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언어 - 주도권 게임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마티아스 뇔케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이 두 개의 문장을 말한 사람은 백화점 사장 김주원이다. 백화점 매출 향상을 위한 전략 회의에서 그는 언제나 주도권을 잡는다.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다. 기선을 제압하려고 먼저 말할 필요도 없다. 김 전무, 박 상무, 유 부장 등등 모두의 의견을 다 들은 후 마지막에 단지 저 두 문장으로 파워 게임에 종지부를 찍는다. 김주원 win.

 

물론 사장이다. 백화점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다. 하지만 지위가 높다고 다 주도권을 쥐는 것은 아니다.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김주원 사장님이 주도권을 잡는 힘은 ‘사장의 권력’보다 ‘권력의 언어’를 구사하는 데 있다. 김주원이 구사하는 언어에는 힘이 있다. 카리스마가 있다. 유머가 있다. 상대를 격하시켜 무능력자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권력의 언어’란 말로써 ‘내가 당신보다 한 수 위’임을 ‘신분의 명함’ 없이 드러내는 것이며, 내 의견을 관철시키는 힘이다. 대화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주도권을 쥐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 책 <권력의 언어>는 이러한 주도권을 재구성하는 언어 사용법에 대한 책이다. 처음 읽을 때 뭘 그렇게까지 주도권을 쥐어야 하나, 권력이라니 어감이 좀...했지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같이 보게 하는 것, 내가 가고 싶은 카페를 가게 하는 것 역시 대화에서의 주도권을 내가 잡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보면 ‘권력의 언어’는 쉽게 포기할 문제가 아니다. ‘위 아 더 월드’라며 수평선상에 있는 평등한 인간관계를 꿈꾼다 해도 ‘위 아 더 월드’를 먼저 말한 사람이 이미 주도권을 잡아버렸다. 나는 그의 발언에 따라가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말한다. ‘참 잘했어요.’ 칭찬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상대방이 나보다 한 수 위가 되고 만다. 나는 당신을 칭찬할 위치에 있다... 이런 젠장.

 

책을 읽고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를 봤다. 물론 인과관계는 없다. 그런데 예능에서 ‘권력의 언어’의 실제를 봤다. 토크쇼 형식으로 다양한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설정. 앉은 순서는 사회적 권력의 순서. 이경실부터 시작해 데프콘으로 끝나는 배치.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되면 ‘앉은 자리’가 주는 권력은 희미해진다. 이야기의 주도권을 쥐는 사람이 새로운 권력자로 부상한다. 유재석이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할 기회를 조절한다고는 해도 대화의 주도권을 잡은 사람이 있고, 출연했는지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사람도 있다. 말과 말 사이를 채가는 능력, 상대의 이야기를 재미없다고 평하면서 내 이야기를 부각시키는 법 등등 다양한 권력의 언어가 오가는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오호라, 이런 거구나.

 

소소한 일상이나 심지어 웃음을 주려는 목적의 예능도 이러한데 기본적으로 수직으로 존재하는 직장 생활에서야 주도권을 가져오는 언어사용법은 이른바 ‘국영수’다. 주요과목이라는 이야기다. 주도권 게임을 재구성하여(1부)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아(2부) 카리스마를 완성하는(3부) 권력의 언어가 단계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주요과목 공부하는 자세로 시작해볼까 한다. “미안하지만 저기 있는 저 책 좀 집어주면 안 될까요?”에서 “저 책 좀 줘요.”라고 말할 수 있는. ‘미안하지만’을 붙이는 것은 예의인 경우도 있지만, 내가 이 말을 붙이는 건 예의라기보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낮추는 습관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 말이 붙는 순간 이미 나는 미안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고 만다. 짧고 당당하게 요구하기, 그게 내가 할 ‘권력 언어’ 사용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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