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바지, 허벅지. 치마, 바지, 허벅지. 세 단어를 단조 가락으로 부르면서 딸이 식탁에 가까이 오고 아침해가 딸 그림자 손을 들어줘 딸 그림자가 식탁 가에 먼저 닿았다. 치마, 바지, 허벅지, 세 단어끼리의 단거리경주는 허벅지란 말이 엄마 귀에 제대로 들어가 허벅지가 판정승을 거두었다.
_허벅지? 허벅다리 안쪽이 안녕하지 않기라도?
_안으로 허벅지 안녕하고 밖으로 허벅다리 강녕하고 아래로 넓적다리 건강해요.
_허벅지까지 말이 나오니까 뜻밖이네.
_치마를 올리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올리고 물을 건너요.
_물살이 빠르고 급한 여울물을 건널 때는 그러네.
_살여울이 그러네요.
_작가님 글에서 치마, 바지, 허벅지에 이어서는?
_'나는 치마를 올리고 그는 바지를 허벅지까지 올린 다음에 그 바닷물 속의 둑길을 걸어서 섬에 도착했다.'로 쓰셨어요.
_둑길이 눈길이 닿는 뭍길이 아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바닷물 속의 둑길이구나.
_멀리서는 바닷물 속의 둑길과 섬이 허벅지에 이어지는 거대한 인체의 샅으로 그려질 수 있어요.
_여성의 샅을 그린 그림 한 점이 프랑스 파리 오르세(Orsay) 미술관에 걸려 있어. 1866년 작에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의 솜씨로 포르노 사진 수준을 뛰어넘고 예술성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아. 관음증(voyeurism) 시비가 좀은 일고 있어.
_작품 이름은요?
_'세상의 기원'(The Origin of the world, L'Origine du monde)이야. 산부인과 의원 진찰대에 오른 여성처럼 샅은 드러내놓고 얼굴 있는 쪽은 안 보여.
_나이 제한이 있겠네요?
_18금이 아니고 일반에 공개되어 있어.
_오르세 미술관 사이트가 어떻게 되나요?
_www.musee-orsay.fr 불어가 불편한 관객을 위해서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판이 있어. 폴 세잔(Paul Cézanne)의 그림도 19점이나 있으니 감상하길 바라.
_눈보라 치는 겨울밤에 세잔 씨 안녕하세요 하며 만나러 갈까 봐요. 초보자의 눈으로 골라서 보지 않고 미술관 큐레이터가 정해놓은 순서대로 골고루 볼게요.
_'치마를 올리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올리다.'에서 '올리다'를 '내리다'로 바꿔봐.
_'치마를 내리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내리다.', 계속될 장면이 계면쩍어요.
_치마를 올리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올리고 여울물을 건너 건너편에서 치마를 내리고 바지를 허벅지에서 내리고 연인 한 쌍이 걸어간다.
_'치마를 내리고'가 뒤 문장에 따라 딴 맛이 나네요.
_치마나 스커트를 여자의 아랫도리 겉옷으로 보아서 그렇지.
남편이 공원에 새 사진 찍으러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스커트, 여자의 아랫도리 겉옷이란 말만 듣고, 치마에서 스커트 이야기로 늘려갔다. 남자가 스커트를 입고 서 있는 사진 이야기였다. 영국 북쪽 지방 스코틀랜드(Scotland)의 에딘버러(Edinburgh)에서였다. 시월 어느 일요일 관공서가 쉬는 날이었다. 형사고등법원 문 앞에서 백파이프를 부는 청년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전통 스커트 차림이었다. 연주하면서 스커트의 체크 무늬가 발 장단에 물결이 퍼져나갔다. 법원 문에는 귀가 여덟이 난 별 모양 문양이 음각되어 물결이 손을 잡고 도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