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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시대 ㅣ 새소설 17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0월
평점 :
"우산은 시대가 아무리 좋아져도 지금 이 형태일 테니까요. 이 모습이 우산의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이 소설 <부끄러움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에 나온 이 대사에 나는 한동안 머물렀다.
벨기에에서 우산공예가로 성공한 한 남자가 자신이 평생의 직업으로 ’우산 만드는 일‘을 선택한 이유를 말했을 뿐인데, 나는 고작 이 말에 어째서 가슴이 쿵, 내려 앉았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아, 이런 이야기, 이런 글'은 '소설'이라는 장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 소설 <부끄러움의 시대>가 다루는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 웹툰, 숏폼, 연극, 뮤지컬... 그 어떠한 매체로도 이만큼 표현하기 어렵다. 활자로 이뤄진 소설이라는 이름의 ’줄글‘에서 더 빛나는 감성이 담뿍 담겨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우리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다. 주인공 한해는 우산공예가이고, 아버지는 호텔 청소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누나는 성급한 결혼 끝에 이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백수다. 또한 지금은 이 생에 없는 어머니는 아버지와 호텔에서 만났으며 일평생 청소 일만 하다가 바로 그 호텔에서 죽었다.
소설 안에서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생은 이어지며, 누나는 한해의 작업실에 출근하기 시작했고, 한해에게는 예기치 못한 인연이 찾아든다. 또한, 아버지의 생은 늘 비슷한 모양으로 이어져 간다.
하나 다른 점이라면, 이 평범해보이는 일상에 크나큰 바이러스가 찾아왔다는 것. 그렇지만 그 바이러스가 일상을 모조리 집어 삼키지도 않는다. 주인공 한해와 가족들은 바이러스가 가득한 일상 속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너무도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인 ’한해‘라는 캐릭터에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건 왜 일까. 그 생의 진심이 느껴져서다.
공산품 우산이 넘쳐나는 세상에 ’공예‘로 우산을 만들어내는 업을 택한 그가 살아가는 방식. 그가 가족을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을 독자에게 한껏 전해주는 건 단연 문장의 힘이다.
이 소설의 문장에는 속독하는 게 습관이 된 나도 자꾸만 곱씹게 만들게 하는 데가 있었다.
이를 테면 <스승님한테야 구름은 당연히 우산 쪽이었겠지만, 나는 나에게 있어 비를 내리게 해줄 구름이 공부인지 우산인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답답했다.>거나,
<우산에 빠져든 삶은 후회스럽지 않았다. 그것의 가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라지지 않도록 전통을 잇는다는 데 있었다. 한 사람의 탄생은 다른 사람의 삶을 이어받기 위한 거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와 같은 문장들.
단지 상황이나 사건, 인물의 특징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설명형 문장‘이 아니었다. 작가가 캐릭터에 가까이 다가가 있어야만, 동시에 몹시도 치열하게 ’생‘에 대해 생각해 왔을 때만 나올 수 있는 작가만의 성찰이 담긴 문장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단지 우산과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 생각했다.
읽을수록 서사 아래 숨겨져 있는 서브 텍스트에는 작가가 소설을 대하는 태도, 작가가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여기게 됐다. 결말로 나아갈수록 작가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이었고, 마지막엔 절로 눈물이 났다.
스포를 막기 위해 결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담지 않겠지만, 정말이지 앞서 내가 인용한 문장처럼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다음 시대가 온다. 부끄러움의 시대가 저물고 다시 다가올 시대에 대해서 결말은 답을 내리지 않고, ’열어둔 채‘ 끝난다.
척하지 않고, 섣부른 감성을 담지 않고, 절제된 태도로, 그러나 진심을 가득 담은 소설을 읽는다는 건 복된 순간이다. 동시에 초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나는 왜 소설을 게속 읽고 쓰는지 한동안 답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깨달았다.
위로, 문장을 곱씹어볼 수록 진하게 전해지는 삶에 대한 위로. 척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저 나의 삶은, 내가 바라본 인생은 이러하다는 걸 들려주는 문장들.. 힘들 때마다 나는 작가의 마음과 시선이 담뿍 담겨 있는 문장들에서 위로를 얻었다. 이 소설의 문장들은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위로였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깊이 있게 읽어낼 수 있었던 건 이 소설이 나름의 서사적 원칙을 잘 지키고 있어서다. 술술 잘 읽히면서 자연스럽게 한 가족의 이야기에 내가 몰입하게 한 서사의 기술에도 감탄했다. 허니 아직 보지 못했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