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마야 스토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강한 여자도 아니고, 딜레마라면 찾아보면 없지는 않겠지만 낭만적 딜레마라는 건 글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그래도 역시 100%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라>는 제목을 거부할 수는 없었기에 모딜리아니 그림 속 여자처럼 목 긴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동료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전 좋은(돈 많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애 낳는 게 소원이에요.' 예전의 나라면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과연 진담인지 농담인지 그 저의를 의심하면서 '참, 한심하다. 어떻게 그런 게 소원일 수 있냐. 그러니까 여자들은 안 된다는 소릴 듣지.' 내심 툴툴거렸을 게 뻔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는 속으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렇게 자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대단한 일이라고 뇌까리고 있는 나를 만났다.

아마도 인정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동료의 발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나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혼해서 애 낳는 게 소원은 아니지만 어디 돈 많은 남자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법적인 결혼만 한 채 매달 500만원 씩만 준다면 직장 때려치우고 띵까띵까 놀아야지,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종종 하곤 하니 말이다. 이 책을 읽다가 내가 만난 것은 강한 여성도, 약한 여성도 아니고 '내 안에 있는 나의 그림자'다. 내가 나와 남의 도움(?)을 받아 나도 모르게 키어 온 '낭만적 딜레마'다.

'지금 나는 중성이야. 이렇게 사는 게 좋아. 아니면 너무 복잡해.' 책을 읽다 보니 중심 문장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런 대사가 눈에 걸려서 걸리적거린다. 뭔가를 파헤치고 들어가 이른바 변화를 꾀하는 데는 젬병이라 아, 만사가 다 귀찮아, 하면서 나 역시 이렇게 살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동화 속 여주인공은 아버지가 그 손을 잘랐으며, 남편이 된 왕이 은으로 만든 손을 붙여 주었고, 숲으로 들어가 혼자 지낸 7년의 시간 뒤에 자신의 손을 자신의 힘으로 찾는다. 그런데 나는 <내 손>을 <내 손>으로 잘라 묶어 버렸으니 아무도 상관하지 말라며, 속수무책이면서 속수무책이 아닌 척 지내고 있다. 아, 이 책을 읽다 보니 그만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내가 나를 바라보아야 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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