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지는지도 모르는 채 일하고 마음이 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쩌면 빛을 먹고 세포를 분열시키고 어둠에 숨을 뱉으며 저마다의 속도감으로 무성해지는 존재들의 이야기. ⠀ 국어사전 편찬 과정을 그린 소설 <배를 엮다>의 작가 미우라 시온의 신작이다. <사랑 없는 세계>는 후지마루가 음식 배달을 위해 모토무라가 연구원으로 있는 T대학원의 생물과학과 연구실의 문을 열며 펼쳐진다. 정확히는 주홍빛의 뒤꿈치를 가진 모토무라가 문을 열어주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연애소설도 일본문학도 즐겨 읽지 않아서인지 직접적인 감정 묘사나 대사들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인 후지마루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 그럼에도 오랜 시간을 들여 460쪽의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었던 건 모토무라와, 모토무라가 사랑해 마지않는 ‘사랑 없는 세계’ 덕이다. ‘왠지 이상한’ 혹은 ‘어쩐지 기분 나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여지를 신경 쓸 틈도 없이 식물과 사랑에 빠져버린 여성 인물 모토무라. 그 덕분에 낯선 생물학 용어나 연이은 ‘애기장대’의 등장에도 웃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