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이라 후덥지근하고, 장마철이라 하루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낮이어도 어두컴컴하다.
이런 날씨에는 뭐다? 공포소설이다!
공포소설 중에서도 범죄 스릴러 이런것 말고 초자연현상으로 인한 심장 쫄깃해지는 그런 공포가 땡기는 그런 여름의 어느 날이다.
『이사』의 작가인 마리 유키코는 사실 처음 접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책 맨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 부분도 꼼꼼하게 읽었다.
마리 유키코의 작품은 '이야미스'장르로,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가차 없이 그려내기 때문에 읽고나면 기분이 찜찜해지고 불쾌해지는 미스터리를 가리킨다고 한다.(257p) 추리를 통한 사건을 파헤치는 것 보다, 범죄나 사회 현상 속에서 사람들의 어두운 내면을 표현하는 심리 묘사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마리 유키코의 이번 작품인 『이사』는 이른바 '도시전설'이라고 불리는 실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지구상에 어디선가 일어났을 법한 괴담을 모아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특히 책 제목인 『이사』에 맞게 수록된 이야기들이 모두 이사와 관련되어있다. 너무나 일상적인 상황을 괴담으로 만들어 버려 더욱더 오싹하다. 진짜 무서운것에 면역력이 1도 없는 분들은 이 책을 읽은 후에 이사를 갈 수 있을지......
이번 작품에서는 이야미스적인 측면을 살짝 내려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록된 몇몇 작품은 여전히 읽고 난 뒤에서 꺼림칙 해서 오싹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수록된 작품은 총 6작품이고, 마지막 <작품 해설>까지 주의깊게 읽기를 권장한다.
<작품 해설>은 신기하게도 또 하나의 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본문에 실린 총 6편의 글의 소재를 인터넷 어디선가 떠돌아 다니는 하나의 도시전설처럼 재구성 해두었다. 사실 일본에는 도시전설이 많아서 나는 읽으면서 정말 이런 사건이 있는가, 정말 이런 도시전설이 있는가 하면서 검색해 봤다. 그정도로 '있을 법 한 이야기'라는 것.
참고로 모든 소재들은 픽션이다. <작품 해설>에 일본 어느 지역 누가, 어떤 범죄자가 등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등장해서 진짜인 것 같지만 검색해 봐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 직접 해봐서 안다.
문
구체적인 지명은 언급을 피하겠지만 도내 어느 지역, 흔히 세련된 거리로 유명한 B시 B역 주변에는 멋진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중략) 그중에서도 한층 멋들어진 맨션이 있다. 바로 '벽돌저택 몽마르트'(가칭)다. 방송도 몇 번 탄, 여성에게 인기 있는 맨션이다. 하지만 일부 오컬트 팬들에게는 '원령 맨션'으로 알려져 있다. 3년 전 일부 오컬트 게시판에 해당 맨션의 입주자가 글을 올린 것이 계기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노래가 들린다'는 내용의 글이었다.(234p)
기요코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살인범인 오다 게이타로가 살았던 집이라는 것을 알고난 후에 언젠가 다시 살인범이 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사갈 집을 찾아보러 다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기요코는 준공 5년차인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신축이 아니고 벽에 구멍이 뚫려있고 창밖의 소음이 시끄럽다는 것만 빼면 오히려 좋은 집인 것 같았다.
건물 관리자를 돌려보내고 혼자 집을 둘러보던 중, 기요코는 비상 대피 경로를 확인하면서 비상문을 발견하게 된다. 그 비상문을 열자 그 안에 또 하나의 철문이 있었다. 이 문은 어디로 연결되는 걸까? 단면도를 확인해 봐도 자세한 설명이 없어 기요코는 그 문을 열고 말았다.
수납장
가이즈카 나오코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2년 전, 같은 맨션에 사는 남성을 살해한 죄로 체포됐을 때 상당히 화제가 됐다. 저명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점도 한몫했지만, 조사 결과 그녀 주변에서 남자 여섯 명이 변사했음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모두 그녀와 교제했던 사람들로, 가이즈카 나오코는 재판에서 "남자한테서 해방되고 싶었다"라고 증언했다. (237p)
'나'의 유치원 시절의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나'는 아빠의 얼굴도 모르는 혼외자로,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혼외자라는 것이 지금처럼 개방적으로 다룰 화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스로 '아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꺼려졌다.
하지만 자신이 혼외자라는 것이 불편하다거나 비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 유치원에서 내준 과제에 당황하고 말았다. 선생님이 '아빠 얼굴을 그려보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멍하니 있던 '나'는 아무튼 뭐든지 좋으니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에는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지?
참고로 이 작품은 서술자가 두명이다. 눈치채지 못하게 서서히 다가와서 혼란스럽게 하는 뭔가가 있다.
책상
범인 미카와 가쓰나리는 그야말로 그런 풍모의 남자였다. 그리고 R자동차가 기타사이타마 공장에 근무하는 회사원이기도 했다.
원래는 본사 소속이었지만, 출세 경쟁에서 패배해 삼십 대에 공장으로 날려 왔다는 모양이다.(중략)
그러한 일들로 서서히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는지 미카와는 '맛기행'에 나선다. 라면집 순례부터 시작해 결국에는 '진미'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지역 사냥꾼이 잡은 멧돼지 고기를 맛본 것이 계기였다. (239p)
마나미는 이사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사무실에는 오만 가지의 물건이 넘쳐나서 비좁아 보이는 공간이었고, 사장과 사장의 누나인 아쓰코는 뭔가 수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전화 업무를 담당하면서 마나미는 기묘한 전화를 자주 받게 되었다. 냉장고를 매입하겠다고 해놓고 별의 별 트집을 잡으며 돈을 주기는 커녕 대형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이만 엔을 받아갔다던가, 버리는 물건이 아닌데도 짐이 분실됐다던가.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아쓰코의 행태였다. 첫 만남부터 저혈당 때문에 대화를 멈추고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마구 퍼먹더니, 마나미가 사무실 냉장고에 넣어둔 디저트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나중에는 이름이라도 적어둬야 겠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뒤돌아 서고는 메모지를 만들기 위해 책상 서랍을 이리저리 찾아보던 중, 서랍 안쪽에 하얀 종이가 끼여져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종이 뭉치에는 '누군지 모를 당신에게'라는 글로 시작하는 편지였고, 거기에는 이름을 밝힐수 없지만 편지를 쓴 이는 사무 업무와 전화 당번이었으며 자신의 일을 봐주는 A씨가 이상하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쓴 이는 퇴근 후 사무실 냉장고에 넣어둔 간식을 가지러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고, 그 때 A씨가 냉장고에서 무언가 먹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인육이었다.
상자
'기타신주쿠 7대 불가사의'를 아는지?
바로 기타신주쿠라 불리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곱 가지 괴현상을 뜻한다. 이른바 '학교 괴담'의 거리 버전인데, '학교 괴담'이 그렇듯 미심쩍은 현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딱 하나 '진짜' 괴현상이라 일컬어지는 현상이 있다. 기타신주쿠 센트럴공원 부근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노숙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괴현상'이다. (241p)
3월 중순, 유미에가 다니는 회사에서 대규모 배치전환이 있었다. 유미에 또한 소속부서 자체의 위치가 바뀌어 3층에서 7층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7층으로 이사를 간 날 유미에는 잘못된 상자들이 자신의 층으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짐 또한 하나도 도착하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된다.
유미에는 자신의 짐이 든 상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총 세개의 상자. 다행히 친구인 교코의 층에 짐 하나가 있었지만 다른 상자들은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짐들을 찾은 것은 퇴근 시간 30분 전, 우연히 분수광장에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이다. '불필요품 봉지'에 들어있는 자신의 물건. 그리고 한 노숙자가 'D07'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자신의 상자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유미에는 그 노숙자의 뒤를 쫓아간다.
벽
제한된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는 면에서 이웃 사람과 의 분쟁만큼 부질없는 것이 또 없다. (중략)
내가 침실에서 자고 있으면 옆집 사람이 내는 소리가 바로 이쪽으로 새어 들어온다. 한창 뛰어놀 나이의 아이라도 있는지 소움이 폭주족들보다 악질이다. (246p)
하야토는 어린시절의 가정 폭력에 대한 악몽을 꾸면서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그리고 회사 동기인 이토도 자신과 똑같은 몰골인 것을 보고 '너도 악몽을 꾸냐'하고 물었는데, 이토는 '현실'에 시달리고 있다고 대답한다.
이토가 살고있는 맨션 옆집에 그 부부가 이사온 것은 올해 초봄이었다. 맨션의 벽은 얇지 않지만 열어둔 창문을 통해서 옆집의 이야기 소리가 모두 들어왔다. 처음 그 대화는 일상적인 것이었다. 도시락이 조금 매웠다는 정도. 오히려 이토는 그 대화가 참 부러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대화에 점점 날이 서기 시작했다. 도시락이 맛없다거나, 성가시다거나. 꼭 이혼 직전의 부부 같은 느낌을 들 정도로 격한 대화였다. 그리고 결국, 이번 달 들어서 자주 싸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밤중에 말이다.
소리지르는 목소리나, 나중에는 벽을 쾅쾅 치기까지 해서 이토는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말았다. 게다가 가끔 여자가 흐느껴 울며 미안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 가정폭력일 것이다.
이토는 결국 경찰에게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이 방문했을 때 문을 열어본 것은 부인이었고, 사태의 장본인인 남편은 나와보지도 않았더랬다. 부인은 남편을 부르는 경찰에게 그냥 돌아가 달라고 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감싸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토는 경찰에 신고해 줘서 감사하다는 옆집 여자의 인사를 받았다.
하야토는 그날도 야근하는 중이었다. 아마 이토도 야근인듯 보였다. 하야토는 추억속의 과자를 먹으면서 옛날 이야기를 했다. 엄격하고 속좁은 아버지, 아버지의 꾸중에도 누나와 어린 하야토는 초콜릿 파이를 계속해서 먹었다. 불쾌해진 아버지는 음식이 맵고 짜고, 아무튼 불평불만을 했고 어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결국 폭발해 버렸다.
그래, 가정폭력의 주범은 어머니였다.
끈
그러나 워낙 흔한 소재라 글이 올라온 당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듬해, 즉 2년 전, 막 이사를 온 여성이 비상문 앞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후로 이곳은 '원령 맨션'으로 단숨에 유명해졌다. (234p, <문> 작품해설 中)
"「끈」이라는 제목은 돈벌레를 가리키지만 「링크」라는 의미이기도 해요."
링크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연쇄, 연결하는 일'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즉, 어던 것과 어떤 것을 연결함으로써 무관한 것들끼리 연관 짓는 걸 '링크'라고 한다. (249p)
사야카는 이른바 오컬트 애호가이다. 최근에 즐겨 찾는 곳은 인터넷의 '호러 게시판'으로 익명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올리는 사이트였다.
하지만 이사 준비로 인해 일주일간 사야카는 호러 게시판에 들어가지 못했다. 전에 살던 연립주택의 계약이 끝난 후 새 집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계약을 갱신하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지만, 사야카는 방랑자이다. 아무리 좋은 집이어도 2년이 지나면 다른 집으로 옮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즉 '이사 귀신'이 붙었다.
이사를 끝내고, 마침 업자가 와서 인터넷도 연결해 주었다. 새로운 생활을 설렘과 함께 사야카는 호러 게시판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 중 '왕 아웃사이더'라는 익명의 작성자가 올린 글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이내 흥미가 식고 말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뒷 이야기가 올라오지 않은 것이다.
마무리 짓지 못한 이야기의 답답함을 풀기 위해 사야카는 대형 검색사이트가 운영하는 지도 서비스에 들어가 '거리 뷰'기능을 켰다. 방랑자 기질이 있는 사야카는 거리뷰를 통해 가상으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마침 집도 새로운 장소로 이사를 했겠다, 집 주변을 거리뷰를 통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사야카는 어쩐지 이 집에서는 오랫동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멋들어진 맨션, 주변은 세련된 거리로 호황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그 거리뷰 기능이 자신이 살고 있는 맨션안, 그리고 방 안까지도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야카는 자신이 살게된 맨션과 자신의 집 주변을 이리저리 구경했다. 그리고 그녀는 현관문 옆에 위치한 비상문 틈새로 검은 끈이 비어져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귀신 같은 초자연적인 형체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뭉근하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참고로 가장 기분 나빴던 소설은 <상자> 야이......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다. 직장 내 왕따는 나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