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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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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샘 해리스는 자유의지는 없다고 선언한다. 자유의지는 단연코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의지는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고와 의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배경 원인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태풍을 통제하지 않고 있으며, 그 태풍 속에서 행방불명되지도 않는다. 우리 자신이 바로 그 태풍이다.”
우리가 어떤 범죄자에게 죄값을 치르게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범죄가 그 사람의 고의로 발생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가? 저자는 말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나쁜 유전자, 나쁜 부모, 나쁜 환경, 나쁜 생각 등이 일정하게 결합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런 요인들 중에서 정확히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세상의 그 어떤 이도 자신이 물려받은 유전자나 양육된 방식에 책임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요인들이 당사자의 성격을 결정한다고 믿을 만한 온갖 이유가 있다. 우리의 사법제도는 누군든지 아주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만 한다. 실제로 도덕성 자체에 운이 얼마나 크게 개입하는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도덕적인 것 같다.”
저자의 인용된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는 심하게 가슴이 떨려왔다. 도덕성 자체가 운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비도덕적이라니! 도덕성이 없어서 보는 사람마다 욕질을 해대는 사람은 자유의지에 의해 그런 것이 아니라 운이 없어서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보고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한다. 누가 비도덕적인가? 이런! 내가 비도덕이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떠올랐다. 어릴 적 사촌오빠로부터 강간을 당한 나쁜 기억이 있는, 그래서 많이 삐딱한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이 교도소 안의 불우한 사형수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소설 속 여주인공은 살아가다보니 사형수가 된 남자가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려버린 것일까?
언젠가 학생들 앞에서 김연아나 박지성이 많은 돈을 번 것은 자신의 노력도 일부 있겠지만 많은 부분 운이기 때문에 그들의 소득이 일반 노동자의 소득보다 백 배, 천 배가 되는 것은 부정의한 일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당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때고, 그 책에 그러한 내용이 있어 강의에 적용해본 것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못했다. 박지성이 훌륭하고, 훌륭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받아도 된다는 것일까? 그런 생각 속에는 박지성이나 김연아가 남들 놀 때 쉬고 싶은 욕망을 참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이 되고 안 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지금 내가 별 볼일 없는 것은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박지성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저렇게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도 노비 집안에서.
자유의지가 없다고 보게 되면 어떤 잘못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많은 생물학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자유 의지의 주술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정확히 유용함의 정도에 따라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변할 수 있는 것은 변하도록 요구하고 변화가 불가능한 것은 다른 길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