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맨을 찾아서
리처드 치즈마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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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부기맨을 찾아서>를 읽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 문장들 때문이었다. 


- 나는 거기 있었다. 나는 목격자였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 괴물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됐다.


괴물을 지켜보다 스스로 괴물의 이야기에 들어가게 된 스토리는 무얼까. 궁금해서 첫 장을 넘겼고, 단숨에 몰두하여 한 자리에서 다 읽고 난 뒤에 나는 잠시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을 떠올렸다. 담고 있는 내용도, 주제도, 결론도 다르지만 하나는 똑같아서다. <서칭 포 슈가맨>에서 '슈가맨'으로 통하는 가수 로드리게스를 찾는 이들과 <부기맨의 찾아서> 속 주인공 리처드 치즈마의 심리가 참 닮았다. 너무도 찾고 싶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서 무얼하는지 라는 추적의 '심리' 말이다. 


또 하나 더, 추적자가 된 그들은 그들이 쫓던 이들과 '삶'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의 추적자들은 슈가맨의 '삶' 일부로 들어가서 그의 삶 전체와 마주했고, 소설 <부기맨을 찾아서>의 추적자 리처드 치즈마는 연쇄 살인마, 부기맨 그 괴물의 이야기가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 있음을 깨달았으니까. 이는 두 작품을 지켜보는 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칭 포 슈가맨>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존재'를 몰랐던 슈가맨을 영화 중반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나도 미치게 찾았으니까. 영화 중반부가 지나고 나서야 그가 '존재'를 드러냈을 때 나는 흡사 내 아이돌을 만난 것처럼 흥분했다. 소설 <부기맨을 찾아서>에서도 나는 그러한 종류의 연쇄 살인마를 만나본 적 없으면서, 심지어 그 마을과 비슷한 마을에 살아본 일도 없으면서 그 마을 주민들과 함께 두려워했고, 부기맨에 분노했으며, 부기맨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에는 약간의 충격에 빠졌다. 


추적하는 이야기는 이렇게나 몰입감이 높다. 주인공이 왜 그 자를 쫓는가, 그 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나면 주인공에게 이입하기 편해지니까. 슈가맨 로드리게즈처럼 '모두의 아이돌'인 케이스와 연쇄살인마인 부기맨처럼 '모두의 적'인 케이스는 겉보기엔 달라보인다. 사랑과 열망 혹은 증오와 두려움으로 '감정'의 키워드가 다르니까. 동시에 흡사한 감정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원초적인, 본능에 가까운 감각'을 깨운다는 데서는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몰두한 키워드인 '감정적 몰입'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 다소 돌아 왔다.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이 소설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스릴러' 혹은 '범죄물' 소설과는 다른 궤도에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88년 미국 메릴랜드 에지우드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독립출판의 길을 걷기로 한 리처드 치즈마는 결혼을 앞두고 잠시 고향의 본가에 머물기로 한다. 그 시점에 공교롭게도 10대 소녀가 자택에서 납치 돼 살해되는 큰 사건이 벌어진다. 이미 1-2년 전부터 주택에 무단 침입해 여성들을 추행하던 일명 '팬텀 폰들러'가 마을에 공포심을 자아내고 있었기에 모두 두려움에 떨던 한편, 또 한번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팬텀 폰들러가 아닌, 독자적인 방식으로 '연쇄 살인'을 이어가는 범인에게는 '부기맨'이라는 별명이 생긴다. 부기맨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미국의 가정에서는 친숙한 존재로 침대나 벽장 속에 숨어 있는 귀신으로 자주 일컬어진다. 어두운 곳에 있다가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데서 우리나라의 망태 할아버지와 흡사한 듯도 하다. 정체가 명확치 않고, 얼굴마저 제대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부기맨과 정체를 알지 못하고 수사망을 피해가는 소설 속 연쇄 살인마의 모습은 아주 닮아 있고, 동시에 너무도 두려운 존재다. 


주인공 리처드 치즈마는 범죄 미스터리와 공포물의 열렬한 편이자 몇 편의 단편을 발표한 작가이며 동시에, 잡지를 출간을 준비하는 독립출판업자로 조용하던 마을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부기맨을 추적한다. 저자의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이 동일하고, 저자의 고향마을을 배경으로 하며 동시에 주인공의 약혼자이자 아내 이름 역시 저자의 아내와 동일하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는 중반부에는 이것이 소설인지 르포 형태의 기록물인지 헷갈리기도 하다. 실제로 이 소설 내에는 꽤나 많은 사건과 관련한 자료 사진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해 할 만한 내용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는 만큼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는 더더욱 내용에 몰입한다. 앞서 기존의 스릴러 소설과 느낌이 다르다 했는데 빌런인 부기맨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 리처드 치즈마와 그 주변 인물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다. 사건은 발생하고 있고, 그로 인한 추적과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이어지는 건 동일한데 일상과 마을에 포커스가 계속 맞춰져 있다. 정말... 소설이 아니라 일기 혹은 르포 기사를 보는 것 같은 작법이다. 


조금 더 리드미컬하고 액티브한 사건 전개와 추적이 있길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면 처음엔 조금 실망할 수 있지만, 여러 사진 자료들을 보면서 책을 읽는 마인드 자체가 달라진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나 유튜브를 통해 가끔 보고는 하던 범죄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으로 흥미진진하게 봤다. 소설에서 다큐멘터리를 볼 때의 기분을 느끼다니 정말 새로웠다. 범죄의 장으로 소비되고 있는 이 한 마을에 대해서, 그 마을의 피해자와 유가족과 목격자 그리고 가해자의 가족들에 대해 생각하며 빠르게 읽다 보면 엔딩부에 가까워 온다. 


마지막 시점에 우리는 가해자가 누군지 드디어 알게 된다. 다소 충격적이나, 미스터리/추리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예상 가능한 범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KEY는 가해자가 밝혀지고 난 이후에 오는 반전이다. 스포를 막기 위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가해자와 주인공 사이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난 뒤에 무언가 찜찜한 상태로 이야기가 막 내리나 했더니 모든 생각을 뒤짚을 만큼 흥미로운 에필로그였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에 나는 간만에 웃었다. 아, 추리/추적/범죄 소설을 이런 형태로 써도 되겠구나... 하면서 나는 첫장을 잠시 다시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모두 생각하게 될 거다. 이 소설을 '소설'로 완성하는 건 여러분과 같은 독자들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게 될 테니. 중간에 다소 늘어지는 부분도 있고 불필요한 장면도 많다 생각했으나 소설이 취한 구성이 그 단점을 어느 정도 덮어줬다 생각한다. 마지막 팁을 하나 주자면, 마치 <페이크 다큐>와 같은 소설이었다. 


- 나는 거기 있었다. 나는 목격자였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 괴물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됐다.


이 이야기는 독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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