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미친 누나 네오픽션 ON시리즈 30
배기정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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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강렬한 소설은 보통 ‘모’ 아니면 ‘도’다. 정말 재밌거나, 제목이 전부거나. 이 소설 <나를 사랑하는 미친 누나>는 색달랐다. 완전히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잘 만든 소설이랄까, ‘모’와 ‘도’ 사이에 안정적으로 자리한 기묘한 소설이었다. 


소설은 소위 망돌(망한 아이돌)이었다가 트로트 가수로 재데뷔, 직캠으로 떠오른 스타 지세준과 세준을 스타로 만든 홈마 연희정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렇다. 제목에서 ‘나’는 지세준이고, ‘미친 누나’는 연희정인 것이다. 이 경우 세준의 시점을 중심으로 가져가게 된다면 희정은 정말로 ‘스토커’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소설은 달랐다. 


세준과 희정의 시점을 번갈아 등장시켰고, 세준의 어투는 ‘~다’로 끝난다면 희정의 어투는 ‘~습니다’체로 끝나게 하여 차이를 두었다. 


말하자면 세준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는 느낌이었고, 희정은 머나먼 어딘가에서 독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담담하게 토로하는 희정의 어투 때문일까, 그 여자가 ‘정말로 미친 짓’을 하는데도 읽는 나는 ‘미치게’ 느껴지지 않았다. 외려 연민하게 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무명 생활 끝에 재데뷔한 세준은 전 여친의 임신 때문에 나락으로 갈 뻔하고, 그때 희정이 세준을 스타덤에 올렸던 것처럼 나락에서 끌어내준다. 하지만 세준과 헤어진지 한참 된 데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전 여친을 둘러싼 2차 사건이 터지면서 세준은 꼼짝없이 누명을 뒤집어쓸 위기에 처한다. 이 시점에서 희정에게도 오래 묵은 사건이 터지고 연결될 것 같지 않았던 두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며 절정으로 향한다. 


얼핏 봐도 사건이 와다다 터지는 느낌인데, 실로 절정에 가까워질수록 세준을 구석으로 몰아가는 서사가 흥미로웠다. 이와 관련하야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이 사건들이 절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고, 또한 희정의 정체나 미스터리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다. 이 글을 읽고 한번쯤 소설을 보길 바라는 내 마음이라고 해두자. 


소설을 다 읽고 친구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딱 이렇게 말했다. 


- 사건이나 반전은 예상할 만한 것인데 인물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좋았다고. 


아마 그건 인물의 시점을 오가면서 사건을 구체화시켜가는 작가의 능력 덕이었을 거다. 희정은 생각보다 미쳤으나 완전히 미친 사이코는 아니었고, 예상보다 외롭고 아팠던 인물이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오해가 거듭되는 장면도 꽤 있었다. 


여자의 시점이 동반되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 여자의 미침엔 언제나 이유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이 여자의 ‘논리’ 안에서만 허용되는 이유가 아니라 납득 가능한 형태라 약간은 아쉬웠다. 한 발 덜 간 느낌이랄까. 어쩌면 그래서 부드럽게 결말을 맺음할 수 있었겠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내 최애가 되긴 어려워졌다. 


소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잠시 스티븐 킹의 <미저리>에 대해 생각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그의 소설 속 인물을 사랑했던 한 스토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꽤 오랫동안 회자될 만큼 사랑받았으나 언제나 이 소설 속 스토커는 ‘미치광이’로만 이해된다. 


속이 울렁거릴 만큼 미친 짓을 하기도 했거니와 이 소설 안에는 그 미치광이가 말할 창구를 열어주지 않아서다. 다만 주인공의 시점에서 여자를 관찰하면서 하는 말들을 통해 실은 참 아프고 연약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을 뿐. 


<미저리>에 비해 <나를 사랑하는 미친 누나>는 조금 더 친절하게 미친 누나 희정의 목소리로 독자와 소통한다. 또한 희정은 <미저리>의 여자보다는 조금 덜 미쳐있다. 이 두가지 특성 덕분에 이 소설은 여러 독자를 좀 덜 불편하게 할 것이고, 동시에 마니아층과는 약감 멀어질 것이다. 대중성과 마니악한 취향 사이 어딘가에 영리하게 멈춰선 소설이라고 나는 조심스레 평한다. 


이 소설에 대한 평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 다만 이 소설이 두 인물, 세준과 희정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는 상당히 감탄했고 한번쯤 보기를 권한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고 다른 가치관을 가졌으며 저마다의 잣대로 합리화를 한다는 건 실제 세상에서도, 콘텐츠 속에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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