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류진운 지음, 김태성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핸드폰 때문에 우리는 말의 광속의 시대에 살고 있고 더이상의 비밀 유지가 어려워지고 있다.
옌셔우이의 핸드폰이 그렇고, 페이모의 핸드폰이 그렇다.

옌셔우이의 이야기가 끝나고 시작되는 3장은 옌 씨가 타지에 있는 큰아들에게 집에 오라는 연락을 하기 위해 2년이 걸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달리 말을 전할 방도가 없던 1920년대 말의 농촌에서 큰아들이 있는 곳에 가는 사람에게 소식을 부탁하고, 부탁 받은 사람은 또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게 되고 이렇게 저마다의 사연으로 갈수록 진해지는 '말'은, 물론 전할 말 하나는 같지만 그 과정에서 각각의 속속들의 삶이 더해져 드디어 큰아들에게 도달한다. 그리고 큰아들은 아버지의 부름을 들은 지 2년만에 집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옌셔우이가 사는 핸드폰의 시대는 그렇지 못하다.

옌셔우이의 거짓말과 불륜은 실시간으로 핸드폰과 함께 붙어다닌다. 페이모가 말했다. 가까워. 너무 가까워서 숨을 못 쉬겠어.

"그래도 농경사회가 좋았던 것 같아."
옌셔우이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

"어째서?"

페이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는 걸어 다니는 방법 밖에 없었잖아. 그러니 과거 보러 갔다가 몇 년 뒤에 고향에 돌아와서 어떤 핑계를 대도 그대로 다 먹혔지."

그러고는 탁자 위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지금은......"

옌셔우이가 말을 재촉했다.

"지금은 어떤데?"

페이모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까워. 너무 가까워. 너무 가까워서 숨을 못 쉬겠어."

옌셔우리도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이 작가의 <닭털 같은 나날>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에서 닭털을 찾는데 한참 걸렸다. 처음엔 정리정돈 된 내 책장이 이제는 포화상태가 되어 거의 창고 수준이니 어디에 어느 책이 있는지 나로서는 알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코딱지만한 방에는 더이상 책장을 둘 공간도 없다.)

일본 현대 소설은 미소 된장국 같은데 중국 현대 소설은 그러니까 우리 음식으로 치자면 투박한 뚝배기 같다. 세련된 치장은 없는데, 우묵하고 묵직한 게 사람 냄새가 더 난다.

 
한국어판 서문-은밀한 말의 역사-에서 발췌

<핸드폰>은 비밀을 들춰내기 위해 쓰인 소설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말의 역사를 밝히기 위한 작품이었다.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 말을 열 몇 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정보통신사회로 접어들면서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루에 천 마디를 넘게 되었다......때문에 언어의 홍수를 이루는 이 세계는 너무나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한 언어학자는 내게 이 세상에 진정으로 유용한 말은 하루에 열 마디를 넘지 않는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매일 3천 마디가 넘는 말을 뱉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언어학자의 말대로라면 이 가운데 열 마디만 빼고 나머지는 전부 거짓말이나 헛소리인 셈이다. 문제는 이 온갖 거짓말과 헛소리들이 인간의 사회관계와 가치지향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고 모든 개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언어의 범람이 모든 사람들의 신변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언어 현실에 대해 나는 문득 모골이 송연해지는 공포감을 느꼈고 이러한 공포감을 소설로 써내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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