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우스 로마사 3 - 한니발 전쟁기 리비우스 로마사 3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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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는 티투스 리비우스가 집필한 로마의 역사서이다. 리비우스는 기원전 30년경부터 로마사를 집필하기 시작해 기원전 25년경 로마사 첫 1권부터 5권까지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 142권까지 로마사를 집필했다. 아쉽게도 그의 죽음으로 종결점이 되는 150권까지는 마치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긴 권수는 10권씩 한 단위로 묶어 출간했는데 이번에 그 완역본이 한국에서 출간됐다. 그 중 이번에 리뷰하는 책은 리비우스 로마사 3권에 해당한다.

아쉽게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일정 부분이 유실되어서 1-10권과 21--45권, 총 35권만이 남았다고 한다. 유실된 부분까지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살짝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길고 화려한 로마사 중에서 사람들이 재매있게 느낄 수 있는 포에니 전쟁, 그 중에서도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대결을 다룬 제2차 포에니 전쟁 이야기를 서술한 기록이 남아있다는 점이 그러한 아쉬움을 상쇄시켜주었다. 어렸을 적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전투를 만화로 읽고 로마사에 큰 관심을 가졌던지라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부터 끝을 다룬 이번 리비우스 로마사 3권에 더욱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리비우스 로마사 3권은 21권부터 30권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리비우스가 집필한 로마사가 워낙 길고 방대하다보니 21권부터 30권까지만 한 권으로 묶어 출판했다고 해도 페이지가 무려 천 페이지에 육박한다. 벽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두껍기 그지 없지만 책은 비교적 쉽고 빠르게 읽힌다.

책이 3권이기 때문에 따로 이 책을 설명하는 서문은 없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대신 간략한 설명이 시작 전에 간단하게 첨언되어 있다. 리비우스가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서술하기 전 자신이 다룰 이 전쟁 이야기가 로마 역사에서 왜 기억에 남을 만한 전쟁으로 뽑히는지를 설명하는 문단이다.

첫째, 이 전쟁은 역사적으로 물적 자원엥서 타의 추종을 불허나는 두 민족 간에 발발한 것이었고, 두 나라는 각자 번영과 영향력 측면에서 절정기에 있었다.

둘째, 이 전쟁은 오랜 적수들 사잉의 투쟁이었다. 두 나라는 제1차 포에니 전쟁을 통해 상대의 군사적 능력을 이미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셋째, 전쟁의 최종 판세는 너무나 불투명하여 최종 승자가 패자 못지않게 파멸에 가까운 상태로 내몰렸다.

11쪽

이 간단한 설명 이후 기나긴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을 마주할 수 있다. 그 시작은 제1차 포에니 전쟁의 패배로 로마에 지독한 적개심을 가지게 된 어린 한니발을 조명하면서부터다. 아주 어린 시절에 제단 앞에서 로마 인을 철천지원수로 여기겠다는 맹세를 한 한니발은 로마에 대한 적개심과 울분을 품은 채 성장해 카르타고의 군을 이끄는 장군이 된다. 어릴 때 제단 앞에서 맹세까지 한 그가 로마를 침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지극히 당연해보인다. 험준한 알프스 산까지 넘어 진군한 한니발의 군대는 제1차 포에니 전쟁 때와는 다른,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다. 처음에 그들을 얕잡아 본 로마 군은 전투에서 잇따라 패전하며 크게 당황한다. 그렇지만 전쟁은 한니발에게 우세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에 대적해 전투를 벌이는 장수들이 등장해 로마와 로마 연합들을 지켜낸다. 이렇게 길어진 전투가 리비우스 로마사 3권에 길게 적혀 있다.

처음에는 두꺼운 두께 때문에 당황할 수도 있지만 그 두려움을 걷어내고 보면 책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치열한 전쟁의 흐름과 양상, 그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길고 긴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큰 재미를 선사한다. 위, 촉, 오 대립을 다룬 삼국지에서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해 서로 자웅을 다루는 것처럼, 리비우스가 집필한 로마사 역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서로 각축전을 벌인다. 한니발과 스키피오 외에도 매력적인 인물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들이 전쟁을 하며 내리는 판단이나 그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과거 역사이지만 권력과 사람들 간의 다툼, 전쟁이 불러오는 끔찍함은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니만큼 별 위화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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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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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기사가 파문을 일으킨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수십 년에 걸쳐 성추행과 성폭행을 저질러 왔다는 보도였다. 이 보도는 할리우드를 넘어 전 세계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에게 성추행, 폭행을 당했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증언을 하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미투 운동이 큰 탄력을 얻게 되었다. 할리우드에서 촉발된 미투 운동은 다른 분야, 그리고 다른 나라로까지 이어졌다.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피해자들이 증언을 하는 다른 피해자들을 보며 용기를 얻은 것이다.

2020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소설 동의는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과 성폭행을 폭로한 기사처럼 프랑스 문단 미투 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작품이다. 저자 바네사 스프링고라가 미성년이었던 14살 당시 50세였던 유명 작가 가브리엘 마츠네프가 자신에게 가한 성적 학대를 폭로하는 소설이다. 2020년 초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가브리엘 마츠네프가 피해자에게 가한 성적 학대를 폭로할 뿐만 아니라 그의 범죄를 용인하고 묵인한 프랑스 문단 역시 정조준하고 있다.

소설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가해자와의 첫 만남, 50대인 가해자가 미성년자인 저자를 가스라이팅 한 과정, 나중에야 실체를 알고 강압적인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작가는 그 과정을 묘사한 소설에서 가해자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호명하는 대신 이니셜을 사용한다. 자신을 V라고 칭하고, 가해자를 G 혹은 G.M. 이라는 이니셜로 지칭한다. 작가와 가해자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부르는 대신 이니셜을 사용하는 방식은 관음증적인 시선을 배제한다. 독자들은 제3자의 시선으로 그 폭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가 부재하는 경험을 겪은 작가는 부성애를 갈망한다.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헤맨다. 자신을 보호하고 애정을 쏟아주는 어른을 찾던 어린아이는 출판사에게 근무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책에 빠져들게 된다. 외롭거나 현실이 버거울 때 책을 찾아 읽었던 아이는 자연스럽게 문학, 그리고 그 문학을 창조하는 이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 아이 앞에 때맞춰 소아성애자인 소설가가 등장한다면? 아이는 손써볼 새도 없이 그의 '먹잇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50대인 작가 G는 고작 14살인 어린 V에게 처음부터 끊임없이 뒤틀린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아버지를 대체할 만한 이를 갈망하고 문학의 세계를 동경하는 어린 V는 그의 위험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G라는 인물이 어린 V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어른들은 없다.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용인해 주는, 경악스러운 이들이 드글드글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경악스러운 부분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G의 뒤틀린 욕망과 그가 그것을 채우기 위해 어린 V를 가스라이팅 하는 부분도 소름 끼쳤지만 그보다도 그런 그에게 제재를 전혀 가하지 않는 환경이 더욱 끔찍했다. 유명한 문인이라는 수식어와 그가 그런 권력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도록 용인해 주는 문학계는 G가 마음껏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 죄도 받지 못하게 만드는 공범이었다. 어린 V에게 말도 안 되는 말로 G를 옹호해 주는 철학자 시오랑이 바로 그렇다.

미성년자를 성적, 정서적으로 착취하고 뻔뻔하게도 그것을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버린 G, 그에게 권력을 쥐여준 문학계 카르텔, 그리고 그가 어린 V를 자신의 애인이라고 말하고 다녀도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적인 환경까지. 소설을 읽는 내내 어린 V를 G와 갈라놓고 그를 대신 고발해 주고 싶다는 분노가 계속해서 치밀어 올랐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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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개
하세 세이슈 지음, 손예리 옮김 / 창심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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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로 개만큼 친숙한 동물이 어디 있을까?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애완동물로 삼는 동물의 종류도 다양해졌다지만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개를 애완동물로 많이 키워왔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콘텐츠들 역시 급증했다.

강형욱 훈련사가 출연하는 개는 훌륭하다라는 TV프로그램부터 애완동물을 키우는 과정을 그린 웹툰 <개를 낳았다>와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등 수많은 콘텐츠들이 등장해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세 세이슈 작가의 신작 <소년과 개>는 제목 그대로 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책이다. 163회 나오키상을 수상하고, 미야베 미유키의 극찬을 받으며, 출간 후 26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는 화려한 수식어도 수식어지만 그보다도 표지에 그려진, 어딘가를 쳐다보는 개 일러스트가 눈길을 잡아끈다. 특이점도 있다. 소설 『불야성』 시리즈로 유명한 하세 세이슈 작가가 집필했다는 점인데, 하드보일드 누아르 장르의 신성으로 유명한 작가가 개를 중심으로 한 감성적인 소설을 집필했다는 점이 의아하게 다가왔다. 화려한 수식어들로 중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작가가 과연 장르 변환을 성공적으로 해냈을지 의구심도 들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의구심은 서서히 사라지고 어느새 작가에 대한 신뢰가 샘솟기 시작한다.

책은 총 6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장편소설이지만 서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6편의 연작소설이라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하다. 6개의 연작소설에는 저마다 다른 등장인물들이 등장해 각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 소설 속 인물들이 다른 연작소설 인물들과 엮이지는 않는다. 대신 다몬이라는 목걸이를 한 개가 6편의 연작소설에 등장해 그들 모두와 엮인다. 다몬이 매개체가 되어 등장하는 셈이다. 우연한 계기로 다몬과 엮인 인물들은 성별도, 직업도, 환경도, 나이도 전부 다르다.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그들이 모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거나 위태로운 환경에 놓여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인물들은 그들 옆에서 충직한 태도로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다몬과 관계를 맺으며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거나 자신의 아픔을 돌아볼 용기를 얻게 된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주인을 잃은 개 다몬과 긴밀히 연결되어 가는 과정은 담백하게 그려졌지만 동일본대지진 직후라는 시대적 배경이 더해지면서 읽는 동안 큰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개를 의인화하지 않았다는 추천사처럼 이 책에서 다몬의 시각이나 심정은 단 한 번도 드러나지 않는다. 개를 사람의 시각으로 표현하거나 바라보지 않고도 서로 감정을 주고받으며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훌륭히 그려낸 작가의 역량이 도드라지는 소설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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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저널리스트 : 카를 마르크스 더 저널리스트 3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영진 엮음 / 한빛비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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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저널리스트 시리즈 마지막 편은 카를 마르크스다. 앞선 두 편에서 소설가인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을 소개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튀는 선택처럼 보이기도 하다. 어째서 사상가로 유명한 마르크스를 선택한 것일까?

기사를 엮고 한글로 옮긴 번역가는 프롤로그에서 그 이유를 제시한다. 번역가가 제시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념 편향적으로만 소비되어 온 마르크스의 이미지가 아닌 저널리스트의 모습을 소개하고 싶어서. 둘째, 좀 더 읽기 쉽고 명확한 번역을 제공하고 싶어서.

이 책은 마르크스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당시 낸 기사들을 엮어서 저널리스트로서의 마르크스를 조명하고 있다. 사상가가 아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작성한 글을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또한 정부의 검열과 압박에도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던 마르크스가 당대 사회와 현상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성한 기사들은 그 당시의 시대상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사상이 구체화되어 가는 과정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마르크스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작성한 기사들 중 17개를 골라 묶었다. 사건, 사고에 대한 논평보다는 그 당시 외교 문제나 무역 문제, 노동 계급에 초점을 맞추고 논평한 기사들이 주로 실려 있다. 2부는 임금노동과 자본이라는 제목의 글로 마르크스가 당시 운영하던 <신라인신문>에서 연재한 기사를 묶은 글이다. 마르크스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강의 내용을 기반으로 해 작성한 글이라고 한다.

마르크스가 기사로 포착해 논의하는 것들은 조금씩 다르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강제 추방을 당하는 서민들의 현실, 활발한 자유무역과 그것을 찬양하는 신봉자들, 영국이 인도와 중국에 침략해 착취를 저지르는 현실 등 그 당시 나타나던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이다. 마르크스는 예리한 시선으로 사회적 현상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논의한다. 기사를 통해 드러난 그 당시 시대상은 비극적이며 처참하다.

자유무역이 활성화되면 빈곤층들이 줄어들 거라는 자유무역 옹호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노동자, 서민 계층의 삶은 곤궁하지 그지없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산다는 말도 이들에겐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몸을 누일 곳을 찾지 못하고 거리를 떠돌다 허름한 헛간에서 죽음을 맞이한 바늘 제조공이나 조상이 대대로 살던 곳에서 지주와 경찰의 폭력으로 쫓겨난 소작농들, 공장에서 초과근무에 시달리고 열악한 근로환경 때문에 신체를 위협받지만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해 가난에 허덕이는 노동자들,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근무하는 여성, 아동 노동자들. 지주나 공장주에게 시달리고 국가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현실은 처참하다는 말로도 표현을 못 할 정도로 열악하다.

마르크스는 기사를 통해 이런 현실을 고발하면서 이들을 착취하는 부르주아와 국가, 그리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는 노동자들이 이와 같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개개인의 힘을 조직화해 전국적으로 단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 계급이 조직화되어 정치적인 영역까지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부, 임금노동과 자본이라는 글을 집필하고 연재한 이유는 바로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노동자들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사회구조와 계층 문제를 파악할 수 있도록 그는 <임금노동과 자본>이라는 글을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신라인신문>에 연재했다. 노동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임금노동과 자본의 관계 및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의 구조를 풀어냈다. 노동자들이 단결해 조직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자신들이 겪는 불합리함을 각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저널리스트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진정성 있게 활동한 마르크스를 확인해볼 수 있었다. 정부의 검열과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기사를 작성한 이력이나 기사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주장을 내세울 때 그걸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통계자료를 하나씩 나열하며 꼼꼼히 분석하는 서술 방식은 그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기자일에 임했는지를 알려준다.

아무리 쉽게 작성했다지만 그의 저작을 읽어본 적도 없고 경제학 분야에 무지해 글을 이해하는 데 이전 시리즈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지만 양심 있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마르크스의 열정만큼은 깊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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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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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열두 살 소년 엘리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소설을 읽기 전 성장소설이라는 수식어와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을 깊이 녹여냈다는 설명을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교과서적인 성장소설일거라는 예상은 책을 몇 페이지 읽는 순간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마약 배달을 하는 보호자, 살인범과 전설의 탈옥수라는 악명을 가지고 있는 베이비시터 할아버지, 온종일 책만 읽고 술만 마시는 아버지, 주변에서 일어나는 마약 밀매와 폭력적인 사건들. 엘리의 주변 환경들은 거칠다 못해 암흑에 가까워서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로 끊임없이 엘리를 위험과 절망에 빠뜨리는 난관들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육백 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주인공인 엘리가 뿜어내는 특별한 에너지였다. 혼란스럽고 어두운 주변 환경 덕분에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엘리는 때로는 흔들리고 크게 절망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의 좋은 점을 발견해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엘리는 읽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난관을 외면하지 않고 우직하게 돌파한다.

엘리가 그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주변 인물들도 눈에 띈다. 전설의 탈옥수, 살인범이라는 무거운 과거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감옥에서 터득한 지혜를 엘리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주려고 노력하는 슬림 할아버지, 어릴 때 난 사고 이후 말을 하지 않지만 허공에 계속 단어와 글을 적으며 엘리와 소통하는 형 오거스트, 엘리의 말을 경청해 주는 범죄부 기자 케이틀린 스파이스, 감옥에 갇혀 있으며 엘리와 펜팔을 주고받는 알렉스 아저씨까지. 엘리의 곁에서 도움을 주고 그를 지켜봐 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엘리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책 띠지에 적혀 있는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어린 제제에게 밍기뉴, 뽀르뚜가 아저씨가 있었던 것처럼 엘리의 곁에는 그들이 있다. 그들을 설명하는 수식어나 과거, 직업이 다소 범상치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엘리는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성장한다.

소설을 집필한 작가의 역량도 도드라진다. 한없이 어둡고 우울해질 수 있는 환경임에도 소설이 마냥 무거운 톤으로 흘러가지 않는 건 초현실주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와 시적인 문장과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작가 덕분이다. 형 오거스트가 허공에 뜻 모를 단어들을 적는 점이나 소설 초반부에 엘리가 계속해서 꾸는 꿈은 미스터리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며 독자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후반부에 이르러서 수수께끼 같은 장면들과 장치가 풀리게 되는데 이것이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엘리가 엄마가 갇혀있는 감옥으로 몰래 침입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한없이 무겁게 그릴 수 있음에도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 마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호쾌하게 묘사한 것이 인상 깊었다. 파편적인 정보들만 나열해보자면 우울하기 그지없는 장면들뿐이지만 이렇게 판타지적인 연출을 사용해 서술한 덕분에 소설은 무거운 와중에도 동화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유지해나간다.

이 책은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데뷔작임에도 육백 페이지가 넘는 긴 분량의 완급조절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자신만의 문법을 통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구축해낸 작가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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