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경쟁의 종언
아이폰이 미국에서 발매될 당시 아이폰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블로그를 많이 접했다. 이들 블로그 중에서는 아이폰의 상자를 개봉하는 순간부터 시작해 사용하기까지의 모습 전체를 전달하는 것도 많다. 다른 휴대 전화는 이와 같이 뉴스 거리가 된 적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이폰에는 유난히 이런 뉴스가 많았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렇게 강한 애착을 낳는 것이 제품의 브랜드력이다. 브랜드력은 제품을 선택할 때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매장을 방문해 살펴보면 컴퓨터든 음악 플레이어든 휴대 전화든 다양한 제조사에서 놀랄 정도로 많은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이런 경우 ‘기능 경쟁’의 효과는 희석된다.
제품의 수가 적으면 사용자는 사양서를 보고 기능을 비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제품의 수가 많아지면 아무리 사양을 비교해서 살펴보는 사용자라고 하더라도 모든 제품을 꼼꼼히 비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사양을 따지지 않고 몇몇 제품은 잊게 된다. 이러한 경우 무조건 선택되는 제조사 또는 제품이 브랜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브랜드란 애착임과 동시에 암묵적인 신뢰이기도 하다.
브랜드력이란 때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구매한 제품이 브랜드에 대한 신뢰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면 반대로 엄격한 비판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무명 제조사의 제품은 판매 후 실패를 하더라도 ‘이런 무명 제조사의 제품을 산 내 잘못이 크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브랜드력이 강한 대형 제조사의 제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사용자는 제조사를 강하게 비난한다. 미디어도 해당 제조사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제품의 결함에 대해 대대적으로 다룰 것이다.
예를 들어 애플은 아이팟의 배터리를 교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비싸다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사용자가 유튜브 등에 비난하는 동영상을 공개하거나 웹사이트에 항의의 문서를 게재하거나 애플 직영점에서 시위를 하는 등 강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악평을 미디어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원래 브랜드력을 갖는다는 것에는 이와 같은 불이익 이상으로 큰 가치가 있다. 브랜드력이 있었기 때문에 발매 직후부터 아이폰이 폭발적으로 팔린 것이다.
독자 여러분 중에는 ‘애플은 예전부터 브랜드력이 있는 특별한 회사니까.’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른다. 분명히 애플은 1970년대 말 컴퓨터의 여명기에 업계의 형태를 만든 전설적인 창업자가 운영하는 제조사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아는 부류는 예전부터 계속 컴퓨터를 써온 사용자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애플의 컴퓨터 사업은 ‘윈도 95’의 등장 이후 완전히 패배자로 낙인 찍혀 회사의 경영도 파탄에 이르렀었다. 그 후 ‘애플의 자산은 브랜드력’이라고 말하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경영에 복귀하여 체제를 정립하게 된다. 그러나 2001년까지 애플은 3% 정도의 시장 점유율에 불과한, 그야말로 초라한 마이너 컴퓨터 제조사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별 상관없는 존재였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윈도판 아이튠스를 출시하고 아이팟이 윈도에서도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2003년 가을 이후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애플의 브랜드력은 강화되었다.
그 후 불과 4년 뒤인 2007년 여름에는 아이폰을 구입하기 위해 발매 4일 전부터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폰을 잡지나 비디오에서 보았을 뿐이지만, 그들은 기꺼이 발매 며칠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던 것이다. 또한 2007년 7월 12일 <USA 투데이>에 따르면 아이폰의 초기 구입자 10명 중 3명이 처음으로 애플 제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애플은 이렇게 강한 브랜드력을 어떻게 단기간에 구축할 수 있었을까? 아이폰이라고 하는 브랜드 가치를 높인 포인트는 (1)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서프라이즈 작전, (2) 광고나 웹사이트에 대한 정보 제공, (3) 매장 전략, (4) 패키지나 액세서리 등의 구입 체험, (5) 실제 사용감, (6) 제품 사후 관리의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각각의 경우에서 애플은 어떻게 아이폰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는지 자세하게 살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