 번의 헤어진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어서 애틋하고 아련하고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하고 그리워할 수 있지만, 정작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은 어느 결엔가 <그 인간>이 되어 지긋지긋한 현실처럼 달라붙어 있지 않은가.


책을 읽는다. 안다, ‘다들 나 같구나. 그럴 테지. 결혼이 뭐 별거더냐.’ 그러면서도 한편 위안을 받는다. ‘그래,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각 장마다 붙은 소제목들이 다 내가 무심결에 뱉어내는 말들이지 않은가 말이다. 책을 읽어내려 가자니 먼저 결혼한 선배 언니와 함께 있는 기분이다. ‘어머어머, 정말이니?’라고 내 얘기 다 들어준 다음 ‘그런데 말이지...’하고 자기 경험과 조언을 들려주는 선배.


이 선배가 나에게 말한다. ‘내가 이런이런 조언은 해 줄 수 있어. 하지만 말이지, 결국은 다 네 몫이야. 네 안에 답이 있어.’


신데렐라는 결혼 후 다시 재투성이 처녀시절처럼 돌아가 부엌데기 아줌마가 되어 왕자였던남편의 쩨쩨하고 소심하고 작태를 보며 한숨 푹푹 쉬며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한숨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신데렐라도 알게 될 것이다. 그 현실의 한숨에는 어딘가 모를 안도감도 숨어 있지 않을까. 그래도 헤어질 순 없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빈은12살 2004-08-3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땡깁니다... 멋진 서평 잘 읽었습니다.
 
나를 사랑하게 해주는 봄날 휘트니스
정다연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몸짱, 몸짱... 정말 짜증나게 많이 들은 말이다. 더욱이 몸이 성격보다 원만한 나로서는 이젠 몸짱 아줌마의 책까지 나왔다는 소리에, 그것도 <나를 사랑하게 해주는 봄날 휘트니스>라는 제목에, 이 봄날 소름이 돋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몸매 가꾸기 열풍인 이 사회가 이제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도 할 수 있구나, 라는 걸 보여주려고 일산 아줌마를 모셔다놓더니 급기야 책까지 내게 만든 것 같아 한심스러웠고, 적어도 나는 그 한심스러운 작태의 원에 들어가지 말아야지 다짐 아닌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이중적이게도 나 역시 내 몸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안다.  나 역시 이렇게 욕을 하지만 속으로는 어디 한 번 읽어 볼까, 그래서 나도 한 번 도전해 볼까 라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드는 것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체면 상(?) 얼굴 마주하는 공간에서는 못 사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 어디 한 번 읽어봐 주마.


이 책을 읽으면서 내 편견은  방송에서 만들어진 몸짱 아줌마가 아니라 건강한 몸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라는 공감으로 바뀌었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예의다. 이 책이 말하는 ‘봄날 휘트니스’는 단지 다이어트를 올바르게 하는 방법, 그래서 이 사회의 <짱> 대열에 합류하는 방법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축 늘어지고 지치고 힘없는 몸, 뚱뚱해서 자신이 없는 몸, 그 어떤 몸이든 내 마음에 차지 않는 몸이라면 그것은 내 마음까지 파고 든다.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시선은 45도 각도로 땅을 향하고. 이 따스한 봄날, 나만 우중충한 그림자를 만든다. 나만 납중독자처럼 봄날과는 저만치 떨어져 있다.  우리를 이 늪에서 건져 봄날을 만끽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건강한 몸이라는 것을 이 책은 내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사람들이 몸매에나 신경쓰고 머리는 텅 비었을 거라는 등등 비하하는 것과는 달리 꾸준한 노력과 정신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처음에는 그저 책은 잘 만들었네, 하면서 제본만 운운하다가, 약간 삐딱한 마음으로 몸짱이 된 계기를 읽어나가던 나는 나중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체조를 따라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 이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마야 스토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강한 여자도 아니고, 딜레마라면 찾아보면 없지는 않겠지만 낭만적 딜레마라는 건 글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그래도 역시 100%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라>는 제목을 거부할 수는 없었기에 모딜리아니 그림 속 여자처럼 목 긴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동료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전 좋은(돈 많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애 낳는 게 소원이에요.' 예전의 나라면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과연 진담인지 농담인지 그 저의를 의심하면서 '참, 한심하다. 어떻게 그런 게 소원일 수 있냐. 그러니까 여자들은 안 된다는 소릴 듣지.' 내심 툴툴거렸을 게 뻔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는 속으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렇게 자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대단한 일이라고 뇌까리고 있는 나를 만났다.

아마도 인정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동료의 발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나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혼해서 애 낳는 게 소원은 아니지만 어디 돈 많은 남자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법적인 결혼만 한 채 매달 500만원 씩만 준다면 직장 때려치우고 띵까띵까 놀아야지,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종종 하곤 하니 말이다. 이 책을 읽다가 내가 만난 것은 강한 여성도, 약한 여성도 아니고 '내 안에 있는 나의 그림자'다. 내가 나와 남의 도움(?)을 받아 나도 모르게 키어 온 '낭만적 딜레마'다.

'지금 나는 중성이야. 이렇게 사는 게 좋아. 아니면 너무 복잡해.' 책을 읽다 보니 중심 문장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런 대사가 눈에 걸려서 걸리적거린다. 뭔가를 파헤치고 들어가 이른바 변화를 꾀하는 데는 젬병이라 아, 만사가 다 귀찮아, 하면서 나 역시 이렇게 살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동화 속 여주인공은 아버지가 그 손을 잘랐으며, 남편이 된 왕이 은으로 만든 손을 붙여 주었고, 숲으로 들어가 혼자 지낸 7년의 시간 뒤에 자신의 손을 자신의 힘으로 찾는다. 그런데 나는 <내 손>을 <내 손>으로 잘라 묶어 버렸으니 아무도 상관하지 말라며, 속수무책이면서 속수무책이 아닌 척 지내고 있다. 아, 이 책을 읽다 보니 그만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내가 나를 바라보아야 할 때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