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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평점 :

이 소설은 열두 살 소년 엘리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소설을 읽기 전 성장소설이라는 수식어와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을 깊이 녹여냈다는 설명을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교과서적인 성장소설일거라는 예상은 책을 몇 페이지 읽는 순간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마약 배달을 하는 보호자, 살인범과 전설의 탈옥수라는 악명을 가지고 있는 베이비시터 할아버지, 온종일 책만 읽고 술만 마시는 아버지, 주변에서 일어나는 마약 밀매와 폭력적인 사건들. 엘리의 주변 환경들은 거칠다 못해 암흑에 가까워서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로 끊임없이 엘리를 위험과 절망에 빠뜨리는 난관들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육백 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주인공인 엘리가 뿜어내는 특별한 에너지였다. 혼란스럽고 어두운 주변 환경 덕분에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엘리는 때로는 흔들리고 크게 절망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의 좋은 점을 발견해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엘리는 읽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난관을 외면하지 않고 우직하게 돌파한다.
엘리가 그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주변 인물들도 눈에 띈다. 전설의 탈옥수, 살인범이라는 무거운 과거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감옥에서 터득한 지혜를 엘리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주려고 노력하는 슬림 할아버지, 어릴 때 난 사고 이후 말을 하지 않지만 허공에 계속 단어와 글을 적으며 엘리와 소통하는 형 오거스트, 엘리의 말을 경청해 주는 범죄부 기자 케이틀린 스파이스, 감옥에 갇혀 있으며 엘리와 펜팔을 주고받는 알렉스 아저씨까지. 엘리의 곁에서 도움을 주고 그를 지켜봐 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엘리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책 띠지에 적혀 있는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어린 제제에게 밍기뉴, 뽀르뚜가 아저씨가 있었던 것처럼 엘리의 곁에는 그들이 있다. 그들을 설명하는 수식어나 과거, 직업이 다소 범상치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엘리는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성장한다.
소설을 집필한 작가의 역량도 도드라진다. 한없이 어둡고 우울해질 수 있는 환경임에도 소설이 마냥 무거운 톤으로 흘러가지 않는 건 초현실주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와 시적인 문장과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작가 덕분이다. 형 오거스트가 허공에 뜻 모를 단어들을 적는 점이나 소설 초반부에 엘리가 계속해서 꾸는 꿈은 미스터리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며 독자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후반부에 이르러서 수수께끼 같은 장면들과 장치가 풀리게 되는데 이것이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엘리가 엄마가 갇혀있는 감옥으로 몰래 침입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한없이 무겁게 그릴 수 있음에도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 마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호쾌하게 묘사한 것이 인상 깊었다. 파편적인 정보들만 나열해보자면 우울하기 그지없는 장면들뿐이지만 이렇게 판타지적인 연출을 사용해 서술한 덕분에 소설은 무거운 와중에도 동화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유지해나간다.
이 책은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데뷔작임에도 육백 페이지가 넘는 긴 분량의 완급조절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자신만의 문법을 통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구축해낸 작가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