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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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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터리 대표 작가, '반전의 제왕'이라 불리는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는 48세에 등단했다. 


어려서부터 추리소설을 탐독했고, 습작을 했으며, 공모전에도 글을 냈으나 데뷔하지 못한 채 평범한 직장인이 된 그는 어떻게 40대 후반의 나이에 등단하고 '전업작가'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 


궁금증을 갖고 서평단을 신청해서 손에 넣은 책 <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 처음부터 끝까지 '실질적인' 팁으로 꽉꽉 차 있는 보물같은 책이었다. 이런저런 작법서를 꽤 읽은 나인데도 이 책은 뭔가 달랐다. 


나카야마 시치리가 글을 쓰며 겪은 시행착오와 그를 통해 얻어낸 '영업 비밀' 그리고 작가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1대 1로 알려주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특히 초고와 퇴고, 자료조사 사이에서 헤매며 나만의 작법을 찾는 요즈음에 읽기 좋았다. 짧게만 소개하자면 그는 취재보다 '인풋'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을 읽으며 느낀 건데, 그는 소설 뿐 아니라 자신이 글을 쓰고자 하는 분야에 있는 책을 비롯한 각종 정보들을 매일 같이 흡수하며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인풋이 풍요로우면 취재 하지 않아도 미스터리 작품을 '반전'까지 탁월하게 써낼 수 있다는 건 내게 일종의 해방감을 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글쓰기를 병행해야 하는데 취재가 웬말인가... 싶어서 미스터리 쓰기를 망설여 왔는데 직접 발로 뛰지 않고 자료만 잘 습득하면 된다니... 물론, 인풋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지는 디테일하게 나오지 않았다. 다만, 취재원을 만나지 않고도 유려하게 써내려면 괴물 같은 먹성으로 내 안에 지식, 정보, 표현들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쓰고자 하는 이야기, 표현하고 하는 바가 내 안에 넘실거리지 않는다면 소설이란 쓰기 참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퇴고는 플롯 단계에서 마쳐라'라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단편을 쓸 때는 큰 퇴고 없이 쓸 수 있지만 장편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을 해 왔었다. 


근데 그의 방식에 따르면 원고지 500장 정도의 장편이라도 2천 자 이내로 플롯 정리 가능하며, 플롯 작성 단계에서 소설 분량과 구성 방식을 결정하고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물론 작가의 방식은 다양하지만 나는 이 방식이 '다작'하기에 적합한 방식이라는 데 동감한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다작하는 작가였고, 왜 다작하는지에 대한 그만의 철학 역시 책 속에 담겨 있지만 리뷰에서는 감춰두겠다. 


나 역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글을 병행하는 입장에서, 이제 장편 소설을 제대로 써보고 싶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꽤 좋은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두루뭉실한, 하나마나한 조언은 이 책 안에 없다. 


작법은 물론, 글을 대하는 태도와 생활 신조까지 담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작가가 어째서 '반전의 제왕'으로 불리는지, 팬덤을 갖게 됐는지 알 것 같다. 


가슴에 와닿는 문장들을 곱씹었고 아직까지 채 소화되지 않았다. 내 글을 써보면서, 나만의 작법을 찾아가면서 작가의 이야기를 하나씩 소화해나가는 것도 흥겨운 일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문장을 소개하며 리뷰를 맺음하겠다. 


<무엇을 쓰든 손톱자국은 남기고 싶습니다>라는 문장이다. 


<잠들기 전 한 장면이 떠오른다거나 어떤 상황에서 한 문장이 떠오르면 손톱자국을 남긴 겁니다. 그것은 곧 제 작품이 그 사람 영혼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죠. 독자가 그런 독서 경험을 맛본다면 작가로서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이 문장까지 읽고서 나는 감탄했다. 


나 역시 글을 쓰며 생각하던 거였지만 '손톱자국'으로 콕 집어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다. 또한 '손톱자국'과 '그 사람 영혼의 일부'라는 표현이 비유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남기거나 감정의 울림을 겪게 하는 것, 또는 길이 기억될 문장이나 단어, 표현을 남길 수 있다면 나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거란 생각을 하며 한 달 넘게 멈춰 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글을 쓰고 싶어하거나, 글이 한동안 막혀 있거나, 글을 쓰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꼭 미스터리 장르가 아니어도 통하는 이야기가 많으니 한 번 스윽 읽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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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미친 누나 네오픽션 ON시리즈 30
배기정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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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강렬한 소설은 보통 ‘모’ 아니면 ‘도’다. 정말 재밌거나, 제목이 전부거나. 이 소설 <나를 사랑하는 미친 누나>는 색달랐다. 완전히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잘 만든 소설이랄까, ‘모’와 ‘도’ 사이에 안정적으로 자리한 기묘한 소설이었다. 


소설은 소위 망돌(망한 아이돌)이었다가 트로트 가수로 재데뷔, 직캠으로 떠오른 스타 지세준과 세준을 스타로 만든 홈마 연희정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렇다. 제목에서 ‘나’는 지세준이고, ‘미친 누나’는 연희정인 것이다. 이 경우 세준의 시점을 중심으로 가져가게 된다면 희정은 정말로 ‘스토커’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소설은 달랐다. 


세준과 희정의 시점을 번갈아 등장시켰고, 세준의 어투는 ‘~다’로 끝난다면 희정의 어투는 ‘~습니다’체로 끝나게 하여 차이를 두었다. 


말하자면 세준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는 느낌이었고, 희정은 머나먼 어딘가에서 독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담담하게 토로하는 희정의 어투 때문일까, 그 여자가 ‘정말로 미친 짓’을 하는데도 읽는 나는 ‘미치게’ 느껴지지 않았다. 외려 연민하게 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무명 생활 끝에 재데뷔한 세준은 전 여친의 임신 때문에 나락으로 갈 뻔하고, 그때 희정이 세준을 스타덤에 올렸던 것처럼 나락에서 끌어내준다. 하지만 세준과 헤어진지 한참 된 데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전 여친을 둘러싼 2차 사건이 터지면서 세준은 꼼짝없이 누명을 뒤집어쓸 위기에 처한다. 이 시점에서 희정에게도 오래 묵은 사건이 터지고 연결될 것 같지 않았던 두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며 절정으로 향한다. 


얼핏 봐도 사건이 와다다 터지는 느낌인데, 실로 절정에 가까워질수록 세준을 구석으로 몰아가는 서사가 흥미로웠다. 이와 관련하야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이 사건들이 절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고, 또한 희정의 정체나 미스터리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다. 이 글을 읽고 한번쯤 소설을 보길 바라는 내 마음이라고 해두자. 


소설을 다 읽고 친구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딱 이렇게 말했다. 


- 사건이나 반전은 예상할 만한 것인데 인물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좋았다고. 


아마 그건 인물의 시점을 오가면서 사건을 구체화시켜가는 작가의 능력 덕이었을 거다. 희정은 생각보다 미쳤으나 완전히 미친 사이코는 아니었고, 예상보다 외롭고 아팠던 인물이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오해가 거듭되는 장면도 꽤 있었다. 


여자의 시점이 동반되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 여자의 미침엔 언제나 이유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이 여자의 ‘논리’ 안에서만 허용되는 이유가 아니라 납득 가능한 형태라 약간은 아쉬웠다. 한 발 덜 간 느낌이랄까. 어쩌면 그래서 부드럽게 결말을 맺음할 수 있었겠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내 최애가 되긴 어려워졌다. 


소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잠시 스티븐 킹의 <미저리>에 대해 생각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그의 소설 속 인물을 사랑했던 한 스토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꽤 오랫동안 회자될 만큼 사랑받았으나 언제나 이 소설 속 스토커는 ‘미치광이’로만 이해된다. 


속이 울렁거릴 만큼 미친 짓을 하기도 했거니와 이 소설 안에는 그 미치광이가 말할 창구를 열어주지 않아서다. 다만 주인공의 시점에서 여자를 관찰하면서 하는 말들을 통해 실은 참 아프고 연약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을 뿐. 


<미저리>에 비해 <나를 사랑하는 미친 누나>는 조금 더 친절하게 미친 누나 희정의 목소리로 독자와 소통한다. 또한 희정은 <미저리>의 여자보다는 조금 덜 미쳐있다. 이 두가지 특성 덕분에 이 소설은 여러 독자를 좀 덜 불편하게 할 것이고, 동시에 마니아층과는 약감 멀어질 것이다. 대중성과 마니악한 취향 사이 어딘가에 영리하게 멈춰선 소설이라고 나는 조심스레 평한다. 


이 소설에 대한 평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 다만 이 소설이 두 인물, 세준과 희정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는 상당히 감탄했고 한번쯤 보기를 권한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고 다른 가치관을 가졌으며 저마다의 잣대로 합리화를 한다는 건 실제 세상에서도, 콘텐츠 속에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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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시대 새소설 17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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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은 시대가 아무리 좋아져도 지금 이 형태일 테니까요. 이 모습이 우산의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이 소설 <부끄러움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에 나온 이 대사에 나는 한동안 머물렀다. 


벨기에에서 우산공예가로 성공한 한 남자가 자신이 평생의 직업으로 ’우산 만드는 일‘을 선택한 이유를 말했을 뿐인데, 나는 고작 이 말에 어째서 가슴이 쿵, 내려 앉았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아, 이런 이야기, 이런 글'은 '소설'이라는 장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 소설 <부끄러움의 시대>가 다루는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 웹툰, 숏폼, 연극, 뮤지컬... 그 어떠한 매체로도 이만큼 표현하기 어렵다. 활자로 이뤄진 소설이라는 이름의 ’줄글‘에서 더 빛나는 감성이 담뿍 담겨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우리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다. 주인공 한해는 우산공예가이고, 아버지는 호텔 청소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누나는 성급한 결혼 끝에 이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백수다. 또한 지금은 이 생에 없는 어머니는 아버지와 호텔에서 만났으며 일평생 청소 일만 하다가 바로 그 호텔에서 죽었다. 


소설 안에서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생은 이어지며, 누나는 한해의 작업실에 출근하기 시작했고, 한해에게는 예기치 못한 인연이 찾아든다. 또한, 아버지의 생은 늘 비슷한 모양으로 이어져 간다. 


하나 다른 점이라면, 이 평범해보이는 일상에 크나큰 바이러스가 찾아왔다는 것. 그렇지만 그 바이러스가 일상을 모조리 집어 삼키지도 않는다. 주인공 한해와 가족들은 바이러스가 가득한 일상 속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너무도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인 ’한해‘라는 캐릭터에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건 왜 일까. 그 생의 진심이 느껴져서다. 


공산품 우산이 넘쳐나는 세상에 ’공예‘로 우산을 만들어내는 업을 택한 그가 살아가는 방식. 그가 가족을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을 독자에게 한껏 전해주는 건 단연 문장의 힘이다. 


이 소설의 문장에는 속독하는 게 습관이 된 나도 자꾸만 곱씹게 만들게 하는 데가 있었다. 


이를 테면 <스승님한테야 구름은 당연히 우산 쪽이었겠지만, 나는 나에게 있어 비를 내리게 해줄 구름이 공부인지 우산인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답답했다.>거나, 


<우산에 빠져든 삶은 후회스럽지 않았다. 그것의 가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라지지 않도록 전통을 잇는다는 데 있었다. 한 사람의 탄생은 다른 사람의 삶을 이어받기 위한 거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와 같은 문장들. 


단지 상황이나 사건, 인물의 특징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설명형 문장‘이 아니었다. 작가가 캐릭터에 가까이 다가가 있어야만, 동시에 몹시도 치열하게 ’생‘에 대해 생각해 왔을 때만 나올 수 있는 작가만의 성찰이 담긴 문장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단지 우산과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 생각했다. 


읽을수록 서사 아래 숨겨져 있는 서브 텍스트에는 작가가 소설을 대하는 태도, 작가가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여기게 됐다. 결말로 나아갈수록 작가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이었고, 마지막엔 절로 눈물이 났다. 


스포를 막기 위해 결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담지 않겠지만, 정말이지 앞서 내가 인용한 문장처럼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다음 시대가 온다. 부끄러움의 시대가 저물고 다시 다가올 시대에 대해서 결말은 답을 내리지 않고, ’열어둔 채‘ 끝난다. 


척하지 않고, 섣부른 감성을 담지 않고, 절제된 태도로, 그러나 진심을 가득 담은 소설을 읽는다는 건 복된 순간이다. 동시에 초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나는 왜 소설을 게속 읽고 쓰는지 한동안 답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깨달았다. 


위로, 문장을 곱씹어볼 수록 진하게 전해지는 삶에 대한 위로. 척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저 나의 삶은, 내가 바라본 인생은 이러하다는 걸 들려주는 문장들.. 힘들 때마다 나는 작가의 마음과 시선이 담뿍 담겨 있는 문장들에서 위로를 얻었다. 이 소설의 문장들은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위로였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깊이 있게 읽어낼 수 있었던 건 이 소설이 나름의 서사적 원칙을 잘 지키고 있어서다. 술술 잘 읽히면서 자연스럽게 한 가족의 이야기에 내가 몰입하게 한 서사의 기술에도 감탄했다. 허니 아직 보지 못했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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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귀신 부르는 심부름집의 일일 - 이소플라본 연작 기담집 구구단편서가 13
이소플라본 / 황금가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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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귀신 부르는 심부름집의 일일>은 실로 귀신과 관련된 일들을 해결해주는 ‘심부름사무소’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죽은 승려의 손, 기이한 일을 부르는 절밥, 무당 엄마가 만든 팔찌와 같이 의뢰자의 사연을 듣고 가진 통찰력이나 신통력을 발휘해 그 일들을 해결해주는 에피소드의 연속, 즉 옴니버스식 구조를 갖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재밌는 것은 단지 에피소드의 묶음 혹은 나열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1화부터 16화까지 이야기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주인공 승환과 사무소의 사장이자 5백년을 살아온 반신 혜호의 사연이 함께 보여진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이 귀신 들린 상황을 혜호와 승환이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했고, 그 다음엔 승환과 혜호의 속사정이 궁금해졌으며, 마지막에는 혜호가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두 사람의 관계는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3가지 질문을 좇아서 읽으면서 나는 몹시 만족했다. 오랜만에 잘 읽히고 흥미롭고, 각 질문마다 그럴 싸한 답을 해낸 소설을 만난 셈이어서다.

스포하지 않는 선에서 간단하게만 소개하자면, 혜호는 아픈 동생을 살리고 자신도 살기 위해 장승을 베어 팔아넘기는 죄를 저질렀고, ‘어째서 신은 사람을 구하지 않느냐’라고 울부짖다가 500년의 형벌을 받게 됐다.
제 손으로 베어버린 장승을 대신하여 500년간 지상을 떠돌며 사람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세월이 흘러 현대에 오면서 그는 심부름 사무소를 차리게 되었고, 승환 역시 사무소 일을 하다가 만나 수족처럼 부리게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연은 ‘이러한 현재‘에만 머무르진 않고, 머나먼 과거와도 연결이 되어 있다. 결말에 가까워올 수록 설마? 했던 게 역시! 가 되면서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 키워줬기 때문에 사연은 비밀로 가려두겠다.

승환과 혜호가 해결하는 개별 사건도 흥미진진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소설은 모름지기 ’겉이야기‘와 ’속이야기‘를 갖고 있어야 매력적이라고 여긴다. ’겉이야기‘가 심부름 사무소의 일일과 두 사람의 사연을 파헤치는 일이었다면, ’속이야기‘는 ’신과 인간에 대한 물음’이었다. ‘신들은 우리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라고.

나는 이따금 생각했다. ‘신은 존재하되 관여치 않는다’라고. 마치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국의 군주처럼. 존재하되 지켜보는, 자애롭다기보다는 단호하고 냉정한 그러면서 동시에 따스하기도 한 오묘한 존재라고 여겼기에 더 이 질문이 흥미롭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여러 기묘한 에피소드를 통하여, 혜호와 승환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주며 서서히 자신만의 ‘답’을 보여준다. 이 답이 정답이라 할 순 없다. 하지만 일리가 있었고, 몹시도 따스한 시선이었다. 결말을 덮고 난 뒤에 뭉클했던 건 이 속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작가가 얼마나 고민했을지, 고심하고 답을 갈구했을지 느껴져서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통통튀고 흥미롭지만 동시에 묵직한 울림까지 주는 소설은 흔치 않다. 이 소설은 간만에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 목마름’을 채워주었다. 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에 대해 작가가 준비한 답변은 비밀로 가려두겠다.
사실 내가 내린 답은 작가의 답과는 다르다. 언젠가 내가 찾은 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쓰게 될수도 있겠지. 이렇듯 깊이 있는 고민을 해볼 기회를 주어서 또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혜호가, 승환이 애달팠다. 독자가 주인공에게 감응하고 그를 응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만큼 캐릭터를 잘 구현해냈다는 의미기도 하다. 설명하기보다는 장면화하여 보여주었고, 옴니버스 구성의 장점을 잘 살린 소설, 궁금하면 한번쯤 읽어보도록.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알게 될 테다. 오늘 밤 새서 읽을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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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봄
이인애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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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장애를 가진 이를 대할 때는 더더욱 조심스럽다. 장애인, 장애우라는 표현을 갖고도 한동안 사회적인 부딪힘을 겪었을 만큼 조심스럽다. 선천적인 케이스도 많지만, 후천적인 케이스도 그에 못지 않게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여전히 알게 모르게 장애를 가진 이들을 불편해 하고, 꺼려 한다. 어쩌면 자주 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설 <연아의 봄>을 읽으며 나는 오랜만에 그들에 대해 생각했다.

자주 마주하고, 그들의 불편이 불행이 아니라 그저 ‘불편’일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학창시절에 우리반에는 지적 장애를 가진 친구가 하나 있었다. 대체로 특수 학급에 있었지만 이따금 수업시간에 함께하면서 소리를 질러대서 그 시간의 수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20대 중반에 나는 자폐를 앓는 청소년들의 현장학습 인솔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적 있는데 덩치가 꽤 큰 남자아이와 한 조가 돼서 좀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평상시엔 얌전한 편이었던 그 아이는 특히 덥거나 시끄러운 걸 견디지 못했는데, 더울 때는 그 아이 어머니가 챙겨준 얼음물병을 목 뒤에 댄다던가, 잠깐 쉬어가며 윗옷을 갈아 입는 걸 도와준다던가 하는 정도로 됐지만 시끄러운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현장학습을 갔던 곳이 체육시설이라 소음이 꽤 큰 편이었는데 그 아이는 자신이 소음이나 더위를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면 극도로 불안해하며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날에 나는 체육시설 안의 계단을 오르다 밀쳐져 아래로 떨어질 뻔했고,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는 옆자리에 앉았는데 나를 계속 때려서 그 아이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말려야 했다. 그 부드러운 경고는 대체로 통하지 않았다. 고작 몇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했다.

귀가하고 아이들을 돌려보내는 장소에서, 그 건물 앞에서 서성이던 수많은 어머니들 사이에서 그 아이 어머니를 봤을 때도 기억난다. 참 곱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보이는 분이었다. 나를 연신 살폈고, 혹시 아이가 불편을 끼치진 않았을까 염려하던 눈빛에서 알았다. 소음이나 더위가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울 때만 빼면 조용하던 아이의 태도가 어디서 왔는지... 하지만 교육은 어디까지나 교육일 뿐이고, 충동은 억제하기 어렵다.

대체로 지적 장애와 지체 장애를 뭉뚱그려 생각하지만 나는 언제나 지적 장애가 지체 장애보다 더 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왔다. 신체적인 이슈가 있더라도 말이 통하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지만, 지능이나 인지에 문제가 있는 경우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워서다. 이 소설 <연아의 봄>에 나오는 연아가 바로 지적 장애의 케이스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연아는 어릴 적에 버려졌고, 시설의 도움을 받아 교육을 이수하여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땄지만, 정규직으로 일하기란 쉽지 않다.


​낯설지만 우리 곁에 있는 존재, 잘 보이지 않는 발달장애인 연아가 독자에게 조금 더 쉽게 닿을 수 있었던 건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 경력 단절 여성인 선애여서다. 경제력이 없어 양육권은 아이 아빠에게 빼앗기고 근근이 살아가던 선애가 입사한 첫날, 본래 업무 외에 추가적으로 맡아야 하는 업무로 연아의 관리감독 일을 맡게 되면서다. 정은 많지만 고집이 세고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연아를 버거워하던 선애는 서서히 연아의 삶 속에 함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 안의 상처도 치유하게 된다. 서로 다른 듯 비슷한 두 여인이 삶의 한 순간을 나누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익숙하지만 이 소설이 더 좋았던 건 ‘시의성’이 느껴져서다. 산후우울증을 겪던 선애가 사이비에 빠진 것이 ‘이혼의 결정적 이유‘라는 데서 특히 그렇다.

과거에 우리는 사이비에 빠지거나,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하는 종류의 일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 개인을 탓했다. 나약하고 덜 떨어져서 그렇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수근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인 아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정신적인 질환에도 마찬가지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리고 나는 그것을 긍정적이라 본다.


이 소설 역시 그와 같은 따스한 시선을 지니고 있다. 선애를 탓하거나 섣불리 교과서적인 답안을 내밀지도 않는다. 그저 보여줄 따름이다. 출산우울증으로 인하여 사이비에 빠졌고,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 포교활동에 나섰다가 이혼 당하고 아이마저 빼앗긴 채 홀로서기를 시작한 경력단절 여성과 태어난 순간부터 타고난 장애 탓에 버림 받고 언제나 사회 밖으로 내몰릴 위기에 놓여 있는 장애 여성이 불편한 만남으로 시작됐다가 서로 얽히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지금 아프지 아니한가, 당신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는 그 두 사람의 ’얽힘‘이 찐득찐득하지가 않아서 좋았다. 이를 테면 연아가 시설에서 내보내지게 된 상황에서 선애는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평생 책임질 수 없다면, 섣부른 기대와 실망은 더 아프게만 할 따름이어서. 선애는 한 걸음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연아를 바라볼 따름이다. 연아가 어쩌면 일평생 살게 될 시골 마을에 주기적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그녀가 일하는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나는 그 서늘한 위로, 느슨한 연대가 좋았다. 섣부르고 가벼운 동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일시적인 말과 행동은 가볍고, 상처만 남길 따름이다.

장애에 대한 말을 쓰는 건 언제나 어렵다. 조심스럽고 주저하게 된다. 그 무게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중증장애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다는 소설 속 이야기에 나는 공감했다. 특히나 일자리의 경우에 그러하다. 연아가 회사에서 잘린 뒤에 선애가 연아의 일자리를 찾아보는 일화가 나온 페이지에 나는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지적 장애와 지체 장애의 경쟁이라면 당연히 사업장에선 지체 장애를, 중증보단 경증을 선호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장애에 대한 문제는 대체로 ’그 가족‘이 져야 할 짐 혹은 무게로 남아 있는 게 실정이다. 이게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바로 그래서 이 소설이 더 많이 읽히길 바란다. 판단하거나 탓하거나 섣불리 동정하지 말고 그저 질문을 던져보자. 이 춥고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나면 연아의 봄은 찾아올까, 그때의 봄날은 어떠할까. 연아는, 선애는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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