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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ㅣ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정신 중편소설 시리즈인 <소설, 향>이 "소설의 본향, 소설의 영향, 소설의 방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새롭게 리뉴얼되었다. 새로운 <소설, 향>시리즈의 시작을 김사과 작가의 『0영ZERO零』이 알리게 되었다.
'나'와 남자친구인 성연우가 헤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처음부터 묘한 느낌을 준다. 이별을 고한 남자친구 성연우는 계속해서 '나'를 비난하는 말을 내뱉지만, '나'는 자신을 비난하는 말에 그다지 상처받지 않는다. 그저 무심하게 듣고 흘리며 대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한다. 알게 모르게 자신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주변 사람들, 그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올바르고 완벽한, 그리고 이별을 고하는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미안했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꾸며낸다. 물론 속마음으로는 성연우와 주변사람들을 비웃고 있으면서 말이다.
'나'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타입의 인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잡아먹어야 한다는 식인(食人)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더 행복하고 더 우월한 삶을 살기 위해 타인의 정신을 갉아먹고 불행속으로 떠밀어야 한다. 교묘하게 상황을 조작해서 남을 타락과 추락에 빠지게 하고, 불행에 몸부림 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나'에게 가장 큰 보람이자 즐거움이다.
대학생 시절에는 같은 과 동기인 이민희는 질투심 많고 다른 사람에 의존적인 성격을 감추고 소탈하고 독립적인 대외적인 이미지를 꾸며냈다. 그것을 간파한 '나'는 이민희가 연기하는 소탈하고 독립적인 성격을 끊임없이 칭찬하고 칭찬하여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 진실된 성격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이민희는 점점 독립성 강한 페미니스트로 동기나 선후배에게 각인되었고 그럴수록 이민희는 진실된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기가 어려워졌다.
사회에서 점점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후, 대학 강의를 맡게 되었을 때는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가는 학생, 박세영에게 접근했다. 남들이 다 걷는 일반적인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아니, 그리고 재능이 무척이나 많은 아이. 그래서 '나'는 박세영의 재능을 짓밟아버리기로 했다. 계속 격려를 하고 만남을 지속하며 '나'는 박세영에게 재능이 충만했던 산문의 세계가 아닌 시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연달은 실패, 실패, 실패. 실패는 박세영을 점점 초췌하게 했고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나'가 원하는 타인의 불행은 가족도 포함되어있었다. 아빠가 곧 죽을 것을 알고 '나'는 모든 재산을 자신 앞으로 돌렸다. 몸이 약한 엄마 앞으로 남은 돈은 아무것도 없었다. 몸이 약한 엄마, 경제적으로 '나'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엄마. '나'가 시키는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하고 고작 '나'의 손에 놀아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갇혀버린 가여운 엄마.
교묘하게 소문을 퍼트리고 상황을 조절하며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는 포식자가 '나'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 보다 강한 자에게는 수긍하고 순종적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피식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나'의 이상한 점을 눈치 챈 건지, 아니면 '나'와 같은 동류인 것인지 남자친구 성연우는 계속해서 '나'와 대립한다.
세상은 이렇게 남을 짓밟거나 아니면 내가 짓밟히는 포식자와 피식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신랄하게 표현한 책이다. 신랄하게 표현되는 욕설과 차라리 죽어버리라는 식의 표현. 읽으면서 잔혹한 '나'의 성격과 파격적인 문장 때문에 계속해서 무섭다는 인상을 받았다. 공포소설도 아닌데 이렇게 무섭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처음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食人)을 하는 종족이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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