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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미용실⠀
소설은 이페멜루가 흑인 머리 전문 미용실을 찾으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아프리카 상류층으로서, “신성한 미국인 무리에 끼어도 된다고 특별히 허락받은 사람”, “확신으로 온몸을 치장한 사람”으로서 프리스턴에 거주 중이었으나 머리를 땋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트렌턴까지 가야 한다. “부유한 안락의 도시” 프리스턴에는 북슬북슬하거나 단단하게 돌돌 말리 흑인 여성의 생머리를 맡길만한 미용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소설 속의 ‘미용실’은 ‘비미국인 흑인과 미국인 흑인’, ‘완벽한 백인 미국인의 연인과 나이지리아로 돌아갈 흑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이페멜루의 정체성 중간지대 역할을 해낸다. 이페멜루는 그곳에서 발암 물질과 실리콘 성분이 다량 함유된 릴랙서로 곱슬머리를 매끈하게 펴낸 비욘세나 미셸 오바마의 머리가 아닌, 아프로나 드레드록 스타일의 땋은 머리를 한다. 그것이 말 그대로 그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천연 머리, 생生머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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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아메리카나의 1권은 이페멜루를, 2권은 오빈제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당당하고 꿈 많은 나이지리아 학생이었던 이페멜루는, 미국에서 월세를 내고 버틸 수 있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응고지’라는 무겁고 축축한 이름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인기 많고 똑똑한 나이지리아 소년이었던 오빈제는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자신의 이름과 영국인 ‘빈센트’의 이름 사이에서 생일과 장례를 넘나드는 일상을 감내한다. 자신이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 “처리되어야할 물건”이 아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이름이 아닌 이페멜루와 오빈제로 사는 것. 한 어절에 불과한 호칭은 그 사람의 악센트와 머리모양, 곁에 있는 사람 등 삶의 모든 방식을 뒤흔든다. 두 권에 걸쳐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항해’는 현실감과 신랄함으로 사납고, 때로는 한낮의 윤슬처럼 아름답다. 심지어, 진짜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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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_차별은_닮아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에게 갖고 있는 ‘보라색 브릿지를 넣은 사이버펑크족’이라는 편견에 불쾌해했으면서, 아프리카의 다양한 민족들과 각기 다른 문화를 마치 하나의 판타지 세계관인 양 오인했고 비뚤어진 마음으로 선망해왔다. 스스로를 차별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여겨왔음에도, 생머리라는 단어를 읽자 자연스럽게 찰랑이는 직모를 떠올렸다. 스스로를 향한 자조적인 유머, 그리움에서 기인한 관용이라는 이유로 만연한 흑인 내의 인종차별은 일상에 호흡처럼 뱉어지는 여성혐오를 떠올리게 했다. ⠀
이페멜루에게 ‘사랑’이란 차별을 종식할 유일한 해결책이고, 바로 “내일을 고대하는 것”이다. 내일을 고대할 수 있는, 어제가 오늘에게 부끄럽지 않을 날을 뜨겁게 꿈꿔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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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2 “그냥 응고지는 네 부족 이름이고, 이페멜루는 정글 이름이고, 또 하나 아무거나 말하면서 네 영적 이름이라고 했으면 됐을 텐데. 아프리카에 관해서는 무슨 개소리를 해도 다 믿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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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3 킴벌리의 눈에 빈민들은 죄가 없다는 것을. 가난은 빛나는 것이었다. 가난이 빈민들을 성스럽게 만들어줬기 때문에 그녀는 그들을 사악하거나 더럽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성인은 외국인 빈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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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p195 에밋 틸의 진짜 비극은 백인 여자한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흑인 아이가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일부 흑인들이 ‘그런데 대체 휘파람을 왜 분 거야?’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