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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 살면서 늙는 곳, 요리아이 노인홈 이야기
가노코 히로후미 지음, 이정환 옮김 / 푸른숲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이곳은 병원이 아니다. 폴리에틸렌 제품의 식기나 양은 그릇에 차갑게 식은 밥과 냉동식품 반찬을 제공해서는 식욕을 돋울 수가 없다. 식사를 하는 즐거움이 없으면 살아가는 즐거움은 확실히 줄어들고 기운도 안 난다.
삶의 기본은 무엇보다 먹는 것이다. 갓 지은 따뜻한 밥과 따뜻한 된장국이 기본이다.
- p.226
대애애애박, 최근래 들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은 처음이다. 무슨 에세이가 이렇게 재미있지?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 책은, 일본에 있는 요리아이라는 한 요양 시설과 그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글이다.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병원에 입원해계신 친 할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가 모두 치매환자시기 때문에 생각도, 고민도, 번뇌도 많다. 인간적인 면의 끝자락을 붙잡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감내하기 힘든 것들 사이에서 가족들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뭐, 그런 시기인 덕분에 이 책이 더 눈에 밟혔다.
아마 나와 비슷한 이유로 이 책을 집어 든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의외로 책은 무겁지 않고, 굉장히 즐겁고 가볍고 재미있다. 글에서 느껴지는 유머러스함이 종이를 뚫고 나를 관통하는 재미가 있다. 요리아이라는 마성의 시설이 마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분명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단체를 이끌어나가는 시모무라와 무라세라는 존재가. 점점 늘어가는 노인들을 위한 공간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 대한 생각도 일깨워주고, 치매노인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편견도 깨부숴준다.
책 전반적으로 요리아이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요레요레라는 잡지다. 아마 저자분이 이 책을 쓰게 된 시발점이 되었을 치매노인을 위한 인디 잡지인 요레요레. 극 사실주의를 표방한 소년이 표지를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등장하기 전에는 판매 1순위에 등극한 독특한 잡지. 그리고 이 책은 아마도 히로후미씨가 요리아이의 숲 채권을 사는데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언젠가 머지않은 날에 나 또한 기금 마련을 위한 작은 잡지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어떻게든 될 거야, 케세라세라.
무겁지요? 동전은 정말 무거워요. 하지만 이것이 돈의 무게예요.
- p.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