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여덟 가지 철학적 질문
페르난도 사바테르 지음, 장혜경 옮김, 박연숙 감수 / 갈매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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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묘하다.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 것들이 서로 꼬투리 잡고 물고 늘어지는 거대 집합체라 '이해불가'의 도장을 쾅 찍어버리는 게 철학이기도하고, 나 철학적인 사람이라고 은근히 아우라 같은 게 뿜어져 나오기를 바라며 좀 알고 싶어지는 게 철학이기도 한다.

 

그러나 잘난 체 하려고 다가가기에는 너무 멀리 계신 존재였다...

철학은 너랑 어울리지 않아. 고고한 분이셔.

 

뭐 그렇게 고등학교 윤리 시간 이후로 나는 철학이라거나 철학스러운 것들과는 말을 섞지 않았다. 언어의 세계가 너무 달랐다. 사고의 체계가 다른 종.

 

그래도 가끔 만난다. 이해 못할 말만 늘어놓는다며 가까이하지 않다가도, 그래도 뭔가 뒤통수를 잡아끄는 떨치지 못할 매력이라거나 미련이라거나 뭐 그런 것들이 있는 탓이다. 얼마 전에는 소설인 줄 알고 읽은 <루소의 개> (루소가 개 키우는 이야기가 아닐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라는 책에서 데이비드 흄과 루소를 만났다. 솔직히 나는 이분들이 왜 싸웠는지 모르겠다. 그때 잠깐 흄과 루소의 철학이 얼마나 다른가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오래 머물러 있어야 했다. 이해가 안가서만은 아니었다.(물론 이해는 안 갔다.) 이해의 문제를 떠나 궁금해지는 것들이었다.

 

그러다가 세상이 던지는 질문을 만났다. 거기에서 다시 흄 씨도 만났다. 세상은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었지만 나는 청맹과니로 있었다. 우리의 죽음에 던지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펼쳐지는 질문의 우주.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갑자기 철학의 아우라가 번쩍이는 건 아니다. 여전히 철학은 뭔지 모르겠는 소리다. 그런데 궁금하게 만드는 소리다. 그리고 그 질문들을 궁리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나면, 내 세상이 조금 너 넓어지고 풍요로워져 있어서 흐뭇해지는 기분이다. 곳간에 가득 든 쌀 바라보는 사람처럼.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는 결과로서의 을 원하는 책이 아니다. ‘어떻게를 찾아가는 과정, 그 끊임없는 질문을 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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