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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ㅣ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박지원와 정약용의 이름을 함께 들으면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이용후생이나 실학 뭐 그런 것 아닐까?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간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않았다! 서로간의 언급도 없다! 자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 법! 연암은 사기를 지은 사마천의 심정이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을 때와 같다고 한다. 반면 다산은 사기를 제대로 읽으려면 연표를 놓고 하나씩 고증해야 한단다. 정조의 문체반정! 연암은 패관잡서의 배후조정자로 낙인찍힌 반면, 다산은 패관잡서를 천지간에 비할 데 없는 재앙이라고 규정한다.
연암의 열하일기는 유머와 패러독스로 넘쳐난다. 연암은 표현형식의 전복(소설과 소품, 고문과 변려문등이 자유자재로 섞이는 한편, 천고의 흥망성쇠를 다룬 거대담론과 시정의 우스개 소리, 잡다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이 공존)을 통해 그러한 웃음을 담아낸다. 반면 다산은 의미의 혁명적 재구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의 글에는 비장미가 흐른다. 의미는 명확해야 한다.
내용면에서도 연암은 天氣論을 믿으며 인간과 자연의 연속성을 강조하여 인성과 물성이 같다는 입장에 서면서 탈주체화의 길을 가는 반면 다산은 天理의 초월성을 上帝라는 새로운 초월성으로 대체하며 天에 인격성을 부여하는 한편 인성과 물성은 다르며 인간이 중심이라는 입장에서 주체의 자명성과 확고부동함을 강조하는 길을 간다.
연암은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으나 그로부터 벗어나 유목민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는 과거시험을 피해다니면서 젊음을 보낸다. 반면 다산은 남인이라는 주변부에서 중심부를 향해 진입한 정착민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는 유배지에서도 끊임없이 군주에게 돌아갈 꿈을 꾼다. 지향처의 차이가 이 두 사람을 이토록 다른 사람으로 만든 것일까? 이제 이 두 사람이 서로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잠시 미스테리 하나! 연암은 묘비명의 대가로 유명하다. 그런데 정작 연암의 묘비명은 없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열하일기는 알다시피 사신일행을 따라 청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와 쓴 여행의 기록이다. 그렇지만 고미숙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란다. 유목이이란다. 친숙함과 낯설음의 끝없는 변주가 이루어지는, 그리하여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그런 유목 말이다. 고미숙은 유목인 연암을 '호모루덴스'라고 부르고 싶어한다. 놀이하는 인간 말이다. 실제로 열하일기는 유머와 패러독스가 범람한다. 연암은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 연암의 친구들은? 내가 쓰고 있던 실학이라는 동일성의 눈, 합리성의 안경을 벗고 이 땅에서 벌어졌던 지적향연에 동참하고 싶다.
고미숙은 스스로를 고전평론가라고 부르고 싶어한다. 고전을 읽고 쉽게 전달하는 사람 말이다. 나는 이제 열하일기를 읽고 싶어진다. 그리고 고미숙이 제시한 길을 따라 걸어가보고 싶다. 내 안에서 또 다른 변주가 이루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