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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 엄마를 보내고, 기억하며 ㅣ 삶과 이야기 1
이상원 지음 / 갈매나무 / 2019년 11월
평점 :
‘엄마’라는 단어는 ‘어머니’와는 달라서 엄마, 라고 발음하면 이내 저릿하고 아릿하고 뭉클하고 뭔가 갑자기 그렁그렁해진다. 밥 냄새 같은 푸근함보다 아릿함이 먼저 생겨나는 건 어느 새 늙어버린 내 나이 탓일까. 이제 나이 들어버린 자식은 엄마가 ‘엄마’로 살아온 삶의 이력과 ‘엄마’가 아닌 한 여자, 한 사람으로서 살아온 삶의 이력을 조금쯤은 알게 되어버린 탓에 혼자 엄마,라고 뇌까리면서, 혼자 아릿해한다.
삶이 비루하다고 느낀 적도 있지만, 굳이 뭐 비루할 것까지야...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고,
흘러는 가는데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겠고,
어느 광고에서는 미완성으로 태어나 원하는 나를 완성시켜가는 인생이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이란 어느 정도 서로 닮아있지 않나. 얼굴은 다 다르다지만 눈과 코와 입으로 이루어진 대강의 얼개처럼 말이다.
쉰 줄에 접어든 늙은 딸, 여든 살의 늙은 엄마.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여든 살의 엄마, 결국 돌아가신 여든 살의 엄마.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엄마의 결혼 생활, 엄마이기 이전의 삶,
읽다 보니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집에는 오래된 친척처럼 ‘병’을 앓는 어르신들이 계시고, 간병에 지치고 각자의 삶에 바쁜 자식들이 있고, 우리네 부모들의 결혼 생활은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지치고 나가떨어지다가도 ‘엄마’는 늘 그리운 이름이고 아픈 이름이고 가슴 저린 이름이고,
그런 엄마와 엄마의 병과 엄마의 죽음을 지켜본 딸의 담담한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삶은 결코 비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사는 게 거기서 거기라지만 ‘엄마’는 삶을 비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엄마는 내 삶의 후광이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용식이는 자기가 호감형이라 사람들이 다 자기에게 잘해준다고 좋아라 한다. 하지만 그 뒤에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동백이는 그래도 엄마가 자기를 늘 지켜봐 왔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하기를 바란다.
용식이 엄마도, 동백이 엄마도 미우나 고우나 다 자식들의 후광이다.
엄마를 기억하는 딸에게도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