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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평점 :
[에쿠니 가오리] 씨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을 읽고서 느낀 것은
한마디로 난감함 이었습니다.
워낙에 글 솜씨가 없어서 "글솜씨 향상을 위해 많이 쓰자." 라는 결심하에 그 첫단추로
"책을 읽은 후엔 꼭 독서 감상문을 쓰자." 라고 결심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암초를 만난 듯 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 요즘 수입된 다른 일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쉽게쉽게 읽혀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특히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의 특징인 사람들 간의 이상한 관계성에도
불구하고, 심각하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특성은 [반짝반짝 빛나는] 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문제는 막상 감상문을 쓰자니 쓸 말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어쨋든 감상문의 필수요소 내용요약부터 해보겠습니다.
쇼코와 무츠키는 신혼부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특이한 신혼부부입니다. 남편인 무츠키는 남자애인이 있고, 쇼코는
무츠키가 해주는 남자애인인 곤의 이야기를 즐겨듣습니다.
그리고, 무생물의 등장인물인 보라아저씨(그림입니다.)와 곤의 나무(무츠키의 애인인
곤이 결혼선물로 준 식물)가 등장합니다.
쇼코의 취미는 보라 아저씨에게 노래 불러주기, 곤의 나무에 홍차주기, 무츠키의
취미는 집안 정리하기.
비록 무츠키가 동성연애자 이지만 쇼코는 무츠키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늘 이 모양일까. 무츠키는 자상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그건 때로 아주 고통스럽다.]
[참을 수 없어 나는 말을 가로막았다. 이 사람은 어째서 이렇게 선량한 것일까. 마음속으로,
이제 그만해, 라고 부탁했지만, 무츠키한테는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위의 묘사에서 제가 느낀 것은 무츠키에게 더 이상의 마음을 주지 않으려 하는 쇼코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무츠키에게 집착하게 되어, 파국을 맞을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묘사에서 무츠키의 결벽증적인 성격과 무츠키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쇼코의 마음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아마도 제목인 [반짝반짝 빛나는]은 이 무츠키의 결벽증적인 성격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요일이고 게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무츠키는 바닥에 왁스칠을 하고 있다.
유리창을 닦으려고 했더니, 나중에 내가 할 테니까 됐어, 라고 말한다.
일요일에 청소를 하는 것은 무츠키의 취미다.
“당신은 낮잠이나 자.”
무츠키는 무지 결벽스러워서, 제 손으로 모두 반짝반짝하게 닦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다.
그럼 구두나 닦을까, 라고 했더니, 지금 막 내가 다 닦았어, 라고 대답한다.
“왜 그러고 있는데?”
멍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무츠키는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다.
무츠키는 때로 어이가 없을 만큼 둔감하다. 하기야 애당초 그러기로 한 일이기는 하다.
아내가 할 일이니 남편이 할 일이니, 그런 거 다 언어도단이니까 신경쓰지 말자,
청소나 요리도 잘 하는 쪽이 하면 그만이라고.]
[쇼코는 정말이지 난감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다들 어떻게 된 것 같아, 라고 말했다.
“왜 지금 이대로 지내면 안 되는 거야. 그냥 이대로 지내도 이렇게 자연스러운데.”
그냥 이대로 지내도 이렇게 자연스러운데. 자연이란 말의 정의는 차치하고, 당당하게
그렇게 말한 쇼코 때문에 나는 가슴이 메이고 말았다.
쇼코는 다 먹은 그릇을 포개고, 낮잠 잘 거야, 라고 말하고 일어났다. 무츠키도 잘 거면,
시트에 다림질해 두고.
“그러지. 같이 낮잠이나 잘까.”
나는 그릇을 싱크대로 나른다.
“하지만 다림질은 안 해도 돼. 벌써 날이 더우니까.”
시트에 다림질을 하는 것은 겨울 동안의 습관이다. 대답이 없어서 나는 수돗물을 잠그고,
다림질은 안 해도 돼, 라고 큰 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다. 역시 대답이 없다.
돌아보니, 쇼코는 부엌 구석에 서 있었다.
“아니, 거기 서 있었어?”
“다림질하는 게 내 일이라고 했잖아.”
절박한 표정으로 쇼코가 말한다.
“더우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면 되잖아.”
매끈한 시트, 좋아하잖아?
“......음. 그러지 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필사적인 얼굴이라, 수긍하는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까까지는 그렇게 당당하던 옆얼굴이 볼품 없이 일그러져 있다. 하얗고, 조그맣고, 연약하다.
다림질을 하러 침실로 들어가는 쇼코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궁지에 몰아 넣고 있는 것은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너무 슬펐다.]
그녀가 무츠키를 위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행위인 시트 다림질을 무츠키가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쇼코는 자신이 무츠키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때문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쇼코는 우울증에 알코올 중독(? 중독은 아닌것 같은데...) 입니다. 표현은 안 했으나 무츠키는
쇼코의 상태를 항상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울 상태다, 상당히 절박한 표정이다, 라고 생각했다. 쇼코 주위에만, 공기가 무겁게 고여 있었다.
“밤새도록 거기 그렇게 앉아 있었어?”
“보라 아저씨한테 노래 불러 줬어. 그랬더니 아저씨도, 답례로 불러 주겠다기에,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나도 안 불러 줘.”
나는 소스라쳐, 손끝으로 피가 줄줄 새어나가는 것 같았다.
“쇼코?”
쇼코는 여전히 한 점을 응시한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머리 속으로 이런저런 궁리를 하였다.
잠자게 할까, 얘기를 나눌까, 아니면 목욕을 시킬까, 우유라도 데워다 줄까.
“농담이야.”
그렇게 말하는 쇼코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냥 그림인걸 뭐. 노래를 어떻게 부르겠어.”
얼이 빠져 멍한 나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쇼코는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이들의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은 서로 차이가 납니다. 쇼코는 현상태를 유지하려고 하고, 무츠키는
자신들의 사랑이 일반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쇼코가 다른 길을 찾기를 바랍니다.
[다소 겁먹은 표정의 무츠키를 무시하고 아까 매단 종이를 찾는다. 소원을 쓰지 않고 그냥 건,
마지막 한 장이다. 파란색 그 학종이는 나무 꼭대기 쪽에 매달려 있었다.
“이름 같이 쓰자.”
내가 말하고, 사인펜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썼다. 무츠키는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있지, 오래도록 지금 이대로 있을 수 있도록, 이라고 이 학종이에다 빌었었어. 하지만 써버리면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이 학종이는 그냥.......”
나는 침묵하였다. 무츠키가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슬프다기보다, 애처로운 얼굴.
견딜 수 없다는 얼굴.
“왜 그래?”
간신히 소리내어 내가 물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거야.”
무츠키도 간신히 소리내어 말하는 것 같았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흘러가. 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나는 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변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랬잖아. 우리 둘 다 그러고 싶어하는데, 왜 그럴 수 없다는 거지?”]
부모님들도 무츠키가 동성연애자이며, 현재도 곤과 사귀고 있고, 쇼코가 정신적으로 불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곤이 잠시 잠적을 하기도 합니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쇼코와 무츠키는 곤을 이웃으로 하여, 다시 그들의 사랑을 이어갑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정의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애정일 수도,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거나 우정, 동료애 어떤것일지라도, 같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또한 하나의 축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츠키, 은사자 얘기 알아?”
홍차에 럼주를 몇 방울 떨구면서 쇼코가 말했다.
“그거, 피하고 살이 어쩌구 하는 얘긴가.”
쇼코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아니, 라고 말한다. 아니, 전설이야.
“어어, 그래, 전설이야.”
나는 안심하여 럼이 들어 있는 홍차를 한 모금 마신다.
그럼 어디 얘기해 봐, 라고 나는 말했다. 어떤 얘긴데.
쇼코의 설명에 따르면, 몇십 년에 한 번, 온 세계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흰사자가 태어난다고 한다.
극단적으로 색소가 희미한 사자인 모양인데,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터라, 어느 틈엔가 무리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하지만 말이지.”
라고 쇼코는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마법의 사자래. 무리를 떠나서, 어디선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는 거지.
그리고 그들은 초식성이야. 그래서, 물론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단명한다는 거야. 원래 생명력이 약한 데다 별로 먹지도 않으니까, 다들 금방 죽어버린다나 봐. 추위나 더위, 그런 요인들 때문에. 사자들은 바위 위에 있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갈기는 하얗다기보다 마치 은색처럼 아름답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