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좋은 하루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구두가 뻣뻣해서 발이 아프다든지 하는 경우이다.


이런 때는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으며 머리가 멍한 상태이다.


그러나 치유는 간단하다. 옷을 벗듯이 그런 불행을 벌어내 버리면 된다. 그런 건 누구라도 잘 알고 있다.


그러한 불행은 왜 그런지만 알아내면 심각한 상황으로 가지는 않는다.


 


바늘에 찔린 아기는 마치 큰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울어댄다.


왜냐하면 아기는 원인도 치유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무 우는 바람에 몸 상태가 나빠져 더욱 심하게 울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병이다. 이 병은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명백한 병이다.


다만 그것이 심적인 것이라는 것은, 스스로 병을 키우고 있으면서 외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우는 일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신경질을 내는 것은 비단 아기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불쾌감은 일종의 병이고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들 말한다.


내가 앞에서 마음가짐을 바꾸면 고통이나 신경질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아무리 참을성이 좋은 사람이라도 종아리에 경련이 일어나면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러나 발바닥을 펴고 바닥을 힘껏 밟으면 금방 낫는다. 눈에 벌레나 잡티가 들어갔을 때 눈을 비비면 두세 시간은 고생하지만, 가만히 코끝을 바라보고 있으면 곧 눈물이 나와 낫게 된다. 이처럼 간단한 치료법을 알게 된 후, 나느 스무 번 이상 시험해보았다. 이것은 처음부터 주위 사람이나 상황을 탓하기보다는 우선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하다가는 증거이다.


 



 


때로는 불행을 몹시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과장한 것이 어떤 미치광이들에게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여기에서 어떤 생각 즉, 신비롭고도 악마적인 어떤 생각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은 상상력의 착각이다. 자기 몸을 긁어대는 인간에게는 깊은 생각이 없다.


고통을 즐기느 ㄴ것도 아니다. 욱하고 초조해서 그러는 것이라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말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불편함이나 균형을 잃은 동작에서 생기는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은 함부로 몸을 움직임으로써 말을 겁먹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에서 스키타이 인처럼 "말을 탈 줄 아는 사람은 모든 지혜, 아니 거의 모든 지혜를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심지어 말에서 떨어지는 데도 능숙한 기술이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은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다.


소방수 역시 신체 훈련을 통해 공포심 없이 떨어지는 기술을 습득한다.


 


우리는 미소가 불쾌한 기분을 바꾸는 데 아무 도움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의범절이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미소를 짓고 인사를 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심리학자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미소는 하품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 깊숙이 도달해 목, 허파, 심장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처럼 신속하고 신통하게 효력을 발휘하는 약은 의사에게도 없다.


 


상상력은 진정 작용으로 우리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 안도감은 상상력이 야기하는 고통과 마찬가지로 실재한다.


또 상대에게 마음대로 하려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하는 경우가 있다.


잘 보면 이 동작은 결국 폐에 공기를 바꿔주는 동작이다


결국 coeur을 진정시켜주느 것이다. 왜냐하면 coeur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심장, 폐, 마음, 기분, 의욕)를 가지고 있지만, 심장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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