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워지는지도 모르는 채 일하고 마음이 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쩌면 빛을 먹고 세포를 분열시키고 어둠에 숨을 뱉으며 저마다의 속도감으로 무성해지는 존재들의 이야기. ⠀
국어사전 편찬 과정을 그린 소설 <배를 엮다>의 작가 미우라 시온의 신작이다. <사랑 없는 세계>는 후지마루가 음식 배달을 위해 모토무라가 연구원으로 있는 T대학원의 생물과학과 연구실의 문을 열며 펼쳐진다. 정확히는 주홍빛의 뒤꿈치를 가진 모토무라가 문을 열어주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연애소설도 일본문학도 즐겨 읽지 않아서인지 직접적인 감정 묘사나 대사들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인 후지마루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
그럼에도 오랜 시간을 들여 460쪽의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었던 건 모토무라와, 모토무라가 사랑해 마지않는 ‘사랑 없는 세계’ 덕이다. ‘왠지 이상한’ 혹은 ‘어쩐지 기분 나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여지를 신경 쓸 틈도 없이 식물과 사랑에 빠져버린 여성 인물 모토무라. 그 덕분에 낯선 생물학 용어나 연이은 ‘애기장대’의 등장에도 웃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워지는지도 모르는 채 일하고 마음이 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쩌면 빛을 먹고 세포를 분열시키고 어둠에 숨을 뱉으며 저마다의 속도감으로 무성해지는 존재들의 이야기. ⠀
국어사전 편찬 과정을 그린 소설 <배를 엮다>의 작가 미우라 시온의 신작이다. <사랑 없는 세계>는 후지마루가 음식 배달을 위해 모토무라가 연구원으로 있는 T대학원의 생물과학과 연구실의 문을 열며 펼쳐진다. 정확히는 주홍빛의 뒤꿈치를 가진 모토무라가 문을 열어주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연애소설도 일본문학도 즐겨 읽지 않아서인지 직접적인 감정 묘사나 대사들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인 후지마루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
그럼에도 오랜 시간을 들여 460쪽의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었던 건 모토무라와, 모토무라가 사랑해 마지않는 ‘사랑 없는 세계’ 덕이다. ‘왠지 이상한’ 혹은 ‘어쩐지 기분 나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여지를 신경 쓸 틈도 없이 식물과 사랑에 빠져버린 여성 인물 모토무라. 그 덕분에 낯선 생물학 용어나 연이은 ‘애기장대’의 등장에도 웃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 오는 날 넷플릭스로 재밌다고 소문난 스릴러영화 보는 것 같다’.

영화화가 확정된 소설이란 건 알고 읽었지만! 책을 읽으며 계속 들었던 생각이다. 그러니까, 일단 잘 읽히고 재밌다. 그리고 스릴러 매니아들을 이해하게 됐다. 반전은 서사와 의미를 뇌리에 박는 가장 강력한 망치다. 공포와 반전을 흡수하는 과정은 끈기와 에너지를 요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잡념을 연소시키고 희열을 선사해준다.

책을 막 다 읽은 참이라 지금은 후반부의 느낌이 강한데, 사실 이 소설의 꽤나 긴 초중반부(약 400p)는 세계와 그 세계에 속한 스스로까지 믿지 못하게 된 사람의 내면을 섬세하고 매력적인 문장들로 발굴해낸다. 소아과 정신의 애나 폭스는 ‘그날 밤’ 이후로 남편 에드·딸 올리비아와 떨어져 지내게 되고, 광장공포증 환자가 되어 10개월째 집안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병’은 애나를 그렇게 서서히 죽이기도, 그러나 과거의 환자들을 떠올리게 하여 애나를 살리기도 한다. 그의 병은 가장 내부적인 곳에 원인이 있지만, “집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것만 같”은 바깥세상 즉 외부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항상 외부를 향해 있다. 창가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말이다. 이런 모.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현기증」과 같은 히치콕의 흑백영화가 시작되듯, 알약들과 함께 애나의 목을 넘는 와인의 붉음처럼 어지럽게 말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긴 초중반부가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후반부의 서늘함과 반전을 포기하고 중도하차하는 독자들이 더러 있을까봐, 내가 다 아쉬워 사서 하는 걱정이다. ㅎㅎ,, 결론은 끝까지 읽으세요 !! )


p92 오늘 밤에는 그 아이를 떠올려본다. 나 자신이 죽었다고 느끼면서. 죽었지만 떠나지 못한 채, 삶이 나를 향해 밀려드는 것을 목도하면서.

p160 그와 이렇게 가까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 그는 나에게 키스할 수도, 나를 죽일 수도 있다.

p359 “정신 이상의 정의는 말이야, 애나. (...) 같은 행동을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거야. 다른 결과를 바라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더듬증

그것이 빛으로서 도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겉으로 드러날 때도 아닐 때도 있겠지만,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할 때면 나 또한 마음속 말더듬증이 도지고 마는 것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각색하고 편집할 때면 혀를 굴려가며 유창해지던, 마구 울창해지던 그 마음이. ⠀

빛이 환하거나 아름답다는 것은 훗날의 가치판단이다. 정작 그 가치를 발산하였던 최초의 순간과 이들은 자신이 훗날 찬란이 될지 도깨비불이 될지 모르는 채 목울대를 떤다. 다만 가끔 부드럽고 윤활적인 이름들을, 이동휘 한승우 싱어롱 메아리 와 같은 유음들을 만나게 될 뿐. 만남들은 돌이킬 수 없지만 결국 소설 전체에서 가장 적게 나왔던 ‘나’의 이름, 각지고도 뭉툭한 이름을 끌어올린다. 결국 ‘나’의 이야기가 끝나던 밤, 엔딩크레딧의 가장 마지막 이름은 ‘김유경’이 된다.

#리본

성인이라 분류되는 나이에 가닿고,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최초로 “자발적 의사 표현”을 하기 위해 리본을 달 수 있는 자격의 갖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머리칼에 허리에 어쩌면 발목에 검열과 자기혐오의 리본을 질끈 묶게 되는 사건이다. 소설은 1970년대 말 서울의 여자대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2010년대 남녀공학 대학교를 재학 중인 나와 같은 “시간 궤도을 통과하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낚는 데 성공하는 사건은 여전히 hunting이 되고 여성의 현명함이란 “똑똑한 걸 드러내지 않고 그 똑똑함으로 남자에게 헌신하는 태도”라는 사회의 정의 또한 유효하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이 소설이었던 적은, 여성들이 공주인 적은 ‘없다’.

#어차피

이 소설과 같은 과거를 통과해온 독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겠지만, 그 이후 세대의 독자들은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혹은 영화 써니 등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후자에 해당하는 나는 사실 《응답하라 1988》을 굉장히 재밌게 봤음에도 당시 유행어였던 어남류라던가 어남택이라던가 하는 “어차피 남편은 누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부장적 집안의 둘째 딸로서의 덕선, 유신정권시대 속 청소년으로서의 덕선, 우정과 성장에 탁월한 덕선의 결말은 어째서 ‘어차피’ ‘남편’ ‘타인의 이름’처럼 다짜고짜 결과중심적이고 타성에 젖은 낱말들로 귀결되어야 하나. 그래서 “어차피 유경은 자신” 쯤으로 줄여볼 수 있을 은희경 작가님의 《빛의 과거》가 더욱 낯설고 또 환상적으로 반가웠다. ⠀

+) 참고로 이 책은 10년 전부터 기획됐다고 합니다

++) 다가오는 추석에 엄마께 선물하기로!♡ 역시 갓 은희경님,,


p13 계속해서 다음 권이 출간되는 문제집 시리즈를 풀어가듯 주어진 생을 감당하며 살아왔을 뿐이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서 나의 또 다른 생의 긴 알리바이를 보았던 것이다.

p42 몸과 마음이 분주한데도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흘러갔다. 긴장 속에 지루함이 이어지고, 쫓기면서도 침체돼 있는 이상한 시간 궤도를 통과하고 있었다.

p112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가진다. (...) 그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이 어떻게 취급당하는가를 통해 세상을 읽는 영역이 있다. 약점이 세상을 정찰하기 위한 레이더가 되는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용실⠀
 소설은 이페멜루가 흑인 머리 전문 미용실을 찾으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아프리카 상류층으로서, “신성한 미국인 무리에 끼어도 된다고 특별히 허락받은 사람”, “확신으로 온몸을 치장한 사람”으로서 프리스턴에 거주 중이었으나 머리를 땋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트렌턴까지 가야 한다. “부유한 안락의 도시” 프리스턴에는 북슬북슬하거나 단단하게 돌돌 말리 흑인 여성의 생머리를 맡길만한 미용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소설 속의 ‘미용실’은 ‘비미국인 흑인과 미국인 흑인’, ‘완벽한 백인 미국인의 연인과 나이지리아로 돌아갈 흑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이페멜루의 정체성 중간지대 역할을 해낸다. 이페멜루는 그곳에서 발암 물질과 실리콘 성분이 다량 함유된 릴랙서로 곱슬머리를 매끈하게 펴낸 비욘세나 미셸 오바마의 머리가 아닌, 아프로나 드레드록 스타일의 땋은 머리를 한다. 그것이 말 그대로 그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천연 머리, 생生머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름⠀
 아메리카나의 1권은 이페멜루를, 2권은 오빈제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당당하고 꿈 많은 나이지리아 학생이었던 이페멜루는, 미국에서 월세를 내고 버틸 수 있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응고지’라는 무겁고 축축한 이름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인기 많고 똑똑한 나이지리아 소년이었던 오빈제는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자신의 이름과 영국인 ‘빈센트’의 이름 사이에서 생일과 장례를 넘나드는 일상을 감내한다. 자신이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 “처리되어야할 물건”이 아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이름이 아닌 이페멜루와 오빈제로 사는 것. 한 어절에 불과한 호칭은 그 사람의 악센트와 머리모양, 곁에 있는 사람 등 삶의 모든 방식을 뒤흔든다. 두 권에 걸쳐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항해’는 현실감과 신랄함으로 사납고, 때로는 한낮의 윤슬처럼 아름답다. 심지어, 진짜로 재미있다!

📍#모든_차별은_닮아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에게 갖고 있는 ‘보라색 브릿지를 넣은 사이버펑크족’이라는 편견에 불쾌해했으면서, 아프리카의 다양한 민족들과 각기 다른 문화를 마치 하나의 판타지 세계관인 양 오인했고 비뚤어진 마음으로 선망해왔다. 스스로를 차별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여겨왔음에도, 생머리라는 단어를 읽자 자연스럽게 찰랑이는 직모를 떠올렸다. 스스로를 향한 자조적인 유머, 그리움에서 기인한 관용이라는 이유로 만연한 흑인 내의 인종차별은 일상에 호흡처럼 뱉어지는 여성혐오를 떠올리게 했다. ⠀
 이페멜루에게 ‘사랑’이란 차별을 종식할 유일한 해결책이고, 바로 “내일을 고대하는 것”이다. 내일을 고대할 수 있는, 어제가 오늘에게 부끄럽지 않을 날을 뜨겁게 꿈꿔본다. 🌤

🔖

p222 “그냥 응고지는 네 부족 이름이고, 이페멜루는 정글 이름이고, 또 하나 아무거나 말하면서 네 영적 이름이라고 했으면 됐을 텐데. 아프리카에 관해서는 무슨 개소리를 해도 다 믿거든.”

p253 킴벌리의 눈에 빈민들은 죄가 없다는 것을. 가난은 빛나는 것이었다. 가난이 빈민들을 성스럽게 만들어줬기 때문에 그녀는 그들을 사악하거나 더럽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성인은 외국인 빈민들이었다.

(2권)p195 에밋 틸의 진짜 비극은 백인 여자한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흑인 아이가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일부 흑인들이 ‘그런데 대체 휘파람을 왜 분 거야?’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었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