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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평점 :
홍콩의 한 아파트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왔던 남성이 자살한 채 발견된다. 단순 자살인 줄 알았던 사건은 그의 옷장 속에서 여러 조각으로 토막난 채 유리병에 담겨 있는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살인 사건으로 전환된다. 유력한 용의자는 자살한 남성이지만 20년간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그는 방 바깥으로 나와본 적조차 없다. 과연 그는 어떻게 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참혹하게 훼손한 시신을 사람들 몰래 방 안에 숨겨둘 수 있었던 걸까?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찬호께이의 신작 <고독한 용의자>가 출간됐다. 전작인 <13.67>, <망내인>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던 지라 자연히 신작 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서평단에 응모해 운좋게도 미리 책을 받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짧게 요약 설명한 로그라인처럼 소설은 은둔형 외톨이의 방에서 토막난 시체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하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도한다. 방 바깥으로 나가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였을까? '무슨' 트릭을 사용해 사람들을 속이고 시체를 방 안에 숨겼을까?
여기까지는 흔하디 흔한 밀실 살인사건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대부분의 추리소설들은 추리 트릭에 닳고 닳은 독자들을 놀라게 할 수 있는 기상천외한 트릭들을 설계하는데 집중하곤 한다.
하지만 찬호께이는 여기서 가볍게 방향을 틀어버린다. 비좁은 방과 아파트에서 벗어나 독자들의 시야를 조금씩 확장시킨다. 그렇게 독자들은 그가 의도하는대로 자연스레 밀실에서 벗어나 길거리로, 호텔로, 그리고 더 나아가 홍콩이라는 도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단순 밀실에만 집중하면 독특하고 흥미로운 트릭들을 보고 놀라는 재미는 있겠지만 트릭에만 너무 골몰한 나머지 다른 캐릭터들이나 설정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질 위험이 있다. 그렇지만 찬호께이는 이러한 위험성을 알기라도 하듯 과감하게 다른 요소를 섞는다. 바로 사회현상을 추리에 녹여내는 사회파 추리이다.
이 소설 속 배경은 코로나라는 팬데믹 시기를 막 지나온 홍콩이다. 그리고 이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사회현상을 범죄추리에 적극 반영하는 이 소설에서 아주 요긴하게 활용된다. 점점 늘어가는 은둔형 외톨이 현상,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며 사건을 단순 가십거리로 만드는 삼류 찌라시 언론과 유튜브 영상들, 직업으로 인해 범죄 위험에 쉽게 노출되면서도 도움 받지 못하는 성매매 여성들, 경찰 조직을 향한 시민들의 불신 등등.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등장하는 온갖 사회적 문제들은 트릭에 자연스러움을 부과한다. 더 나아가 여러 장소들에 공간감을 부여하며 허구의 내용임에도 독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리얼리즘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고지식하지만 예리한 형사 쉬유이와 찬호께이가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어낸 듯한 칸즈위안의 케미가 더해지니 안 그래도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엄청난 탄력을 얻으며 앞으로 미친듯이 돌주해나간다. 이러니 독자들은 자연히 작가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움직이며 속절없이 속을 수밖에.
전작도 그랬지만 그의 소설은 한 번 책장을 펼쳐들면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놀라운 트릭과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이는 사회 분위기 묘사,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까지. 내 취향인 요소들을 전부 다 때려넣었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의 소설판인데 심지어 퀄리티까지 최상이니.
추리 중간중간 칸즈위안 캐릭터가 언급하는 다양한 추리소설과 문학, 대중가요들이 양념처럼 뿌려졌는데, 추리소설에 대한 작가만의 철학과 풍부한 대중문화 지식을 엿볼 수 있어 한층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전 띠지에 적힌 "어떤 독자도 작가를 이길 수 없다"라는 문장을 보며 이번만큼은 그 '어떤 독자'가 되지 않겠노라고 굳게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내가 졌다고. 그 어떤 독자가 되어 전작 때처럼 당신에게 시원하게 속았노라고.
P.93. 유능한 작가는 독자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타인의 관점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능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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