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서 밥반찬 그릇이 뚜껑을 동행하고 냉장고에 내 자리 하듯 들어가 앉는다. XY 좌표 값을 정해놓은 것과 다름없는 반찬들이었다. 같은 색을 띠는 감과 귤은 Z축 아래쪽 좌표를 함께하고 바구니가 보금자리였다. 보금자리가 비고 비타민 C가 보약처럼 보충되었다. 감은 장의 마지막 직장 끝 괄약근과 힘겨루기를 하는 약 같아서 한꺼번에 다량은 안 먹고 알약을 먹을 때는 안 먹었다. 삶의 끝에는 사람이고 짐승이고 직장 끝 괄약근이 풀려 삶과 죽음의 판별식으로 쓰이곤 했다. 

 

_어느 날 낮에 집 나온 고양이가 무단횡단을 하다가 달리는 차에 튕겨 도로 가에 내팽개쳐져 있었어요. 근처의 정보도서관을 찾아온 여학생들이 쓰러진 고양이를 가엽게 여기고 동물병원에 데려다주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길 가던 어떤 아저씨가 보더니 고양이는 죽었다고 가볍게 말했어요. 

_그 아저씨는 고양이의 직장 끝 괄약근이 풀린 것을 보고 고양이가 삶을 마감했다고 판정했을 거야.    


_계절은 새순이 오르고 태풍이 지나가고 감이 열렸으며 폭설이 내렸다.  

기승전결의 네 구로 압축되듯이 작가님의 표현이 간결해요. (가녀릴) 새순 v (세상을 흔들어놓을) 태풍. (연시로 익을) 감 v (세상을 하얗게 바꾸어 놓을) 폭설. 새순이 오르고 (중략) 폭설이 내렸다.  

_비타민 C가 많아 건강을 챙겨줄 감, 가뭄 걱정을 덜어주고 풍년을 기약해줄 폭설, 조상의 생활 지혜가 압축되어 있어.
_감의 한 해를 적어볼게요. 감나무에 새순이 올라오고 감꽃 봉오리가 벙글고 감또개 목걸이를 하고 태풍이 비껴가고 감이 열렸으며 우듬지에 까치밥을 달아놓고 폭설에 달아오르듯 빨개졌다.  

 

마을이 오래되고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었다.
_일본의 바쇼(Basho 芭蕉)가 쓴 짧은 시 하이쿠(haiku)를 읊어보고 옮겨볼게. 

 

사토후리테(SATO FURITE)
가키노키모타누(KAKI NO KI MOTANU)
이에모나시(IE MO NASHI)

 

마을 오래되어
감나무 가지지 않는
집도 없다. 

1694년 가을, 바쇼(1644년생) 쉰하나 때였어. 시에 살을 붙이고 힘줄을 풀어볼게.
마을이 생긴 지 오래되어
감나무가 없는
집도 없다 

 

감나무가 있는 집은 감을 먹을 기회가 많고 혈관이 튼튼해져서 고혈압, 뇌졸중에 효능이 있는 감은 건강을 지켜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지 않겠어?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으니 오래된 온 마을이 삶의 질을 높이고 살아왔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면이 상승효과를 일으켜 요리 관련 일을 해본 적이 있는 바쇼의 하이쿠에서 감칠 맛을 느끼는 것 같아.          

 

남편이 감나무에 먼저 익은 홍시를 직박구리가 파먹는 새 사진을 담고 들어와서 보여줬다.  

_까치밥을 쪼아대는 새 사진에 출연하는 새에 까치 말고 직박구리도 잘 찍혀.  

_숲 속의 수다쟁이 별명이 어울리더군요. 가락의 멋은 모르고 악다구니 쓰는 힘만 내어 창 밖이 떠들썩하다면 이 새였어요. 흐느끼지 않고 통곡을 하는 영결식을 할 새를 뽑는 우화를 쓴다면 이 새를 추천하겠어요.  

_듣기가 드물기는 하지만 아리아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놓아야 하겠네.  

1990년에 바뀐 익소스 아마우로티스(Ixos amaurotis)나 2002년에 고친 미크로스켈리스 아마우로티스(Microscelis amaurotis)가 국제적인 분류나 보전 사이트에서 쓰는 라틴어 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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