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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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기사가 파문을 일으킨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수십 년에 걸쳐 성추행과 성폭행을 저질러 왔다는 보도였다. 이 보도는 할리우드를 넘어 전 세계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에게 성추행, 폭행을 당했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증언을 하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미투 운동이 큰 탄력을 얻게 되었다. 할리우드에서 촉발된 미투 운동은 다른 분야, 그리고 다른 나라로까지 이어졌다.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피해자들이 증언을 하는 다른 피해자들을 보며 용기를 얻은 것이다.

2020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소설 동의는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과 성폭행을 폭로한 기사처럼 프랑스 문단 미투 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작품이다. 저자 바네사 스프링고라가 미성년이었던 14살 당시 50세였던 유명 작가 가브리엘 마츠네프가 자신에게 가한 성적 학대를 폭로하는 소설이다. 2020년 초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가브리엘 마츠네프가 피해자에게 가한 성적 학대를 폭로할 뿐만 아니라 그의 범죄를 용인하고 묵인한 프랑스 문단 역시 정조준하고 있다.

소설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가해자와의 첫 만남, 50대인 가해자가 미성년자인 저자를 가스라이팅 한 과정, 나중에야 실체를 알고 강압적인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작가는 그 과정을 묘사한 소설에서 가해자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호명하는 대신 이니셜을 사용한다. 자신을 V라고 칭하고, 가해자를 G 혹은 G.M. 이라는 이니셜로 지칭한다. 작가와 가해자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부르는 대신 이니셜을 사용하는 방식은 관음증적인 시선을 배제한다. 독자들은 제3자의 시선으로 그 폭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가 부재하는 경험을 겪은 작가는 부성애를 갈망한다.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헤맨다. 자신을 보호하고 애정을 쏟아주는 어른을 찾던 어린아이는 출판사에게 근무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책에 빠져들게 된다. 외롭거나 현실이 버거울 때 책을 찾아 읽었던 아이는 자연스럽게 문학, 그리고 그 문학을 창조하는 이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 아이 앞에 때맞춰 소아성애자인 소설가가 등장한다면? 아이는 손써볼 새도 없이 그의 '먹잇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50대인 작가 G는 고작 14살인 어린 V에게 처음부터 끊임없이 뒤틀린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아버지를 대체할 만한 이를 갈망하고 문학의 세계를 동경하는 어린 V는 그의 위험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G라는 인물이 어린 V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어른들은 없다.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용인해 주는, 경악스러운 이들이 드글드글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경악스러운 부분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G의 뒤틀린 욕망과 그가 그것을 채우기 위해 어린 V를 가스라이팅 하는 부분도 소름 끼쳤지만 그보다도 그런 그에게 제재를 전혀 가하지 않는 환경이 더욱 끔찍했다. 유명한 문인이라는 수식어와 그가 그런 권력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도록 용인해 주는 문학계는 G가 마음껏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 죄도 받지 못하게 만드는 공범이었다. 어린 V에게 말도 안 되는 말로 G를 옹호해 주는 철학자 시오랑이 바로 그렇다.

미성년자를 성적, 정서적으로 착취하고 뻔뻔하게도 그것을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버린 G, 그에게 권력을 쥐여준 문학계 카르텔, 그리고 그가 어린 V를 자신의 애인이라고 말하고 다녀도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적인 환경까지. 소설을 읽는 내내 어린 V를 G와 갈라놓고 그를 대신 고발해 주고 싶다는 분노가 계속해서 치밀어 올랐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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