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의 방향이나 위의 상태에 따라 불쾌함을 느끼는 일은 누구나 엇비슷하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은 문짝을 걷어차고 또 어떤 사람은 마구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고매한 영혼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우발적인 일을 모두 망각 속에 흘려버린다.
남이 했든 자기가 했든 간에 우발적인 일은 모두 용서한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불쾌감을 받아들이고 또 기분대로 행동하겠다고 맹세하여,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해서 스스로 하나의 성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누군가가 불쾌한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그를 싫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를 용서하는 일이 필요하지만 거의 실행되지 않는다.
남을 용서하려면 먼저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뭔가 회한 같은 것이 남았다면 울화통 같은 무엇이 끝없이 솟아올라 종종 타인의 과오를 확대시킨다.
그리하여 각자 자기가 생각해낸 불쾌감을 되새기며 말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런 말투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까지도 지껄이게 된다.
냄새 때문에 견딜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꽃다발이나 향수에 대한 기분은 언제나 똑같지는 않다.
아주 약간의 향기라도 찾아내어 맡고는 머리가 아플 것이라 판단한다. 이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연기 때문에 기침을 하는 것처럼 무슨 일에도 잔소리를 해댄다.
누구나 이런 부류의 가정 내 폭군을 알고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처음부터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은 소리에도 깨서 성화를 부리는 것은, 사실 어떤 소리든 나기만을 기다렸다가 모든 식구를 괴롭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에는 잠깐 잠이 든 것까지도 화를 낸다.
마치 불면증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해서 잠든 것처럼 말이다.
모든 일에 지나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카드놀이에서 지는 일에까지 자부심을 갖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건망증이 심해졌다거나 실어증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경우에 그 증거는 찾지 않아도 곧 발견된다.
그리고 자못 진지한 이 희극이 때로는 비극으로 변하기도 한다.
진짜 질병이나 나이로 인한 결과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사들은 오래전부터 환자들이 증세를 찾으려고 하면 너무 쉽게 발견하는 무서운 집념,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갖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과대망상에서 대부분의 정념이 생겨난다. 그리고 특히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샤르코(1825~1893 프랑스 정신병학자)는 여자 환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병은 의사가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멸되거나 또는 거의 소멸되었다.

한때 유명했던 프로이트의 교묘한 학설이 벌써 신뢰를 잃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즉 불안해하는 사람, 스탕달 식으로 말해서 자기의 상상력을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든 쉽게 믿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학설의 바탕이 되는 성욕의 무넺는 사람이 그것을 중요시하고 있고, 그리고 거기에는 누구나 알고 있듯 야성적인 시가 있지만 그것은 논외로 한다.
의사의 생각을 안다는 것은 환자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에 비해 덜 알려진 사실은, 환자가 의사의 생각을 재빨리 눈치 채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사들이 세운 훌륭한 가설은, 아직 가설임에도 불구하고 곧 진실로 간주되어 버린다.
이렇게 해서 어떤 부분의 기억만이 체계적으로 상실되는 놀라운 기억상실증이 설명된다.
환자의 마음속에는 저 두려운, 틀에 박힌 사고방식도 있다는 사실이 오래동안 잊혀진 채로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