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지어 허리를 굽히고 구십 도 각도로 절하는 가로등이 밤길을 안내하며 우리 모녀의 발걸음을 환하게 환대하였다. 미국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한 세대 위 70대 중반 일왕 아키히토(Akihito 明仁)에게 직각 인사를 하고, 반세기 전 1959년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 미국 대통령이 뻣뻣하게 선 프랑스 총리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일이 화제가 되는 시절이었다. 아이젠하워는 미국 웨스트포인트(West Point) 육사를, 드골은 프랑스 생시르(Saint-Cyr) 육사를 나와서 두 나라 국민의 심기는 놔두고라도 양국 육사졸업생들의 기분은 어땠을지 모르겠다.    

 

진눈깨비가 제 눈에 비가 섞인 것과 가로등에서 내어주는 불빛과 차도와 보도를 아우르는 가로를 가로지르는 밤바람을 이용하여 유성우 쇼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마술사 진눈깨비는 제 분신을 목도리와 어깨 어름에 내려앉히고 이솝우화의 모기처럼 말을 걸어왔다. 오래 앉아 있다 싶었던 모양이었다.
_이제 내가 떠나가기를 바라느냐?
_내려앉을 때도 눈치 채지 못했고 날아가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눈 오면 날씨가 푹해진다고 했다. 진눈깨비도 눈인지 밤바람이 부드러워졌다.   

 

_들판에서 밤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희망을 데리고 먼 시간 속으로 먼저 출발하는 듯했다.
_작가님 표 표현이네.
_희망의 출발이 밤바람과 출발 춤사위 좋고 ‘먼 시간으로 먼저’ 가락 좋아요. 작가님 가락을 좋아해요.
_아이크(Ike) 애칭을 가졌던 아이젠하워의 미국 34대 대통령 당선에 힘을 실어준 선거구호가 생각나네. I like Ike. 가락 한번 좋지.
_에밀리 브론테가 스무 살 무렵 연월을 적은 시편이 있어요.

한 사람 놔두고는 아무도 그가 삶을 떠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고별의 날을 접고
저녁 바람결은 슬피 한숨지으며
그의 넋을 지상에서 멀리 싣고 갔다.   
 

None but one beheld his dying

Parting with the parting day
Winds of the evening sadly sighing
Bore his soul from earth away   

 

_어둡고 쓸쓸한 저녁만이 지켜 본 어느 삶의 끝이에요. 넋의 장송에는 고별식(영결식)도 빠져 있어요.
_어둡고 쓸쓸한 저녁만이 지켜 본 어느 삶의 끝... 쓸쓸하네.
_그가 삶을 떠나는 것을 본 사람이 어둡고 쓸쓸한 저녁이었다는 것이지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시 #712에서는 죽음(사신)이 친절하고 같이 영구용 마차를 타고 가고 그러더군요.

 

내가 죽음(사신) 쪽으로 잠깐 들를 수 없어
내 쪽으로 그가 친절히 잠깐 들러주었다.
영구용 마차에 우리들만 타고 있었다.
영원불멸도 함께.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He kindly stopped for me—
The Carriage held but just Ourselves—
And Immortality. 
 

_에밀리 브론테가 한 세대를 살고 1848년에 세상을 떠났고, 에밀리 디킨슨이 두 세대 조금 덜 살고 1886년에 마차를 타고 갔지. 

남편이 통일로와 나란히 달리는 공릉천으로 흘러드는 고골입구 실개울을 따라난 농로를 지름길로 잡아 밥집으로 가는 밤길을 걷다가 만난 새 이야기를 했다.
_밤이라서 오가는 사람이 없다가 지나가는 발소리에 말소리까지 곁들여 들려 자다가 놀랐는지 실개울에서 푸드득 날아올랐어. 놀란 건 우리 일행이었어. 흰뺨검둥오리 세 마리였어. 낮에 실개울 가 갈대 사이로 더러 봐. 
흰뺨검둥오리는 비둘기 두 배쯤 크고 라틴어 학명이 아나스 포에킬로륀카(Anas poecilorhyncha)다.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의 태평양 항해에 동행하여 이름이 잘 알려진 요한 라인홀트 포르스터(Johann Reinhold Forster)가 1781년 이 학명을 붙여주었다.  아나스 속에는 청둥오리, 쇠오리, 고방오리 들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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