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쓰기, 좋은 글에서 더 나은 글로 - 논문에서 대중서까지 공부하는 작가를 위한 글쓰기, 편집, 출판 가이드
윌리엄 제르마노 지음, 김미정 옮김 / 지금이책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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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작업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동감하겠지만, 글을 시작하는 순간은 오히려 쉽다. 새하얀 백지는 막막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도전 의식'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하나의 원고가 대략적으로 완성된 이후는 더 어렵다. 생각보다는 별로인 글을 앞에 두고 고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거, 고쳐? 말아? 선택은 저마다의 '직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고쳐서 좋아질 글 마저 퇴고의 두려움 앞에서 '고치길' 망설이는 분들에게 이 책이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신림역 인근의 카페에서 읽기 시작해, 영등포의 집과 근처의 카페 그리고 잠실나루 역 인근의 카페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고쳐쓰기, 좋은 글에서 더 나은 글로>라는 제목처럼 '고쳐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인지 한 문단, 문단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꼭꼭 씹어서 먹는 듯한 마음으로 이 책을 평소의 속도보다 조금 더 천천히 읽었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글을 읽을 때도 속독하는 편이며, 마음에 들면 한번 더 읽는 형태로 독서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생각나는 장면과 이미지, 캐릭터가 있다면 대략적으로 전체 구성을 짜고 바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구조를 짜는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게 길어지면 그 아이디어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 어째서 나는 좀 더 시간을 들여서 구성이나 캐릭터를 '디자인'하지 못하는가 고민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답을 찾았다. 


이 책에 따르면 <이어 맞추는 스타일>과 <다듬는 스타일>이 있다. <이어 맞추는 스타일>은 한 번에 한 문단 혹은 한 단락씩 작업하면서 다음 조각들로 넘어가는 저자이며, 개별적인 '완성'을 취하기보다 전반적인 완성을 우선시한다. 단계별로 자신의 목표를 빨리 알아차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 <다듬는 스타일>의 저자는 문장, 문단, 페이지를 쓴 뒤 곧장 검토하며 여러 번 글을 살피며 끝없이 개선한다. 


전자는 글을 쓰는 속도는 빠르나 막판에 보다 꼼꼼하게 고쳐야 하고, 후자는 속도는 느리지만 완성도 있는 글을 만드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이어 맞추는 스타일>이라 생각하고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개별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니까 '이래도 될까' 했는데, 어차피 글은 초고에서 크게 변화하기 마련이고 버려진다 생각하는 무수한 조각들도 결국 '어떠한 순간'엔 쓰임새 있게 쓰여지니까.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은 '뒷심'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책에 따르면 <고쳐쓰기란 오류를 고치는 것보다는 글의 의도를 더 분명히 벼리고 나의 글을 바닥부터 찬찬히 생각해봄으로써 내가 하는 작업, 내가 가려는 방향, 독자를 특정 방향으로 이끌려는 이유를 명확히 하는 일에 가깝다.> 단순히 몇몇 오류를 정정하는 것도, 완전한 재창조도 아닌 내가 처음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 보며 방향성을 '바로 잡아가는' 일이다. 


글의 형태, 어떤 의도였는지 생각하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확한' 어휘와 문장, 이야기를 활용해서 고쳐가는 이유, 모든 글은 결국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야기 안에서 생각할 만한 최소 한 가지의 '알맹이'가 있기를 바라고, 흥미롭기를 기대한다. 저자는 독자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소통하는 것이며, 저자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이야깃거리 중에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읽히기 좋은 방식으로 '구조화'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글을 통하여 아낌없이 '화제, 이야깃거리'를 던지고 독자가 기꺼이 본인이 쓴 책이라는 바다 안에서 항해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내게 남은 한 가지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끝없이 점검하며 '바른 방향'을 잡아가는 여정이 고쳐쓰기라는 깨달음을 다시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퇴고, 고쳐쓰기가 참 부담스러웠는데 1번 고칠 때 '완벽해야 한다'라는 압박이 있어서다. 


초고 단계에서 완벽하다면 퇴고를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완벽을 기하다가 중도 포기해버린 원고들이 무수하다. 그럴 바엔 걍 쓰고 보자는 생각을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책은 이렇게 헤매는 저자들을(저자의 꿈을 가진 이 모두) 다독이며 고쳐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실질적인 방향에 대한 가이드 역시 세심하게 전해준다. 


소설이나 창작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글쓰기에 '적용 가능한 고쳐쓰기'라는 점에서도 유용했다. 자기소개서,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글, 소소한 SNS 등 우리의 일상에는 우리의 글이 필요한 순간들이 참 많다. 내일부터 바로 적용해 볼 것은 <초안을 소리 내어 크게 읽어보겠다>라는 것이다. 몇 주째 고민하며 쓰고 있는 글이 있는데 완성 목표는 30일이다. 


완벽한 원고가 아니어도(당연히 아닐 것이다, 초고니까) 괜찮다. 마음을 탁 내려놓고 부끄러움도 벗어버리고 소리내서 읽으며 체크하고, 내용을 앞뒤로 이동해보거나 문장을 삭제하는 방향도 생각해볼 생각이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길게 늘어지는 문단이나 챕터를 줄이기 전에 제 몫을 하는 부분부터 표시한다'라는 이 책의 조언이었다. 


살릴 엑기스만 먼저 표시해보고 삭제할 구간을 싹 지우고 읽어볼 것이다. 그렇지만 완전한 삭제는 아닐 것이다. 2고, 3고쯤 돼서는 다시 쓰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1번, 2번 만에 내 글이 '완벽해질 거란' 기이한 강박은 버릴 작정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고치되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공모전이 되었든 SNS가 되었든 연재 가능한 플랫폼이 되었든 일단 한번 꺼내볼 생각이다. 노출하면서, 써내면서 성장하는 법이니까. 


이 책의 저자는 참 많은, 좋은 조언들을 남겼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거다. 


<결국 유일하게 중요한 버전은 여러분이 세상에 선보이는 마지막 버전, 글로써 만들어낸 마지막 형태, 여러분의 텍스트가 시도하는 마지막 비행이다. 그 글에 담긴 여러 층위와 내력, 그리고 최종본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지나온 모든 고쳐쓰기의 경로들이 여러분이 수행해온 모든 작업의 면면을 이룬다. 이것이 저자로서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독자는 최종적으로 여러분이 선보이는 글만을 보게 된다. 첫 페이지부터 시작해 뒤따르는 모든 페이지까지 가능한 한 최고의 글을 만들어보자. 그러고는 놓아버리자.> 


쓰레기와 같은 초고는 내 마음 안에 영원히 살아 숨쉬나, 그 모양 대로 독자에게 보여줄 순 없다. 가능한 고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미련 없이 놓아버리자. 그 다음의 일은 '독자'의 일이다. 요즈음 참 많은 고민이 있고 콱 막힌 기분이었는데 조금은 탄산을 마신 듯 속이 뚫렸다. 하지만 완벽하게 '시원'해지진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최선을 다했고, 고쳐쓰기를 수행하며 '깨달아가는 것'은 이제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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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맨을 찾아서
리처드 치즈마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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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부기맨을 찾아서>를 읽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 문장들 때문이었다. 


- 나는 거기 있었다. 나는 목격자였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 괴물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됐다.


괴물을 지켜보다 스스로 괴물의 이야기에 들어가게 된 스토리는 무얼까. 궁금해서 첫 장을 넘겼고, 단숨에 몰두하여 한 자리에서 다 읽고 난 뒤에 나는 잠시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을 떠올렸다. 담고 있는 내용도, 주제도, 결론도 다르지만 하나는 똑같아서다. <서칭 포 슈가맨>에서 '슈가맨'으로 통하는 가수 로드리게스를 찾는 이들과 <부기맨의 찾아서> 속 주인공 리처드 치즈마의 심리가 참 닮았다. 너무도 찾고 싶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서 무얼하는지 라는 추적의 '심리' 말이다. 


또 하나 더, 추적자가 된 그들은 그들이 쫓던 이들과 '삶'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의 추적자들은 슈가맨의 '삶' 일부로 들어가서 그의 삶 전체와 마주했고, 소설 <부기맨을 찾아서>의 추적자 리처드 치즈마는 연쇄 살인마, 부기맨 그 괴물의 이야기가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 있음을 깨달았으니까. 이는 두 작품을 지켜보는 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칭 포 슈가맨>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존재'를 몰랐던 슈가맨을 영화 중반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나도 미치게 찾았으니까. 영화 중반부가 지나고 나서야 그가 '존재'를 드러냈을 때 나는 흡사 내 아이돌을 만난 것처럼 흥분했다. 소설 <부기맨을 찾아서>에서도 나는 그러한 종류의 연쇄 살인마를 만나본 적 없으면서, 심지어 그 마을과 비슷한 마을에 살아본 일도 없으면서 그 마을 주민들과 함께 두려워했고, 부기맨에 분노했으며, 부기맨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에는 약간의 충격에 빠졌다. 


추적하는 이야기는 이렇게나 몰입감이 높다. 주인공이 왜 그 자를 쫓는가, 그 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나면 주인공에게 이입하기 편해지니까. 슈가맨 로드리게즈처럼 '모두의 아이돌'인 케이스와 연쇄살인마인 부기맨처럼 '모두의 적'인 케이스는 겉보기엔 달라보인다. 사랑과 열망 혹은 증오와 두려움으로 '감정'의 키워드가 다르니까. 동시에 흡사한 감정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원초적인, 본능에 가까운 감각'을 깨운다는 데서는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몰두한 키워드인 '감정적 몰입'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 다소 돌아 왔다.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이 소설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스릴러' 혹은 '범죄물' 소설과는 다른 궤도에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88년 미국 메릴랜드 에지우드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독립출판의 길을 걷기로 한 리처드 치즈마는 결혼을 앞두고 잠시 고향의 본가에 머물기로 한다. 그 시점에 공교롭게도 10대 소녀가 자택에서 납치 돼 살해되는 큰 사건이 벌어진다. 이미 1-2년 전부터 주택에 무단 침입해 여성들을 추행하던 일명 '팬텀 폰들러'가 마을에 공포심을 자아내고 있었기에 모두 두려움에 떨던 한편, 또 한번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팬텀 폰들러가 아닌, 독자적인 방식으로 '연쇄 살인'을 이어가는 범인에게는 '부기맨'이라는 별명이 생긴다. 부기맨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미국의 가정에서는 친숙한 존재로 침대나 벽장 속에 숨어 있는 귀신으로 자주 일컬어진다. 어두운 곳에 있다가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데서 우리나라의 망태 할아버지와 흡사한 듯도 하다. 정체가 명확치 않고, 얼굴마저 제대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부기맨과 정체를 알지 못하고 수사망을 피해가는 소설 속 연쇄 살인마의 모습은 아주 닮아 있고, 동시에 너무도 두려운 존재다. 


주인공 리처드 치즈마는 범죄 미스터리와 공포물의 열렬한 편이자 몇 편의 단편을 발표한 작가이며 동시에, 잡지를 출간을 준비하는 독립출판업자로 조용하던 마을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부기맨을 추적한다. 저자의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이 동일하고, 저자의 고향마을을 배경으로 하며 동시에 주인공의 약혼자이자 아내 이름 역시 저자의 아내와 동일하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는 중반부에는 이것이 소설인지 르포 형태의 기록물인지 헷갈리기도 하다. 실제로 이 소설 내에는 꽤나 많은 사건과 관련한 자료 사진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해 할 만한 내용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는 만큼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는 더더욱 내용에 몰입한다. 앞서 기존의 스릴러 소설과 느낌이 다르다 했는데 빌런인 부기맨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 리처드 치즈마와 그 주변 인물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다. 사건은 발생하고 있고, 그로 인한 추적과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이어지는 건 동일한데 일상과 마을에 포커스가 계속 맞춰져 있다. 정말... 소설이 아니라 일기 혹은 르포 기사를 보는 것 같은 작법이다. 


조금 더 리드미컬하고 액티브한 사건 전개와 추적이 있길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면 처음엔 조금 실망할 수 있지만, 여러 사진 자료들을 보면서 책을 읽는 마인드 자체가 달라진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나 유튜브를 통해 가끔 보고는 하던 범죄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으로 흥미진진하게 봤다. 소설에서 다큐멘터리를 볼 때의 기분을 느끼다니 정말 새로웠다. 범죄의 장으로 소비되고 있는 이 한 마을에 대해서, 그 마을의 피해자와 유가족과 목격자 그리고 가해자의 가족들에 대해 생각하며 빠르게 읽다 보면 엔딩부에 가까워 온다. 


마지막 시점에 우리는 가해자가 누군지 드디어 알게 된다. 다소 충격적이나, 미스터리/추리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예상 가능한 범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KEY는 가해자가 밝혀지고 난 이후에 오는 반전이다. 스포를 막기 위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가해자와 주인공 사이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난 뒤에 무언가 찜찜한 상태로 이야기가 막 내리나 했더니 모든 생각을 뒤짚을 만큼 흥미로운 에필로그였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에 나는 간만에 웃었다. 아, 추리/추적/범죄 소설을 이런 형태로 써도 되겠구나... 하면서 나는 첫장을 잠시 다시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모두 생각하게 될 거다. 이 소설을 '소설'로 완성하는 건 여러분과 같은 독자들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게 될 테니. 중간에 다소 늘어지는 부분도 있고 불필요한 장면도 많다 생각했으나 소설이 취한 구성이 그 단점을 어느 정도 덮어줬다 생각한다. 마지막 팁을 하나 주자면, 마치 <페이크 다큐>와 같은 소설이었다. 


- 나는 거기 있었다. 나는 목격자였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 괴물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됐다.


이 이야기는 독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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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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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은 책 소개에서부터 마음을 뒤흔들었다. 삶과 죽음,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저승 누아르'라니! 삶과 죽음에 원래 관심이 많아서 저승을 소재로 한 저승국 로맨스라는 웹소설을 써보기도 했던 나였다. 공모전에도 수상했지만 그 뒤를 이어갈 용기가 없어서 글쓰는 것을 중단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꽤 힘을 얻을 거 같아서 서평단 신청을 했고, 감사하게도 당첨됐다. 


2022년 부커상 수상작에 빛나는 이 책의 줄거리를 한 줄로 말하자면, '이유 모른 채 죽은 채 깨어난 유령 말리 알메이다(이후 말리)가 자신이 왜 죽었는지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사후 세계에 대한 설정이 재미 있었는데 일곱 번의 달이 지기 전에 빛으로 들어가야 다음생으로 갈 수 있고, 일곱 번의 달이 다 지기까지 중간계와 현세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유령인 상태로 말리가 애인과 친구들을 찾아가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힌트를 알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는 서사도 흥미로웠지만, 스리랑카 내전과 대학살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잘 버무렸다는 것이 신기했다. 


소개 글에서 인용된 <뉴욕타임스>의 소개에 따르면 '기존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부수고 낯설고 광활하며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성을 드러낸다'라고 하기에 어떠한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부순 걸까,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에 역사적 배경 그리고 죽음 이후에 자신이 왜 죽었는지 추적하는 미스터리까지 더해진다면 복잡할 텐데 어떻게 구성을 짰을까 가장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소 어지러웠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둔 소설이었다. 


흥미로웠던 3가지 지점과 아쉬웠던 2가지 점을 뽑아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첫째, 사후세계의 풍경이 흥미로웠다. 


눈을 뜨자 '유령'이 된 걸 깨달은 말리. 갑작스레 '망자'의 신세가 돼서 다른 망자들과 함께 '저승 카운터' 앞에 줄을 선다. 그 카운터에는 망자의 항의에 쪄들어 있는 안내원이 있고, 영문을 모른 채 절차를 따르던 말리는 또 다른 '기묘한 유령'(이름은 밝히지 않겠다)에게 홀려 '정상 궤도'를 벗어나는 선택을 하고, 자신의 죽음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죽음 추적'이라는 탐정소설의 요소가 있어서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사후 세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꾸준히 서술돼서 스리랑카인 작가가 사고하는 '사후'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환상의 영역이기에 구체적인 '상상'과 '설정'이 중요한데 그 부분에서 잘 해낸 느낌이었다. 


둘째, 망자의 시선을 따라가기에 '건조'한 분위기 속에서 느와르를 체험할 수 있다. 


느와르가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했는데 스리랑카 내전과 관련한 과거의 사건, 현재의 사건을 잘 엮어서 '액션적'으로 풀어낸 게 인상적이었다. 스포를 막기 위해 자세히 서술하지는 못하지만, 스리랑카가 어떠한 비극의 역사에 놓여 있는지 몰랐던 사람의 입장에서 읽어도 시각적으로 잘 그려졌다. 느와르라는 장르에는 액션과 의리, 사랑이 공존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에서도 역시 그랬다. 주인공의 정체성이 '퀴어'여서 다양한 차원의 사랑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좋으나, 너무 '성적인 차원'에 머물렀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셋째, 현재와 과거 그리고 사후 세계와 인간계를 마구 오가는데 이해하기 쉽다. 


구성이 잘 짜여져 있다는 의미다. 일단 7번의 달이 다 지기까지 세상을 헤매는 여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책의 장 역시 8개로 나뉘어져 있는 점이 좋았다. 첫 번째 달에서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주인공의 캐릭터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면 두 번째~일곱 번째 달까지 나머지 장을 통해서 장 별로 사건을 전개하는 형태로 잘 분리하여 이해하기 쉬웠다. 맨 마지막 장은 '빛'으로 별도의 제목을 취하고 있는데, 일곱 번의 달이 다 지나고 난 뒤에도 '환생'을 택하지 않았던 주인공이 어떻게 '환생'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는지 잘 보여줬다. 


특히 말리 알메이다에 대한 소개가 시니컬하면서도 재미있었는데, 소설에 나오는 문장을 잠시 인용하자면 하기와 같다. 


"네게 명함이 있다면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말리 알메이다 사진작가, 도박꾼, 걸레. 묘비가 있다면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말린다 앨버트 카발라나 1955-1990". 주인공의 시점을 따르나 주인공을 '너'라고 2인칭으로 지칭하는 지점도 흥미로운데, 동시에 이 유령이 '육신'에서 분리되어 있는 타자의 신세라는 걸 독자에게 꾸준히 알려주는 거 같아서다. 


이번에는 아쉬운 2가지 지점인데, 사실 이 2가지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꽤 자주 멈췄고 이따금은 집중력을 잃기도 했다. 


첫째, 불필요한 사건과 장면까지 포함되어 분량이 너무 길다. 


이 소설을 처음 보는 순간 두께가 꽤 두껍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꽤 긴데 읽다 보면 말리의 죽음을 쫓아가며 만나는 스리랑카의 현실과 느와르적인 스토리라는 메인 서사 외에 곁다리 이야기가 꽤 많이 등장한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말리의 성적 취향, 퀴어에 대한 스토리는 좀 줄였어도 괜찮지 않나 싶었는데... 그다지 이 소설 내에서 크게 기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밝히진 않겠지만) 말리의 죽음과 결정적인 관련이 있기야 하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많이 나올 필요는 없다... 라는 생각이었다. 


둘째,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외부 서사'가 많아서 정작 메인 스토리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졌다. 


스리랑카의 역사적 배경과 사건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그 역사적이거나 정치적인 부분에 있어 지면이 너무 많이 할애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 '잘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동시에 '잘 모르기 때문'에 길게 쓰여 있을수록 집중력을 잃기 쉬운 이야기다. 핵심만 탁 남겨줘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말리가 왜 죽었는지 말리의 친구들은 어떠한 위험에 처한 건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건데 유령 사회에서도 일종의 '프로파간다'를 외치는 무리들이 나오고, 관련 내용이 다수 나오면서 정작 말리라는 주인공에 대해서는 잘 보여지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사지에 가면서까지 사진을 찍고, '중간자'의 입장에서 사진을 판매하는 사진 작가 말리에 대해서, 그의 죽음과 그 이후가 궁금했던 건데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말리를 '잘'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외부적인 설명은 많았지만 정작 그의 내면에 대해선 잘 보이지 않아서다. 유령이고 '너'라는 시점을 취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겠지만 아쉬웠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나는 내전과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현실과 사후세계를 엮어낸 것, 저승 누아르라는 색다른 장르, 마술적 리얼리즘과 부조리한 유머가 섞여 있는 게 한 책 안에서 가능한 일이구나 하는 것에서 놀랐다.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며, 여러 차례 고쳐가면서 이 소설을 썼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리랑카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어 봤는데 이후에도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더 말하지 못한,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여러 환상과 이미지들 그리고 비유가 이 소설 안에는 많다. 


혹 이 리뷰를 보고 이 소설이 궁금해졌다면 한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앞서 말한 아쉬운 점들 때문에 중간중간 멈춰가며 읽어야 될 수도 있지만, 다 읽고 난 뒤에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감탄하게 된다. 죽음 이후에 바라보는 삶이란 이다지도 다채롭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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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휴먼스 랜드 (양장) 소설Y
김정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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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카페에서 술술 읽고 난 뒤에 서평을 쓰는 것은 늦었다. 창비에서 운영하는 #소설y #소설y클럽 은 처음인데 미션이 많아서 신기했다. 


짧게 요약하자면 <노 휴먼스 랜드>는 전 세계적인 기후 재난 이후 세계를 다루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기후 재난의 가속화를 막기 위해 지구 육지의 57%를 사람이 살지 않는 땅, 노 휴먼스 랜드로 지정하는 협약이 체결된 이후 대한민국의 현 주소는 '전 국토'가 노 휴먼스 랜드가 된 것. 고향을 잃은 이들은 난민촌을 떠돌면서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 꿈꾸고, 주인공 미아의 할머니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할머니에게 대한민국에 대해서 들은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그녀는 할머니가 죽은 이후에 한때 대한민국 서울이었던 '노 휴먼스 랜드'에 파견된다. 내부 조사를 하는 '노 휴먼스 랜드 조사단'에 시은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잠입하게 된 거다. X라는 묘령의 인물에게 그녀가 하달 받은 임무는 '수상한 점을 발견하면 즉시 보고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파커를 '단장'으로 한 조사단에서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 소설이 재미있었던 건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색다른 사건이 터지고, 누군가의 죽음을 겪으면서 한때 '원 팀'이었던 조사단은 분리되고, 연이어 '크리스 납치 사건'까지 겪게 되면서 미아는 '비밀리에 전개되고 있던 극악한 실험'과 마주하게 된다. 모든 사람의 정신을 앗아갈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물질'에 대한 실험이 아무도 없는 땅이라 생각됐던 서울에서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땅이라 생각되던 서울에 몰래 잠입하여 살고 있던,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자들'은 실험을 운영하는 그룹에 의하여 '피실험체'로 사용되었고, 노 휴먼스 랜드를 둘러싼 전 국가적인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아가 바라는 건 단 하나, 할머니의 유골을 할머니의 땅에 돌려주는 것과 난민 신세를 벗어날 만한 돈을 버는 것이다. 


유래없는 기후 재난 이후 풍요로운 '과거도시'와 가난한 '기후 난민 캠프'로 바뀐 세상에서, 비틀린 욕망을 품고 엇나간 실험을 계속하는 자들이 흥미롭게 보여지는 이 소설. 인물들의 욕망이 분명해서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몰입감 있게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사건이 연이어 터지니까 더 뒷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하나의 아이디어(기후재난)에서 시작해 노 휴먼스 랜드와 그 외의 세계까지 확장해간 스킬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그 판을 짜는 능력과 사건을 연이어 터트리는 능력 이 외에 캐릭터와 캐릭터 간의 관계성을 풀어내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쉬웠다. 읽어본다면 더 자세하게 알게 될 테지만, 나는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미아라는 인물에 이입되지 못했다. 호감도 비호감도 아닌, 그냥 캐릭터로 존재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공감은 캐릭터 특히 주인공을 만드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요소'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이 소설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강했고, 사건을 터트리고 풀어내는 데는 총력을 기울였지만, 바로 그 탓에 주인공의 '입체적'인 모습까지는 담아내지 못한 거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어디까지나 아쉬움일 뿐이며,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이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주인공은 '선'을 행하기 위해서, 악의 조직을 막아내기 위해서 '일종의 소녀 히어로'로서 기능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충실하게 그 역할을 수행해 내는 체스말 처럼 느껴졌던 소설 <노 휴먼스 랜드>.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SF나 디스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소재나 사건이 팡팡 터지는 것 외에는 인물에 대해 심도 깊게 들어간 작품을 만나기는 어려워졌다. 이 부분은 나 역시 잘 안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소재와 사건, 캐릭터성을 동시에 잘 가져갈 방법은 없을까 하는 질문을 얻게 되었다. 이 소설 만큼 잘 풀어내는 것도 힘들다는 걸 잘 안다. 그저, 하나의 소설을 읽고 나면 매번 또 하나의 과제가 생기듯 이번 소설이 내게 남긴 과제이자 질문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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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만화경
김유정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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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SF와 판타지를 즐겨보고 있다. 그런데 SF와 판타지를 넘나드는 중단편 10편이 수록되어 있다니! 안 보면 이거, 손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서평단 신청을 했고 감사하게도 뽑혔다. 


주말에 단숨에 읽은 이 소설집에서 

단연 재미있었던 건 역시 표제작 <용의 만화경>이었다. 


 모든 소설을 다 소개하는 건 너무 '스포' 같으니까 수록된 10편 중에서 재미 있었던 소설 2편과 아쉬웠지만 발상만은 흥미로웠던 소설 2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 흥미로웠던 소설 2편 


[용의 만화경] 

대학원실 구은진의 연구실에 찾아온 수상한 사내! 사자탈을 비롯한 탈이란 탈은 다 쓰고 다니는 이 남자, 김용이다. 이름만 용이 아니라 '진짜' 용이다. 백여년 전 초대총장이 예외적으로 받아준 탓에,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덕에 여전히 학적부에 올라와 있는 용이 수업에 나오게 된 거다. 플로피 디스크를 당당하게 내미는 용씨의 뒤치다꺼리를 하게 된 은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 마지막까지 통통 튀고 귀엽다. 


특히 탈을 쓰고 있는데도 적나라하게 감정이 드러나는 김용이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김용과 정이 들어버리는 은진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서 더 집중하기 좋았다. 스포가 될까 봐 밝히진 않겠지만 용이 계속 나타나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와 그 연구의 이유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나오는데, 마지막 장을 볼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다만 아쉬웠던 건 그들의 '프로젝트'가 조금 더 에피소드적으로 디테일하게 보여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지점이다. 단발적인 사건과 설명 위주의 문장으로 이야기되다 보니까 과학과 그리 친하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조금 어렵게도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조금 아쉬운 부분이며, 전반적으로 이해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만세, 엘리자베스] 

어느 날 아침, 직장인 정주은은 '로봇청소기' 엘리자베스로 깨어난다. 분명 '정주은'이라는 인간의 모습은 보이는데 저 육체 안에는 로봇 엘리자베스의 영혼이, 이 답답한 기계 신체 안에는 인간 정주은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게 '끔찍하게도' 사실이라니! 초반부 정주은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너무도 잘 전달돼서 만약 로봇청소기로 깨어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 절로 몰입됐다.


혹여나 회사에서 실수라도 할까 엘리자베스를 훈련시키던 주은은 무료한 기계의 일상에 자꾸만 적응해 가고, 엘리자베스 역시 인간으로 살아가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대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은 성공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은 아껴두겠다. 


인간의 탈을 쓴 로봇, 로봇 안에 갇힌 인간이라는 다소 황당한 두 캐릭터가 동거동락하는 이야기로 웃음을 주더니, 인간의 몸을 빼앗긴 영혼이 로봇 안에서 절규하는 것을 설득력+흥미롭게 잘 그려낸 소설이었다. 로봇청소기 지금까지 안 쓰면서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안 쓰고 싶어졌다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결말이 열린 결말처럼 보여서 해석에 따라 2가지로 보일 거 같다는 게 좋으면서도 아쉬웠다. (개인 취향으로는 조금 더 닫혔으면 했다) 


- 아쉬웠던 소설 2편 


[장미흔] 

계약한 인간에게서 생기를 빨아들여 생명을 이어가는 걸로 '흡혈귀'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 소설. 첫 단편이어서 더 집중하면서 읽었는데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감염병의 여파로 온 세상이 뒤흔들면서 흡혈귀의 삶마저 바꿨을 때, 흡혈귀 란이 떠나가는 대신 남아 있는 걸 택했다는 건 알겠는데 그 남는 과정이 머리로 잘 이해되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초중반까지 집중해서 읽다가 후반에 가서 "무슨 이야기지?" 맹해졌던 소설이라...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길게 쓰여졌으면 좋았을 거 같다. 


[나와 밍들의 세계] 

아이들에게 괴롭힘 받고 죽어가던 고양이인 '내'가 인간의 몸으로 깨어났다. 죽어가는 생명체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연결해주는 기계로 한 여자와 연결되어 있는 것, 그 여자를 나는 '밍'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나와 밍의 관계나 도입부가 마음에 들었다. 소외된 자들의 연대 같기도 하고, 그 '색다른 기계'를 이용해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그려질까 기대돼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캐릭터도 잘 보여지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서도 기계가 어떤 모양인지,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잘 그려지지 않아서 망연하기만 했다. 조금 더 캐릭터와 기계가 보여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렇게 4편을 뽑고 나니 1편이 눈에 밟힌다. 바로 [청백색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 '나'만 목격해 온 청백색 점이 흥미로웠다. 청백색 점으로 집어 넣은 것들은 사라진다는 것도, 결국에는 스스로 그 점을 받아들이는 결말까지 탄탄하다 생각했다. 다만 [용의 만화경]이나 [만세, 엘리자베스]의 주인공처럼 주도적으로 문제에 맞서는 게 아니라 소극적인 태도에 그쳐서(상황상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이용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발상이나 서사는 매력적이었다. 


단편집을 다 읽고 나니 흥미로운 발상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설득력 있고 재밌는 서사로 끌고 나가서 보여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한번 더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입장이어서 읽으며 더 배운 게 많았다. 


표제작 <용의 만화경>과 같은 동양풍 SF, 좀 물건인데?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읽어봤으면 한다. 이런 세계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그 세계에 대해 더 탐구하고 싶어지니까. 나 역시 욕심이란 게 생겼다. 나도 좀 쓰고 싶다는, 그 이전에 많은 공부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ㅎㅎ 여름날에 풍경 좋은 카페에서 시원하게 읽으니 더 청량하게 느껴졌던 소설, 김유정 작가의 소설을 앞으로도 찾아 읽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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