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만화경
김유정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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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SF와 판타지를 즐겨보고 있다. 그런데 SF와 판타지를 넘나드는 중단편 10편이 수록되어 있다니! 안 보면 이거, 손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서평단 신청을 했고 감사하게도 뽑혔다. 


주말에 단숨에 읽은 이 소설집에서 

단연 재미있었던 건 역시 표제작 <용의 만화경>이었다. 


 모든 소설을 다 소개하는 건 너무 '스포' 같으니까 수록된 10편 중에서 재미 있었던 소설 2편과 아쉬웠지만 발상만은 흥미로웠던 소설 2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 흥미로웠던 소설 2편 


[용의 만화경] 

대학원실 구은진의 연구실에 찾아온 수상한 사내! 사자탈을 비롯한 탈이란 탈은 다 쓰고 다니는 이 남자, 김용이다. 이름만 용이 아니라 '진짜' 용이다. 백여년 전 초대총장이 예외적으로 받아준 탓에,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덕에 여전히 학적부에 올라와 있는 용이 수업에 나오게 된 거다. 플로피 디스크를 당당하게 내미는 용씨의 뒤치다꺼리를 하게 된 은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 마지막까지 통통 튀고 귀엽다. 


특히 탈을 쓰고 있는데도 적나라하게 감정이 드러나는 김용이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김용과 정이 들어버리는 은진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서 더 집중하기 좋았다. 스포가 될까 봐 밝히진 않겠지만 용이 계속 나타나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와 그 연구의 이유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나오는데, 마지막 장을 볼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다만 아쉬웠던 건 그들의 '프로젝트'가 조금 더 에피소드적으로 디테일하게 보여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지점이다. 단발적인 사건과 설명 위주의 문장으로 이야기되다 보니까 과학과 그리 친하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조금 어렵게도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조금 아쉬운 부분이며, 전반적으로 이해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만세, 엘리자베스] 

어느 날 아침, 직장인 정주은은 '로봇청소기' 엘리자베스로 깨어난다. 분명 '정주은'이라는 인간의 모습은 보이는데 저 육체 안에는 로봇 엘리자베스의 영혼이, 이 답답한 기계 신체 안에는 인간 정주은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게 '끔찍하게도' 사실이라니! 초반부 정주은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너무도 잘 전달돼서 만약 로봇청소기로 깨어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 절로 몰입됐다.


혹여나 회사에서 실수라도 할까 엘리자베스를 훈련시키던 주은은 무료한 기계의 일상에 자꾸만 적응해 가고, 엘리자베스 역시 인간으로 살아가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대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은 성공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은 아껴두겠다. 


인간의 탈을 쓴 로봇, 로봇 안에 갇힌 인간이라는 다소 황당한 두 캐릭터가 동거동락하는 이야기로 웃음을 주더니, 인간의 몸을 빼앗긴 영혼이 로봇 안에서 절규하는 것을 설득력+흥미롭게 잘 그려낸 소설이었다. 로봇청소기 지금까지 안 쓰면서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안 쓰고 싶어졌다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결말이 열린 결말처럼 보여서 해석에 따라 2가지로 보일 거 같다는 게 좋으면서도 아쉬웠다. (개인 취향으로는 조금 더 닫혔으면 했다) 


- 아쉬웠던 소설 2편 


[장미흔] 

계약한 인간에게서 생기를 빨아들여 생명을 이어가는 걸로 '흡혈귀'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 소설. 첫 단편이어서 더 집중하면서 읽었는데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감염병의 여파로 온 세상이 뒤흔들면서 흡혈귀의 삶마저 바꿨을 때, 흡혈귀 란이 떠나가는 대신 남아 있는 걸 택했다는 건 알겠는데 그 남는 과정이 머리로 잘 이해되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초중반까지 집중해서 읽다가 후반에 가서 "무슨 이야기지?" 맹해졌던 소설이라...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길게 쓰여졌으면 좋았을 거 같다. 


[나와 밍들의 세계] 

아이들에게 괴롭힘 받고 죽어가던 고양이인 '내'가 인간의 몸으로 깨어났다. 죽어가는 생명체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연결해주는 기계로 한 여자와 연결되어 있는 것, 그 여자를 나는 '밍'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나와 밍의 관계나 도입부가 마음에 들었다. 소외된 자들의 연대 같기도 하고, 그 '색다른 기계'를 이용해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그려질까 기대돼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캐릭터도 잘 보여지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서도 기계가 어떤 모양인지,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잘 그려지지 않아서 망연하기만 했다. 조금 더 캐릭터와 기계가 보여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렇게 4편을 뽑고 나니 1편이 눈에 밟힌다. 바로 [청백색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 '나'만 목격해 온 청백색 점이 흥미로웠다. 청백색 점으로 집어 넣은 것들은 사라진다는 것도, 결국에는 스스로 그 점을 받아들이는 결말까지 탄탄하다 생각했다. 다만 [용의 만화경]이나 [만세, 엘리자베스]의 주인공처럼 주도적으로 문제에 맞서는 게 아니라 소극적인 태도에 그쳐서(상황상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이용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발상이나 서사는 매력적이었다. 


단편집을 다 읽고 나니 흥미로운 발상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설득력 있고 재밌는 서사로 끌고 나가서 보여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한번 더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입장이어서 읽으며 더 배운 게 많았다. 


표제작 <용의 만화경>과 같은 동양풍 SF, 좀 물건인데?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읽어봤으면 한다. 이런 세계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그 세계에 대해 더 탐구하고 싶어지니까. 나 역시 욕심이란 게 생겼다. 나도 좀 쓰고 싶다는, 그 이전에 많은 공부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ㅎㅎ 여름날에 풍경 좋은 카페에서 시원하게 읽으니 더 청량하게 느껴졌던 소설, 김유정 작가의 소설을 앞으로도 찾아 읽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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