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폰 서프라이즈가 먼저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을 발표할 때 서프라이즈를 가장 중시한다. 개발 중인 제품 정보는 엄격하게 지킨다. 예를 들어 초기 아이맥을 개발할 때에는 개발팀의 스태프들조차 제품의 마지막 형태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맥의 중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전 애플 소프트웨어 기술자는 애플의 철저함을 가르쳐줬다.
“작동 테스트를 하던 날 삼엄하게 잠긴 몇 개의 문을 통해 비밀의 방에 들어갔다. 거기에 놓여 있던 것은 아이맥의 본체가 아니라 기판뿐이었다.”
2000년에는 스티브 잡스의 강연 때 대대적으로 발표될 예정이었던 컴퓨터 신제품 ‘Power Mac G4Cube’의 정보가 발표 전날 비디오 카드 제조사의 사이트에 게재돼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이때 격노한 스티브 잡스는 발표 당일 비디오카드의 사양을 변경해서 발표했을 정도로 신제품 발표 전에 정보가 누설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비밀을 지키는 이유는 스티브 잡스의 쇼맨십 넘치는 강연 중 처음으로 제품을 발표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애플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하이테크 제품의 발표에는 일부 대형 미디어와 NDA(비밀 유지 계약)을 맺고 사전에 제품의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경영에 복귀한 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회사의 전환기에 가끔 저널리스트에게 사전 밀착 취재를 시키는 경우는 있지만 제품의 사전 소개는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 TV, 잡지의 기자들도, 블로그를 가진 일반인들도 스티브 잡스가 강연할 때 신제품의 세부 정보를 알게 된다. 사전 취재를 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느끼지만 애플이 브랜드력을 갖춘데다가 늘 화제의 중심에 서다 보니 미디어는 보도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 결과 모든 미디어가 한꺼번에 보도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발표되는 한날 한시에, 다양한 장소에서 애플의 신제품 뉴스를 접하게 된다.
제품 발표 강연 중에도 스티브 잡스는 가장 중요한 신제품을 마지막까지 발표하지 않거나 발표하더라도 실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등 청중을 애타게 한다. 사람들의 정보에 대한 갈망이 극에 달했을 때 제품을 보여준다. 그리고 짧고 대담하고 인상적인 문구를 반복하는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이 합쳐져 미디어가 전달하는 기사도 재미있어진다.
이전에 애플의 일본 홍보 활동을 감독한 경험을 통해 스티브 잡스의 측근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컨설턴트 소토무라 진은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서프라이즈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모티베이션이 크게 변화한다.”
애플과 대조적인 것은 일본 제조 회사의 제품 발표회이다. 발표 전에 미리 자료를 전달하고, 눌변의 임원이 제품을 소개하기 때문에 보도하는 기자도 재미없기 십상이다. 기자들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기사는 작게 다루어지고 흥미도 사라지고 만다.
스티브 잡스는 미국의 IT업계에서도 훌륭한 발표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소토무라 진은 잡스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 또는 프레젠테이션 원고는 프로페셔널 스태프 라이터가 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그저 원고를 읽는 것이 아니다. 애플의 한 임원은 “원고가 나오면 그 원고를 꼼꼼히 확인하고 자신이 다시 쓰는 경우가 많다. 강연 전에 가장 열심히 리허설을 하는 것은 스티브 잡스 스스로이다.”라고 말하며 강연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자세를 알려준다.
애플은 이러한 서프라이즈 전략을 통해 대개의 경우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제품을 오늘부터 살 수 있다.”라며 같은 날 발매하여 높아진 관심을 그대로 제품의 판매에 연결한다. 이와 같이 판매 개시와 동시에 애플의 직판 웹사이트에는 접속이 몰리고, 애플 직영점에는 물건을 사려는 고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아이폰의 경우 조금 다른 전략을 사용했다. 애플은 발매가 개시되기 반년 전에 아이폰을 발표했다. 그리고 여기에도 스티브 잡스의 ‘서프라이즈 전략’이 숨어 있었다.
애플은 주목을 받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애플에 관한 소문만을 다루는 웹사이트가 전 세계에 다수 있다. 유명한 사이트에는 판매점, 부품 제조사, 매뉴얼 인쇄 회사, 포장 업자 등 다양한 관계 기업의 사원으로부터 정보가 모이게 마련이다. 애플이 취득한 특허만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도 있다. 한마디로 애플이 아무리 경계 태세를 갖추더라도 어느 정도 제품의 소문이 돌게 된다. 사실 아이폰에 대해서도 제품 개요에 대한 소문은 1년 이상 전부터 있었다.
소문 정도라면 어쩔 수 없다. 문제였던 것은 공식적으로 아이폰의 정보가 새나가는 것이었다. 아이폰은 전파를 다루는 휴대 전화 성격상 사전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인가를 받아야만 했다. 인가를 받은 제품은 자동적으로 FCC의 웹페이지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비밀을 지킬 수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FCC를 통해 정보가 누설되기 전에’ 아이폰을 발매 6개월 전 서프라이즈 전략을 활용해서 발표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