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이 부른다 - 해양과학자의 남극 해저 탐사기
박숭현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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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숭헌 박사는, 우연히 참여하게 된 온누리호 해양 탐사를 시작으로 25년 동안 25번, 즉 그 이후 매년 한 번씩 탐사 길에 올랐다.

남극권 중앙 해령 최초의 열수 분출구, 열수 생태계를 구성하는 신종 열수 생물, 빙하기-간빙기 순환 증거, 남극-질란디아 맨틀의 발견 등 그가 이루어낸 성과들은 많고, 지금은 전 세계의 지구과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인물이다.

『남극이 부른다』는 1996년 늦은 3월, 처음으로 온누리호 해양 탐사를 나간 이야기 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에 해양 연구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그 날, 박숭헌 박사는 지질학을 공부하고 있으면서도 해양학이라는 학문이 무엇을 공부하는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해양 연구가 박사의 적성에 맞을지 알 수도 없고, 그저 바다로 나간다는 기대만 품었던 첫 시작. 태평양 탐사는 박사에게 첫 해외여행이며 첫 미국 방문이어고, 첫 대양 탐사였다. 이 특별한 기회는 여러모로 '처음'에 대한 기억을 남겨준 것 같다.


첫 대양탐사 이후 밧는 연구소에 남아있기로 결심했다. 그럼에도 그가 해양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은 별로 없었다. 연구소에서 박사의 업무를 지도하던 선임 연구원에게 "해양학의 연구 대상은 바닷물인건가요?" 하고 물었을 정도로.

바닷물은 해양학의 중요한 연구대상인 것은 맞다. 하지만 바닷물로만 한정할 수 없었다. 해양학이라는 과학이 해류와 조석 등을 연구하는 물리해양학, 바닷물의 화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화학해양학, 바다에 사는 생물을 연구하는 생물해양학 그리고 바다 아래 지질을 연구하는 지질해양학으로 구분된다는 것(26p)을 알게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고 박숭현 박사는 말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의 사람들에게 바다는 친숙하지만, 여러모로 지식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박숭현 박사에게도 바다는 너무나도 넓었고 우리는 무지했다.

이후 지진과 거친 해황을 만났던 남극 중앙 해령 1차 탐사를 위해 40간의 여정을 한 경험, 첫 남극 탐사, 그리고 지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바다 연구 결과 등을 책에 담고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진들도 함께 실려있는데 재미난 볼거리이다. 탐사 현장이나 탐사할 때 사용하는 장비들, 심지어 신종 생명체들의 사진도 있다. (p276에 '무진 열수구 지대에서 발견한 신종 생명체 키와 게와 일곱 다리 불가사리'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뭔가 징그러운데 계속 보게되는 신비로움이 있었다. 꼭 책에서 확인 해 보시길)


또한 한번 탐사를 나가면 여러 나라를 거쳐야 하고 또한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 속에서 경험한 다양한 문화 또한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기억남는 이야기는 포토모르즈비에서 마실 물을 시킬 때 Water가 아닌 H2O로 말해야 한다는 것. 너무 귀엽지 않나. "H2O주세요!!"


그리고 이 책에서 무엇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남극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에게 남극이란 우주와도 같은 공간이다. 미지의 세계, 언젠가는 가보고 싶지만 어쩐지 평생 갈 수 없어 보이는 그런 세계.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박사님도 "남극에 가보았냐." "펭귄을 봤느냐." 하는 남극에 대한 여러 질문을 주변인들에게 받았었나 보다. 박사님은 남극 체험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데, 그것은 실제로 부딪혔던 현실과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여러 상상속의 신비의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는 남극은 눈으로 뒤덮인 찬란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남극에 가보지 못했으니까!

남극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최근에 본 사진이 한장 떠올랐다. 눈이 다 녹은 남극의 사진.

원래 1~3월은 남극의 하계시즌이라 눈이 녹아서 땅이 드러나는 시기라고 한다. 하지만 올해 지난 30년 보다 평균 기온이 1도 정도 높았다고 한다.


세상은 참 넓고, 깊고, 새로운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들이 인간들로 인해서 발견되지도, 연구되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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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감각은 필요합니다 - '센스 있는 사람'이 되는 생활·일·마음가짐 단련법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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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마쓰우라 야타로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그곳에서 미국의 서점 문화에 매료되어 귀국 후 트럭을 마련해 여행하는 서점을 열었다고 한다. 트럭에 책을 싣고 자유를 향해 떠나는 이 서점의 이름은 카우북스(COW BOOKS)로 일본의 셀렉트 서점의 선구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여행하는 서점이라니, 어쩜 이렇게 로맨틱 할 수가!

일상을 보다 흥미와 교훈을 더하며 무인양품의 생활 프로듀서로 소개되는 마쓰우라 야타로는 삶에 '좋은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감각은 학교나 사회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감각은 필요합니다』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떻게 좋은 감각을 가지고 기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짧은 내용을 담고 있는 개별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시간 날 때 마다 조금씩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이런 책은 허겁지겁 읽기 보다는 조금씩 음미해 나가면서 읽어야 더욱 더 삶의 지혜를 깊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느림의 미학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이 글에는 가장 좋았던 챕터를 두가지 뽑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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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고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좋은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34p


작가는 '쓰기'라는 것은 곧 '생각하다'라고 여긴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감각적인 것을 포착하여 말로 구현해나가는 것이 모두 '생각하는 것'의 행위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장을 쓰는 일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할 뿐더러 때로는 괴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짤막한 일기 한줄이라도 써본 사람들은 모두 잘 알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글 쓰는 연습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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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깨우고 익힐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을 신중하게 선택하려고 합니다. 나에게 물건을 사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154p


이 챕터는 짠순이 기질이 있는 나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나는 물건을 살 때면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우선순위로 두게 되는데, 작가는 '가격 확인이 그 물건과의 첫 대면이 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가격을 보는 행위는 앞으로 물건의 좋은점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처음부터 놓아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가격과 물건의 상관관계에 대한 챕터 이후 이 글에서 적는 챕터는 이어지는 것 같다. 감각을 깨우고 익힐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은 그 무엇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 가격을 먼저 보는게 아니라 그 물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천천히 감상해보자. 그것 마저 좋은 감각을 깨우는 일이다.


이 책의 좋은점은 부록으로 좋은 감각을 깨울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가 4가지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하기 전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볼 수 있는 페이지,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잠들기 전 나의 습관, 좋아하는 미술관 리스트나 책이나 영화 등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찾아 기록하는 연습하는 페이지. 나의 일상을 천천히 되돌아 보면서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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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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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이라 후덥지근하고, 장마철이라 하루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낮이어도 어두컴컴하다.


이런 날씨에는 뭐다? 공포소설이다!

공포소설 중에서도 범죄 스릴러 이런것 말고 초자연현상으로 인한 심장 쫄깃해지는 그런 공포가 땡기는 그런 여름의 어느 날이다.


『이사』의 작가인 마리 유키코는 사실 처음 접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책 맨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 부분도 꼼꼼하게 읽었다.

마리 유키코의 작품은 '이야미스'장르로,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가차 없이 그려내기 때문에 읽고나면 기분이 찜찜해지고 불쾌해지는 미스터리를 가리킨다고 한다.(257p) 추리를 통한 사건을 파헤치는 것 보다, 범죄나 사회 현상 속에서 사람들의 어두운 내면을 표현하는 심리 묘사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마리 유키코의 이번 작품인 『이사』는 이른바 '도시전설'이라고 불리는 실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지구상에 어디선가 일어났을 법한 괴담을 모아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특히 책 제목인 『이사』에 맞게 수록된 이야기들이 모두 이사와 관련되어있다. 너무나 일상적인 상황을 괴담으로 만들어 버려 더욱더 오싹하다. 진짜 무서운것에 면역력이 1도 없는 분들은 이 책을 읽은 후에 이사를 갈 수 있을지......

이번 작품에서는 이야미스적인 측면을 살짝 내려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록된 몇몇 작품은 여전히 읽고 난 뒤에서 꺼림칙 해서 오싹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수록된 작품은 총 6작품이고, 마지막 <작품 해설>까지 주의깊게 읽기를 권장한다.

<작품 해설>은 신기하게도 또 하나의 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본문에 실린 총 6편의 글의 소재를 인터넷 어디선가 떠돌아 다니는 하나의 도시전설처럼 재구성 해두었다. 사실 일본에는 도시전설이 많아서 나는 읽으면서 정말 이런 사건이 있는가, 정말 이런 도시전설이 있는가 하면서 검색해 봤다. 그정도로 '있을 법 한 이야기'라는 것.


참고로 모든 소재들은 픽션이다. <작품 해설>에 일본 어느 지역 누가, 어떤 범죄자가 등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등장해서 진짜인 것 같지만 검색해 봐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 직접 해봐서 안다.


구체적인 지명은 언급을 피하겠지만 도내 어느 지역, 흔히 세련된 거리로 유명한 B시 B역 주변에는 멋진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중략) 그중에서도 한층 멋들어진 맨션이 있다. 바로 '벽돌저택 몽마르트'(가칭)다. 방송도 몇 번 탄, 여성에게 인기 있는 맨션이다. 하지만 일부 오컬트 팬들에게는 '원령 맨션'으로 알려져 있다. 3년 전 일부 오컬트 게시판에 해당 맨션의 입주자가 글을 올린 것이 계기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노래가 들린다'는 내용의 글이었다.(234p)

기요코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살인범인 오다 게이타로가 살았던 집이라는 것을 알고난 후에 언젠가 다시 살인범이 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사갈 집을 찾아보러 다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기요코는 준공 5년차인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신축이 아니고 벽에 구멍이 뚫려있고 창밖의 소음이 시끄럽다는 것만 빼면 오히려 좋은 집인 것 같았다.

건물 관리자를 돌려보내고 혼자 집을 둘러보던 중, 기요코는 비상 대피 경로를 확인하면서 비상문을 발견하게 된다. 그 비상문을 열자 그 안에 또 하나의 철문이 있었다. 이 문은 어디로 연결되는 걸까? 단면도를 확인해 봐도 자세한 설명이 없어 기요코는 그 문을 열고 말았다.


수납장

가이즈카 나오코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2년 전, 같은 맨션에 사는 남성을 살해한 죄로 체포됐을 때 상당히 화제가 됐다. 저명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점도 한몫했지만, 조사 결과 그녀 주변에서 남자 여섯 명이 변사했음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모두 그녀와 교제했던 사람들로, 가이즈카 나오코는 재판에서 "남자한테서 해방되고 싶었다"라고 증언했다. (237p)

'나'의 유치원 시절의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나'는 아빠의 얼굴도 모르는 혼외자로,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혼외자라는 것이 지금처럼 개방적으로 다룰 화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스로 '아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꺼려졌다.

하지만 자신이 혼외자라는 것이 불편하다거나 비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 유치원에서 내준 과제에 당황하고 말았다. 선생님이 '아빠 얼굴을 그려보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멍하니 있던 '나'는 아무튼 뭐든지 좋으니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에는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지?

참고로 이 작품은 서술자가 두명이다. 눈치채지 못하게 서서히 다가와서 혼란스럽게 하는 뭔가가 있다.


책상

범인 미카와 가쓰나리는 그야말로 그런 풍모의 남자였다. 그리고 R자동차가 기타사이타마 공장에 근무하는 회사원이기도 했다.

원래는 본사 소속이었지만, 출세 경쟁에서 패배해 삼십 대에 공장으로 날려 왔다는 모양이다.(중략)

그러한 일들로 서서히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는지 미카와는 '맛기행'에 나선다. 라면집 순례부터 시작해 결국에는 '진미'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지역 사냥꾼이 잡은 멧돼지 고기를 맛본 것이 계기였다. (239p)

마나미는 이사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사무실에는 오만 가지의 물건이 넘쳐나서 비좁아 보이는 공간이었고, 사장과 사장의 누나인 아쓰코는 뭔가 수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전화 업무를 담당하면서 마나미는 기묘한 전화를 자주 받게 되었다. 냉장고를 매입하겠다고 해놓고 별의 별 트집을 잡으며 돈을 주기는 커녕 대형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이만 엔을 받아갔다던가, 버리는 물건이 아닌데도 짐이 분실됐다던가.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아쓰코의 행태였다. 첫 만남부터 저혈당 때문에 대화를 멈추고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마구 퍼먹더니, 마나미가 사무실 냉장고에 넣어둔 디저트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나중에는 이름이라도 적어둬야 겠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뒤돌아 서고는 메모지를 만들기 위해 책상 서랍을 이리저리 찾아보던 중, 서랍 안쪽에 하얀 종이가 끼여져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종이 뭉치에는 '누군지 모를 당신에게'라는 글로 시작하는 편지였고, 거기에는 이름을 밝힐수 없지만 편지를 쓴 이는 사무 업무와 전화 당번이었으며 자신의 일을 봐주는 A씨가 이상하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쓴 이는 퇴근 후 사무실 냉장고에 넣어둔 간식을 가지러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고, 그 때 A씨가 냉장고에서 무언가 먹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인육이었다.


상자

'기타신주쿠 7대 불가사의'를 아는지?

바로 기타신주쿠라 불리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곱 가지 괴현상을 뜻한다. 이른바 '학교 괴담'의 거리 버전인데, '학교 괴담'이 그렇듯 미심쩍은 현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딱 하나 '진짜' 괴현상이라 일컬어지는 현상이 있다. 기타신주쿠 센트럴공원 부근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노숙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괴현상'이다. (241p)

3월 중순, 유미에가 다니는 회사에서 대규모 배치전환이 있었다. 유미에 또한 소속부서 자체의 위치가 바뀌어 3층에서 7층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7층으로 이사를 간 날 유미에는 잘못된 상자들이 자신의 층으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짐 또한 하나도 도착하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된다.

유미에는 자신의 짐이 든 상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총 세개의 상자. 다행히 친구인 교코의 층에 짐 하나가 있었지만 다른 상자들은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짐들을 찾은 것은 퇴근 시간 30분 전, 우연히 분수광장에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이다. '불필요품 봉지'에 들어있는 자신의 물건. 그리고 한 노숙자가 'D07'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자신의 상자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유미에는 그 노숙자의 뒤를 쫓아간다.


제한된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는 면에서 이웃 사람과 의 분쟁만큼 부질없는 것이 또 없다. (중략)

내가 침실에서 자고 있으면 옆집 사람이 내는 소리가 바로 이쪽으로 새어 들어온다. 한창 뛰어놀 나이의 아이라도 있는지 소움이 폭주족들보다 악질이다. (246p)

하야토는 어린시절의 가정 폭력에 대한 악몽을 꾸면서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그리고 회사 동기인 이토도 자신과 똑같은 몰골인 것을 보고 '너도 악몽을 꾸냐'하고 물었는데, 이토는 '현실'에 시달리고 있다고 대답한다.

이토가 살고있는 맨션 옆집에 그 부부가 이사온 것은 올해 초봄이었다. 맨션의 벽은 얇지 않지만 열어둔 창문을 통해서 옆집의 이야기 소리가 모두 들어왔다. 처음 그 대화는 일상적인 것이었다. 도시락이 조금 매웠다는 정도. 오히려 이토는 그 대화가 참 부러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대화에 점점 날이 서기 시작했다. 도시락이 맛없다거나, 성가시다거나. 꼭 이혼 직전의 부부 같은 느낌을 들 정도로 격한 대화였다. 그리고 결국, 이번 달 들어서 자주 싸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밤중에 말이다.

소리지르는 목소리나, 나중에는 벽을 쾅쾅 치기까지 해서 이토는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말았다. 게다가 가끔 여자가 흐느껴 울며 미안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 가정폭력일 것이다.

이토는 결국 경찰에게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이 방문했을 때 문을 열어본 것은 부인이었고, 사태의 장본인인 남편은 나와보지도 않았더랬다. 부인은 남편을 부르는 경찰에게 그냥 돌아가 달라고 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감싸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토는 경찰에 신고해 줘서 감사하다는 옆집 여자의 인사를 받았다.

하야토는 그날도 야근하는 중이었다. 아마 이토도 야근인듯 보였다. 하야토는 추억속의 과자를 먹으면서 옛날 이야기를 했다. 엄격하고 속좁은 아버지, 아버지의 꾸중에도 누나와 어린 하야토는 초콜릿 파이를 계속해서 먹었다. 불쾌해진 아버지는 음식이 맵고 짜고, 아무튼 불평불만을 했고 어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결국 폭발해 버렸다.

그래, 가정폭력의 주범은 어머니였다.


그러나 워낙 흔한 소재라 글이 올라온 당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듬해, 즉 2년 전, 막 이사를 온 여성이 비상문 앞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후로 이곳은 '원령 맨션'으로 단숨에 유명해졌다. (234p, <문> 작품해설 中)

"「끈」이라는 제목은 돈벌레를 가리키지만 「링크」라는 의미이기도 해요."

링크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연쇄, 연결하는 일'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즉, 어던 것과 어떤 것을 연결함으로써 무관한 것들끼리 연관 짓는 걸 '링크'라고 한다. (249p)

사야카는 이른바 오컬트 애호가이다. 최근에 즐겨 찾는 곳은 인터넷의 '호러 게시판'으로 익명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올리는 사이트였다.

하지만 이사 준비로 인해 일주일간 사야카는 호러 게시판에 들어가지 못했다. 전에 살던 연립주택의 계약이 끝난 후 새 집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계약을 갱신하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지만, 사야카는 방랑자이다. 아무리 좋은 집이어도 2년이 지나면 다른 집으로 옮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즉 '이사 귀신'이 붙었다.

이사를 끝내고, 마침 업자가 와서 인터넷도 연결해 주었다. 새로운 생활을 설렘과 함께 사야카는 호러 게시판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 중 '왕 아웃사이더'라는 익명의 작성자가 올린 글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이내 흥미가 식고 말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뒷 이야기가 올라오지 않은 것이다.

마무리 짓지 못한 이야기의 답답함을 풀기 위해 사야카는 대형 검색사이트가 운영하는 지도 서비스에 들어가 '거리 뷰'기능을 켰다. 방랑자 기질이 있는 사야카는 거리뷰를 통해 가상으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마침 집도 새로운 장소로 이사를 했겠다, 집 주변을 거리뷰를 통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사야카는 어쩐지 이 집에서는 오랫동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멋들어진 맨션, 주변은 세련된 거리로 호황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그 거리뷰 기능이 자신이 살고 있는 맨션안, 그리고 방 안까지도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야카는 자신이 살게된 맨션과 자신의 집 주변을 이리저리 구경했다. 그리고 그녀는 현관문 옆에 위치한 비상문 틈새로 검은 끈이 비어져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귀신 같은 초자연적인 형체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뭉근하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참고로 가장 기분 나빴던 소설은 <상자> 야이......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다. 직장 내 왕따는 나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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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까마귀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3
박지안 지음 / 허블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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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허블의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시리즈 3번째 책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정말 공포물에 면역력이 하나도 없는 분들은 주의하라는 말을 먼저 남기고 싶다.

『하얀 까마귀』는 가상 현실 게임이라는 SF적인 요소와 게임 플레이어의 심층 심리를 파고들어 그들의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킨다는 공포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조합한 책이다.


주노는 구독자 80만 명을 보유한 인기 BJ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겪어 온 왕따 생활과 고등학교 2학년 때 절친이 자살했다는 것, 그로 인한 자퇴와 대학 진학 실패 등의 사연을 밝힌 이후로 점점 몰락하고 있었다. BJ주노의 어려운 과거가 모두 조작된 것이라는 루머가 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노는 WGN 개국 1주년 특집으로 진행된 대중들 앞에서 IOM2를 플레이 하는 이벤트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IOM2는 가상현실 게임으로, 유저의 심층 심리를 파고들어 공포의 근원을 건드리는 '사이코호러' 게임이다. 유저들에게 맞춰 공포적인 요소가 구성되기 때문에 자신을 괴롭혀 온 과거가 진실임을 대중들에게 밝히고자 한 것이다.


주노가 생각한 것 보다 게임은 너무나도 자신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주노는 자퇴한 고등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학생들에게 몇번이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반복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스마트워치로 시청자들을 반응을 살피던 주노는 흥분에 감싸이고 만다. 자신의 동정하고 위로해주는 시청자의 반응과 응원 메시지에 주노는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 관문이라고 생각이 되는 옥상으로 주노는 올라갔다. 자신의 친구가 떨어져 자살했던 그곳. 하지만 주노는 그곳에서 게임의 엔딩을 볼 수 없었고, 시청자들의 욕설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뱉으며 채팅창을 봤다. 하지만 채팅창은 뭔가 이상했다. 자신의 플레이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방송국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만 올라왔다.


어리둥절한 주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담임 선생님인 신지수였고, 그녀는 이 모든 것은 게임이 아닌 게임을 플레이 하다 사고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주노 본인의 뇌 속이라고 말한다. 주노는 무의식 적으로 이 모든 것이 게임이라고 생각해 이 끝 없는 세상을 반복하고 있던 것이며, 내일이 되면 보호자 동의서에 사인을 받아 생명유지장치가 떼어진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준다.

그 말을 끝으로 주노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주노는 아영을 초등학생 때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 때부터 주노는 아영에게 거짓말을 했다. 집 나간 아빠가 아르헨티나로 일하러 갔다고 말했을 때 부터 였을까? 주노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고, 스스로의 거짓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중학교가 떨어져 주노는 아영을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났다. 어린 시절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던 아영이었지만 그녀의 낯가림은 더욱 심해져 있었다. 예쁘고 착한 데다 글을 잘 쓰는 문학소녀. 아이들은 그런 그녀가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런 척 한다고 말하며 괴롭혔다. 그런 아영에게 친구는 주노 한명 뿐이었다.

주노는 그런 아영을 따라하기 위해 꽤나 노력했고, 선생님 마저도 그 둘이 쌍둥이처럼 보인다고 말할 지경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2학년이 되고 부쩍 예뻐진 주노는 다른 친구들의 관심을 듬뿍 받았고 아영을 무시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주노의 거짓말은 점점 더 도를 넘어갔다. 아영과 똑같은 글을 백일장에 제출하고는 나몰라라 한 것. 아영의 사진을 미니홈피 프로필에 걸어두고 남자가 연락해 오니 아영에게 대신 나가라고 한 것. 그리고 아영이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뺏어갔다고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

결국 아영은 자살했다. 그리고 주노는 자신의 무의식에 갇힌 채 또 다시 무한 루프를 반복한다.


사실 주노는 등장했을 때 부터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인물이었다. 아니, 사실 이 소설에 꺼림칙한 등장인물들이 참 많다. 개인적으로 방송국 PD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쨌든 유난히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쓰는 주노를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역시는 역시나였다. 스스로의 거짓말에 잡아먹히고 만 결말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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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의 오단계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2
이루카 지음 / 허블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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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허블의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시리즈 2번째 책인 이루카 작가의 『독립의 오단계』

수록작품은 시리즈 첫번째 책이었던 『깃털』과 같이 3작품이다.

「독립의 오단계」 :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 수상작,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허블, 2018.)

「새벽의 은빛 늑대」 : 미발표작

「루나벤더의 귀가」 : 《크로스로드》(2019.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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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의 오단계」

'서술자인 '나'는 '모델명 A796, 제조번호 04-1963-59'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이며 '인간 가재민'살해 혐의로 수배자 신분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싸움을 시작한 것은 '인간 가재민'의 엄마이자 수배자 안드로이드의 마지막 소유주인 '가혜라'였다.

인간 가재민은 화재로 인하여 몸 대부분을 잃었다. 그래서 남아있는 인간 가재민의 뇌에 인공지능을 결합하여 몸을 사이보그화하는 대수술을 통해 '나'가 태어났다. 하지만 몸은 하나라고 하더라도 '나'의 자아와 인간 가재민의 의식은 서로 독립되어 있었기에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다. '나'가 눈을 떴을 때부터 인간 가재민의 목소리가 의식 속으로 흘러 넘쳐 들었고, '나'는 인간 가재민이 이 지긋지긋한 순환을 멈추는 것을 돕게 된다.


가혜라에게 있어서 가재민은 '자식'의 탈을 씌운 소유물이었다.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그렇기에 죽음마저 허락할 수 없어 가재민을 사이보그화 시켰다. 그 사실의 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던 가재민은 두 번의 죽음으로 가혜라에게 저항하고자 했다.

그래서 인간 가재민은 '나'에게 둘을 연결하고 있는 뇌 생체 조직 유지장치를 끊어달라고 부탁해 스스로 자살하고 만 것이다.


엄청난 기술 발전을 통해 사람처럼 먹고 생활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공지능이 개발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로봇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인간적이며,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부품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경계는 점점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가혜라가 아닌 자신을 맡아준 변호사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처음으로 자신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따위가 아닌, 독립한 존재로 인정해 주었던 그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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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은빛 늑대」


대기오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자 사람들의 공간은 나뉘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공간 마저도 공기의 깨끗한 정도로 다시 분리가 되어 사람들은 구역에 분리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구역들 위에 최상급의 '에어시티'가 존재했다. 하늘에 쏘아 올린 수많은 에어필터를 원동력으로 유지되는 에어시티는 하루종일 필터 마스크를 붙이고 생활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의 공간이었다.

케어센터 6구역에 사는 두슬기와 윤예리, 정해민은 꽤나 깊은 인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여성 바이크 동호회인 '은빛 늑대 라이더스'. 세명이서 바이크를 타고 도로를 달리던 나날들은 그들의 인연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들 중 막내인 정해민은 어쩐지 최근들어 이상했다. 무언가 숨기는 것 같으면서도 점점 겉도는 것 같았다. 몸이 좋지 않아 검진을 받긴 했지만, 정해민은 검진 결과가 좋다고 말할 뿐이었다. 결국 두슬기는 의사인 이지안의 연락을 받아 외출을 하는 정해민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정해민이 곧 죽을 시한부라는 것, 그리고 에어시티 이주권을 주는 해피에어권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곧 죽을 이지안은 에어시티로 이주하지 않으면 6구역을 벗어나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하지만 법률이 달라져 에어시티에는 오로지 당첨된 사람 혼자만 갈 수 있다는 것. 좋은 곳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갈 것인지, 혹은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인지 정해민은 선택 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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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벤더의 귀가」


루나벤더는 블랙펄의 의식을 찾기 위해 오늘도 게임을 떠돌고 있었다.

백진주, 문보라, 고유리는 '헤븐나이츠'라는 가상현실 치료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다. '블랙펄'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한 백진주는 자신의 뇌신경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게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긴 시간동안 의식 연결이 끊겨 현실에서는 식물인간 상태로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루나벤더'인 문보라가 백진주의 의식을 찾기 위해 직접 게임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하고 위험에 빠지게 된다.


'유리크리'인 고유리는 현실에 남아 그 둘의 진행상황을 관리했다. 문보라와 고유리의 친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죽음을 바라는 이들과 맞서며 그 둘의 귀환을 위해 묵묵히 현실을 지켜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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