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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피델리티
닉 혼비 지음, 오득주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high fidelity
(라디오 전축이 원음을 재생하는) 고충실도, 하이파이
닉 혼비의 <하이 피델리티>는 35,6세 남자의 성장 소설이다.
'그때'는 짧고 '지금'은 길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때'에 열광한 걸 보면 보나마나 다 알지만 나는 아직 성장 전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원작이라고 생각하고 읽고 있다가
빌 머레이와 매치가 안되는 건 아닌데 어딘지 너무 젊다 하다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원작 소설이란 걸 알았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주연은 존 쿠삭이다. 존 쿠삭이라니까 바로 매치가 된다. 존 쿠삭의 그 부산하면서도 자기성향이 강한 분위기와 그러면서도 외따로인 성격에 가해지는 자기비하적인 유머러스함 말이다. 여기에 내용이나 인물이 브로큰 플라워도 연상시키고 있어서 존 쿠삭과 빌 머레이를 오가며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보다 짧은 '그때'를.
삶에 대한 비전 보다는 삶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고 사는 팝 매니아 로브 플레밍, 그가 하는 챔피언쉽 비닐이라는 레코드 가게는 장사는 뭐 이미 물 건너 간 상태고 딕과 배리와 함께 순위 베스트 5나 매기면서 일반적인 30대 중반의 남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로라가 떠난다.
아, 말이지. 정말 철 안든 나로서는 로브와 딕과 배리가 끝까지 챔피언쉽 비닐에서 비전없는 생활을 포기하지 말아주길 얼마나 바랐는지 원. 뭐 굳이 커야 되냔 말이지, 내 말은.
여하튼, 처음에 <그때>를 읽었을 때 보다 <지금>에는 덜 열광했지만 그래도 재치있는 작가의 발견이다. 간간이 들어가는 에피소드들이 인상적이다. 폴 오스터의 담배 가게나 하루키의 빵가게를 드나드는 인간 군상들 말이다.
아, 정말 많은 음악이 나오는데 누가 차례대로 컴필레이션 테이프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로브 플레밍 식으로 말하면 누구나 그 테이프를 만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지만, 나로서는 순수한 문맥적 의미로 말이지.
내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다섯 번의 이별을 연대순으로 꼽아보라면 다음과 같다.
1) 앨리슨 애시워스
2) 페니 하드윅
3) 재키 앨런
4) 찰리 니콜슨
5) 사라 켄드류
모두 내게 정말로 상처를 준 여자들이다. 로라, 거기 네 이름 보여? 넌 10위 안엔 어찌 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5위 안에는 절대 못낄 걸. 5위까지는 내게 굴욕감과 비통함을 안겨준 사람들에게만 할애되거든. 너는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말하고 보니 의도했던 것보다 더 잔인하게 들리는군. 사실 상대방에게 비참함을 안겨주기엔 우리 둘 다 너무 나이 들었지. 그건 다행이야. 나쁜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5위 안에 들지 못했다고 너무 빈정 상하지마. 그 시절은 갔어. 빌어먹을, 속이 다 후련하군. 그때는 불행이라는 게 엄청 크게 다가왔었지. 이제는 날이 춥다거나 돈이 떨어졌거나 하는 정도밖엔 안되는데 말이야. 정말로 내 삶은 뒤흔들어 놓을 요량이었으면, 우린 훨씬 전에 만났어야 했다고.(8-9쪽)
열세 살 소년이 여자애한테 채여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손은 땀에 전 채 울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쓰며 자기가 놀던 데로 돌아가도 괜찮은 시간이란 언제일까? 분명, 9월 하순의 어느 오후 네 시는 아니리라.(13쪽)
옷 가게에 멋지게 개켜져 색상별로 진열된 셔츠를 보고서 한 벌 샀을 때의 그 기분, 아는가. 집에 가져 와서 보면 언제나 완전 딴 옷처럼 보인다. 딱 어울리는 옷과 멋지게 매치돼있었기 때문에 가게에서만 근사해 보였다는 사실은 늘 나중에야 깨닫는다. 글쎄, 대충 그런 거였다. 재키와 사귄다면 상류층 같은 품위가 나한테도 옮겨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필이 없는 재키에게 그런 건 애당초 없었다. (만약 내가 그런 걸 원한 거였다면 그 둘을 한꺼번에 사귀는 법을 찾아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성인에게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열일곱 살에는 돌에 맞아 죽을 일이고.) (22쪽)
모든 일이 너무도 빨리 일어났다. 난 그 '어른의 인생'이 오래도록 에로틱하고 유익하게 지속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딱 2년뿐이었다. 가끔은 그때 이후로 내가 겪은 모든 일과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은 다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60년 대, 전쟁, 혹은 자기 밴드가 호프 앤 앵커에서 닥터 필굿의 보조 반주를 해주던 밤을 절대 넘어서지 못하고, 그저 뒷걸음질만 치며 남은 인생을 산다. 나는 결코 진정으로 찰리를 극복해내지 못했다. 중요한 일이, 나를 규정짓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 시기였다.(30-31쪽)
사람들은 어린애들이 총을 가지고 논다고, 10대 청소년들이 폭력적인 비디오를 본다고 걱정한다. 그들이 폭력 문화에 길들까 봐 두려워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너진 마음, 거부, 고통, 비참함과 상실에 대한 노래를 수천 곡(말 그대로 수천곡이나 된다) 듣는다 해서 걱정하진 않는다. 내 생각엔 가장 불행한 사람은, 낭만적으로 말해서, 팝 음악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팝 음악이 이런 불행을 야기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불행한 삶을 살아온 기간 보다 슬픈 노래를 들은 기간이 더 긴 것은 분명하다.
그건 그렇고, 직업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법: 1) 여자 친구와 찢어지기. 2) 학교를 때려치우기. 3)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기. 4) 남은 생을 레코드 가게에서 보내기.(32쪽)
난 이 자세로, 그러니까 가게를 꾸려가는 자세로 굳어버렸다. 영원토록. 1979년 내가 살짝 맛이 갔던 겨우 몇 주 때문이다. 어찌 생각하면 더 나빠질 수도 있었으리라. 군인 모집소, 아니면 가장 가까운 도살장으로 걸어 들어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얼굴을 찌푸린 탓에 기류가 바뀐 건 사실이란 생각이 들고, 그 결과 지금 이렇게 지겨운 우거지상으로 삶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33쪽)
나의 비범함은 (그렇게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양의 평균치를 한데 모아서 하나의 틀에 꽉꽉 채워 넣었다는 데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수두룩하다고는 하나 실상을 그렇지 않다. 많은 녀석들이 나무랄 데 없는 음악적 취향을 가졌지만 독서와는 담을 쌓았고, 많은 녀석들이 책은 읽지만 심하게 뚱뚱하고, 많은 녀석들이 페미니즘에 동조하지만 머저리같이 턱수염을 길렀고, 많은 녀석들이 우디 앨런 식 유머감각을 가졌지만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많은 녀석들이 운전대만 잡으면 멍청한 행동을 일삼고, 많은 녀석들이 싸움질에 휘말리거나 돈 자랑을 하거나 마약을 한다. 난 그런 짓은 전혀 하지 않는다. 정말이다. 내가 여자들과 잘 지낸다면, 그건 내가 가진 장점 덕분이라기 보다는 내가 가지지 않은 단점 떄문이다.(36쪽)
진정 우리 둘의 공통점은 차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차는 일에 반대한다는 점이었다. 우린 극렬한 '차기' 반대주의자였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어쩌다가 또 차였단 말인가?(39쪽)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그녀가 내일 올 것인지, 온다면 거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지, 만약 의미가 있다면 우리 중 누구에게 의미가 있는 건지(설마 배리는 아니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제길, 지겹다. 나이를 얼마나 더 먹어야 이 짓도 끝날까?(75쪽)
멋지다, 우울하다는 것은. 얼마든지 엉망으로 행동해도 되니까.(94쪽)
관심이라는 측면에서는 난 늘 적자다. (127쪽)
내가 어디있는지 알게 해주는 것은 바로 친구들과의 관계였다. 자기가 어디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인지력을 잃었을 때 사람은 향수병에 걸린다. 그런 이치다.(2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