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귀신 부르는 심부름집의 일일 - 이소플라본 연작 기담집
이소플라본 / 황금가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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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귀신 부르는 심부름집의 일일>은 실로 귀신과 관련된 일들을 해결해주는 ‘심부름사무소’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죽은 승려의 손, 기이한 일을 부르는 절밥, 무당 엄마가 만든 팔찌와 같이 의뢰자의 사연을 듣고 가진 통찰력이나 신통력을 발휘해 그 일들을 해결해주는 에피소드의 연속, 즉 옴니버스식 구조를 갖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재밌는 것은 단지 에피소드의 묶음 혹은 나열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1화부터 16화까지 이야기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주인공 승환과 사무소의 사장이자 5백년을 살아온 반신 혜호의 사연이 함께 보여진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이 귀신 들린 상황을 혜호와 승환이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했고, 그 다음엔 승환과 혜호의 속사정이 궁금해졌으며, 마지막에는 혜호가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두 사람의 관계는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3가지 질문을 좇아서 읽으면서 나는 몹시 만족했다. 오랜만에 잘 읽히고 흥미롭고, 각 질문마다 그럴 싸한 답을 해낸 소설을 만난 셈이어서다.

스포하지 않는 선에서 간단하게만 소개하자면, 혜호는 아픈 동생을 살리고 자신도 살기 위해 장승을 베어 팔아넘기는 죄를 저질렀고, ‘어째서 신은 사람을 구하지 않느냐’라고 울부짖다가 500년의 형벌을 받게 됐다.
제 손으로 베어버린 장승을 대신하여 500년간 지상을 떠돌며 사람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세월이 흘러 현대에 오면서 그는 심부름 사무소를 찾았고, 승환 역시 사무소 일을 하다가 만나 수족처럼 부리게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연은 ‘이러한 현재‘에만 머무르진 않고, 머나먼 과거와도 연결이 되어 있다. 결말에 가까워올 수록 설마? 했던 게 역시! 가 되면서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 키워줬기 때문에 사연은 비밀로 가려두겠다.

승환과 혜호가 해결하는 개별 사건도 흥미진진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소설은 모름지기 ’겉이야기‘와 ’속이야기‘를 갖고 있어야 매력적이라고 여긴다. ’겉이야기‘가 심부름 사무소의 일일과 두 사람의 사연을 파헤치는 일이었다면, ’속이야기‘는 ’신과 인간에 대한 물음’이었다. ‘신들은 우리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라고.

나는 이따금 생각했다. ‘신은 존재하되 관여치 않는다’라고. 마치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국의 군주처럼. 존재하되 바라보는, 자애롭다기보다는 단호하고 냉졍한 그러면서 동시에 따스하기도 한 오묘한 존재라고 여겼기에 더 이 질문이 흥미롭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여러 기묘한 에피소드를 통하여, 혜호와 승환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주며 서서히 자신만의 ‘답’을 보여준다. 이 답이 정답이라 할 순 없다. 하지만 일리가 있었고, 몹시도 따스한 시선이었다. 결말을 덮고 난 뒤에 뭉클했던 건 이 속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작가가 얼마나 고민했을지, 고심하고 답을 갈구했을지 느껴져서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통통튀고 흥미롭지만 동시에 묵직한 울림까지 주는 소설은 흔치 않다. 이 소설은 간만에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 목마름’을 채워주었다. 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에 대해 작가가 준비한 답변은 비밀로 가려두겠다.
사실 내가 내린 답은 작가의 답과는 다르다. 언젠가 내가 찾은 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쓰게 될수도 있겠지. 이렇듯 깊이 있는 고민을 해볼 기회를 주어서 또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혜호가, 승환이 애달팠다. 독자가 주인공에게 감응하고 그를 응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만큼 캐릭터를 잘 구현해냈다는 의미기도 하다. 설명하기보다는 장면화하여 보여주었고, 옴니버스 구성의 장점을 잘 살린 소설, 궁금하면 한번쯤 읽어보도록.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알게 될 테다. 오늘 밤 새서 읽을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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