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쓰기, 좋은 글에서 더 나은 글로 - 논문에서 대중서까지 공부하는 작가를 위한 글쓰기, 편집, 출판 가이드
윌리엄 제르마노 지음, 김미정 옮김 / 지금이책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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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작업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동감하겠지만, 글을 시작하는 순간은 오히려 쉽다. 새하얀 백지는 막막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도전 의식'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하나의 원고가 대략적으로 완성된 이후는 더 어렵다. 생각보다는 별로인 글을 앞에 두고 고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거, 고쳐? 말아? 선택은 저마다의 '직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고쳐서 좋아질 글 마저 퇴고의 두려움 앞에서 '고치길' 망설이는 분들에게 이 책이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신림역 인근의 카페에서 읽기 시작해, 영등포의 집과 근처의 카페 그리고 잠실나루 역 인근의 카페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고쳐쓰기, 좋은 글에서 더 나은 글로>라는 제목처럼 '고쳐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인지 한 문단, 문단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꼭꼭 씹어서 먹는 듯한 마음으로 이 책을 평소의 속도보다 조금 더 천천히 읽었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글을 읽을 때도 속독하는 편이며, 마음에 들면 한번 더 읽는 형태로 독서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생각나는 장면과 이미지, 캐릭터가 있다면 대략적으로 전체 구성을 짜고 바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구조를 짜는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게 길어지면 그 아이디어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 어째서 나는 좀 더 시간을 들여서 구성이나 캐릭터를 '디자인'하지 못하는가 고민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답을 찾았다. 


이 책에 따르면 <이어 맞추는 스타일>과 <다듬는 스타일>이 있다. <이어 맞추는 스타일>은 한 번에 한 문단 혹은 한 단락씩 작업하면서 다음 조각들로 넘어가는 저자이며, 개별적인 '완성'을 취하기보다 전반적인 완성을 우선시한다. 단계별로 자신의 목표를 빨리 알아차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 <다듬는 스타일>의 저자는 문장, 문단, 페이지를 쓴 뒤 곧장 검토하며 여러 번 글을 살피며 끝없이 개선한다. 


전자는 글을 쓰는 속도는 빠르나 막판에 보다 꼼꼼하게 고쳐야 하고, 후자는 속도는 느리지만 완성도 있는 글을 만드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이어 맞추는 스타일>이라 생각하고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개별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니까 '이래도 될까' 했는데, 어차피 글은 초고에서 크게 변화하기 마련이고 버려진다 생각하는 무수한 조각들도 결국 '어떠한 순간'엔 쓰임새 있게 쓰여지니까.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은 '뒷심'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책에 따르면 <고쳐쓰기란 오류를 고치는 것보다는 글의 의도를 더 분명히 벼리고 나의 글을 바닥부터 찬찬히 생각해봄으로써 내가 하는 작업, 내가 가려는 방향, 독자를 특정 방향으로 이끌려는 이유를 명확히 하는 일에 가깝다.> 단순히 몇몇 오류를 정정하는 것도, 완전한 재창조도 아닌 내가 처음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 보며 방향성을 '바로 잡아가는' 일이다. 


글의 형태, 어떤 의도였는지 생각하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확한' 어휘와 문장, 이야기를 활용해서 고쳐가는 이유, 모든 글은 결국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야기 안에서 생각할 만한 최소 한 가지의 '알맹이'가 있기를 바라고, 흥미롭기를 기대한다. 저자는 독자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소통하는 것이며, 저자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이야깃거리 중에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읽히기 좋은 방식으로 '구조화'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글을 통하여 아낌없이 '화제, 이야깃거리'를 던지고 독자가 기꺼이 본인이 쓴 책이라는 바다 안에서 항해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내게 남은 한 가지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끝없이 점검하며 '바른 방향'을 잡아가는 여정이 고쳐쓰기라는 깨달음을 다시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퇴고, 고쳐쓰기가 참 부담스러웠는데 1번 고칠 때 '완벽해야 한다'라는 압박이 있어서다. 


초고 단계에서 완벽하다면 퇴고를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완벽을 기하다가 중도 포기해버린 원고들이 무수하다. 그럴 바엔 걍 쓰고 보자는 생각을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책은 이렇게 헤매는 저자들을(저자의 꿈을 가진 이 모두) 다독이며 고쳐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실질적인 방향에 대한 가이드 역시 세심하게 전해준다. 


소설이나 창작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글쓰기에 '적용 가능한 고쳐쓰기'라는 점에서도 유용했다. 자기소개서,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글, 소소한 SNS 등 우리의 일상에는 우리의 글이 필요한 순간들이 참 많다. 내일부터 바로 적용해 볼 것은 <초안을 소리 내어 크게 읽어보겠다>라는 것이다. 몇 주째 고민하며 쓰고 있는 글이 있는데 완성 목표는 30일이다. 


완벽한 원고가 아니어도(당연히 아닐 것이다, 초고니까) 괜찮다. 마음을 탁 내려놓고 부끄러움도 벗어버리고 소리내서 읽으며 체크하고, 내용을 앞뒤로 이동해보거나 문장을 삭제하는 방향도 생각해볼 생각이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길게 늘어지는 문단이나 챕터를 줄이기 전에 제 몫을 하는 부분부터 표시한다'라는 이 책의 조언이었다. 


살릴 엑기스만 먼저 표시해보고 삭제할 구간을 싹 지우고 읽어볼 것이다. 그렇지만 완전한 삭제는 아닐 것이다. 2고, 3고쯤 돼서는 다시 쓰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1번, 2번 만에 내 글이 '완벽해질 거란' 기이한 강박은 버릴 작정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고치되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공모전이 되었든 SNS가 되었든 연재 가능한 플랫폼이 되었든 일단 한번 꺼내볼 생각이다. 노출하면서, 써내면서 성장하는 법이니까. 


이 책의 저자는 참 많은, 좋은 조언들을 남겼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거다. 


<결국 유일하게 중요한 버전은 여러분이 세상에 선보이는 마지막 버전, 글로써 만들어낸 마지막 형태, 여러분의 텍스트가 시도하는 마지막 비행이다. 그 글에 담긴 여러 층위와 내력, 그리고 최종본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지나온 모든 고쳐쓰기의 경로들이 여러분이 수행해온 모든 작업의 면면을 이룬다. 이것이 저자로서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독자는 최종적으로 여러분이 선보이는 글만을 보게 된다. 첫 페이지부터 시작해 뒤따르는 모든 페이지까지 가능한 한 최고의 글을 만들어보자. 그러고는 놓아버리자.> 


쓰레기와 같은 초고는 내 마음 안에 영원히 살아 숨쉬나, 그 모양 대로 독자에게 보여줄 순 없다. 가능한 고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미련 없이 놓아버리자. 그 다음의 일은 '독자'의 일이다. 요즈음 참 많은 고민이 있고 콱 막힌 기분이었는데 조금은 탄산을 마신 듯 속이 뚫렸다. 하지만 완벽하게 '시원'해지진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최선을 다했고, 고쳐쓰기를 수행하며 '깨달아가는 것'은 이제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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