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아이들 창비청소년문학 45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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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라. 학교가 마치 수용소처럼 그려지고 있다.

말그대로 우리 사회의 가려진 부분 중 하나이다.

속은 부패하고 문제가 곪아가고 있지만 오로지 겉으로는 멀쩡하거나 우수한 것처럼 가리려고 하는 모습들. 그래서 이 나라는 얼마나 더 발전하고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피그말리온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다. 바로 알란 파커 감독의 핑크 플로이드의 벽.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어냈던 영국출신 유명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Pink Floyd가 발표한 "The Wall"이라는 앨범에 대한 시각적인 해석을 표현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빌보드 차트 1위를 하기도 했던 Another Brick In The Wall 2 장면에 획일화된 교육에 마치 좀비처럼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 아이들은 결국 어느 공장의 기계 속에서 가공식품으로 변해버리는 모습이 교육에 대한 비판을 연상시켰다.

바로 그런 모습과 같은 느낌을 주는 전개였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나라 사회가 높은 교육열에 비해 오히려 비효율적이고 비능률적인 방법으로만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해본다.

결국 이는 교육계만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 권력에 억압되고 통제되는 현상을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는데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영화화된다면 좋을만한 소재일 듯도 싶다. 최근 도가니라는 영화가 보여준 사회적인 문제제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또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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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유 - 아직 배우지 못한 단순한 기술
고세진 지음 / 순정아이북스(태경)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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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불가능 하지 않나? 법정스님의 책을 보고 깨닫고 실천하는 것은 불자의 마음으로 수양을 쌓지 못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소유에 대한 본능 내지는 관심, 때로는 집착이 강해지기 때문일것이다. 소유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것은 일반인의 마음가짐을 떠났다는 뜻?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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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라 -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이야기
곽진석 외 지음 / 바다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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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할 수밖에 없다.   이건 뭥미 하는 소설 들...  게다가    전문작가도 아닌 사람들이네.  하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책 소개에서도 나오듯이 9시뉴스에서 나오는 실제 벌어지는   황당한 뉴스들도  넘치고 넘치는 세상인데. 이깟 소설이 뭐 어때서.  SF공상과학이든 환타지든 많은 독자들이 읽고 있는 분야들 아닌가.   시공을 초월해서 옛시대의 런던이나 이집트 등을 떠돌아보는 능력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까지 꿈꿔보니 대리만족 겸해서도 위안을 주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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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1주

우리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스타일이라고 할까. 다소 무뚝뚝하고 말씀이 별로 없으시지만 표현이 그렇다할 뿐 인자한 마음과 심성은 고운 분이시다. 허나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진정한 마음을 다 헤아려낼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아닐까. 부모님의 마음은 하늘, 바다 그 이상 아니던가. 결혼은 아직 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런 부모님의 깊은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리는 없다. 그저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니면 영화와 같은 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낌을 알아가는 것일 뿐.

가족, 그 어감만으로도 따뜻한 단어이다. 그 가족 중에서도 아버지의 역할은 거대한 것 같다. 때로는 무섭기도 하지만 때로는 든든하기도 하다. 어머니의 역할이 부드러운 면이 많다면 아버지는 그와는 반대되는 느낌이 많은 편이다. 바로 이런 서로 다른 조화를 통해 이해, 화합을 갖게 되는 것이 가정의 행복을 이루는 균형일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요즘 사회는 가정의 균형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가족간의 패륜범죄가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하는 것이 이젠 너무나 자연스러워져 가는 것 같다.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관계가 무너지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지탱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가족들에 관한 세 편의 영화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느낌을 정리해보았다. 가족 중에서 아들을 잃게 되고 그 이후 가족들이 겪는 일련의 과정들을 담고 있다. 특히 가족중에서도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놓치기 쉬운 아버지가 겪는 아픔 등을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모성애 이외에 부성애 또한 진정 어떤 것인지를 강조하는 영화들이다. 
  

 

 

 

 

 

 



아들(2002) : 다르덴 형제 감독, 올리비에 구르메 주연

안경을 낀 중년의 남성이 힐끗 뒤쪽을 돌아보고 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은 희미하게 처리되어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포스터에 적힌 문구들.

- 흔들리는 시선이 멈추는 곳

- 5년전 아들을 죽인 그 아이를 만났다.

벌써 영화가 주는 느낌이 어떠할지 짐작이 갈 만하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목공 일을 가르치고 있는 올리비에, 어느날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평화로운 가정을 흔들어놓았던 그 아이가 자신이 일하는 곳으로 오게 되면서 그는 미묘한 시선으로 아이를 예의주시하게 된다. 무뚝뚝한 태도로 아이에게 일을 가르치던 올리비에는 어느날 자재를 구하기 위해 그 소년을 외진 곳까지 데리고 오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만이 있는 공간에서 밝힌 사실, '네가 죽인 아이가 내 아들이었다.' 소년은 도망치게 되고 올리비에는 그 소년과의 대화를 원하며 뒤쫓게 된다......

영화는 정적이고 고요하다. 감정이입에 방해를 주는 배경음악이 전혀 없다. 시작할때나 끝날때나. 그런 조용한 배경 속에 영화의 중심은 아이를 잃고 아내와도 이혼하면서 혼자 살아가는 어느 평범한 아버지와 그의 가정의 평화를 깨뜨린 장본인인 소년,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마음은 복잡하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소년을 가르쳐야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누가 편한 마음으로 소년에게 정성을 기울일 수 있을까. 그는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계속해서 소년을 지켜보고 있다. 처음 그것은 마치 먹이를 노리고 기회를 엿보는 육식동물의 눈빛처럼 생각들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보다는 좀 더 다른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 너머에 담겨있는 아버지의 감정은 분노와 용서 사이에서 방황하는 듯 했다. 만약 소년이 일말의 반성도 없이 개념없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면 아버지의 결심은 바로 그 외진 산 속의 차가운 흙바닥에서 소년의 목을 더 강하게 누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의 불행한 가정사를 알게 되고, 그가 지켜본 소년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우울하고 두려움 가득한 표정이 그의 감정을 결국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단순히 '아들'이라고 했는지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알게 되었다. 아니,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두 사람이 별다른 대화는 없지만 같이 조용히 자재를 포장해서 차에 싣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있다. 새로운 아버지, 새로운 아들을 서로 만나게 된 듯한 따뜻한 분위기,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가 되어보진 못했지만 영화 속 아버지가 느끼는 그 복잡한 심정, 마치 종교인으로서 죄를 사하고 용서하고자 하는 거룩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의 방(2001) : 난니 모레티 감독, 난니 모레티 주연

 [아들]과는 구도가 다른 포스터다. 전면에 등장하는 아들의 모습이 희미한 반면 아들의 어깨 너머로 얼굴만 비춰지는 아버지의 모습은 오히려 선명하다. 이 또한 영화가 보여줄 스토리가 어떤 것인지 짐작케한다.

- 사랑하는 아들아, 그 한통의 전화에 너를 잃게 될 줄이야...

로 시작되는 몇 줄의 절절한 문구들... 

소박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조반니의 가족들, 그러나 어느날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갔던 아들이 사고를 당해 숨지게 되면서 가족들의 행복은 일순간에 무너져간다. 사고 당일 갑작스런 환자의 요청으로 인해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 조반니는 그로인한 죄책감으로 엄청난 괴로움과 고통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고, 그와 더불어 그의 아내와 딸마저도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런 어느날 아들의 옛 여자친구가 조반니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녀의 방문으로 비로소 조반니 가족들은 다시금 아픔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갖는다......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10년전 친했던 친구가 사고로 숨졌다. 장례식장에서 뵙게 된 친구 부모님의 모습은 날 더 가슴아프게 했었다. 항상 유쾌하고 밝은 모습을 보이시던 친구 어머니는 넋을 잃은채 걸음을 제대로 걷질 못하셨고, 강해보이셨던 아버지는 끝내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두 분을 위로해드리고자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멍하게 있던 내 모습도 기억이 난다. 가족으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자식을 먼저 보내야만 하는 그 마음은 고통 그 자체였으리라. 어찌 내가 두 분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영화는 아들의 죽음이 한 가정에 미친 영향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아픔은 정말 절절하게 다가온다. 특히나 아들과의 약속을 못 지킨 것이 평생의 한으로 짊어지게 된 아버지의 모습은 안쓰럽다. 환자 상담을 할 때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놀이기구를 탈때도, 평화로웠던 집에 왔을 때도 그의 눈은 충격에 빠져 멍하기만 하다. 마치 살아 움직이고 있어도 살아있는게 아닌 것 같은 모습, 그런 모습이다. 그가 흔들리면서 그의 가정도 더욱 흔들리게 된다.  

아버지의 아픔, 아들을 잃은데 대한 그 애끓는 고통과 한은 얼마나 크겠는가. 평생 가슴 속에 묻고 살게 되는 부모님의 그 심정은 먼나라 이탈리아 영화라 할지라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만국 공통의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슬픔만 간직하도록 용납하진 않는다. 남은 가족들이 다시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해준다. 아들의 옛 여자친구를 만나 아들과의 추억 등을 이야기나누면서 가족들이 점차 치유될 수 있는 계기를 보여준다.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자의든 타의든 슬픔을 극복하고 치유하려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 같다. 그것은 남은 사람들이라도 먼저 간 가족들의 몫을 더해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 아닐까. 마지막 그 여자친구가 떠나면서 버스에서 바라본 조반니 가족의 모습은 바로 그런 희망을 담고 있다. 처음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다시 희망을 품고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 말이다.    

 

 

 

 

 

 

 



그 놈 목소리(2007) : 박진표 감독, 설경구, 김남주 주연

-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 놈을 잡기 전에는...

유괴 살해된 아들을 향한 부모의 절규가 가득한 문구. 그리고 그 문구만큼이나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1991년 우리나라에서 실제 발생했던 사실이라는데 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미제사건이라면서 얼마전 모 TV 시사다큐 프로그램에서 소개해준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미리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면 절대 이 영화를 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보는 동안 마음이 아프고 불편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으로 죄없는 아이를 희생시키고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깨뜨린 그 놈 또는 그 놈들이 과연 자식을 낳고 키우는 아버지가 되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를 통해 그리고 최근 본 TV시사 다큐를 통해서도 다시 이 사건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추적이 필요하다고 지지하고 싶다.  

영화가 아닌 사건에 대한 분노가 늘어나는 만큼 느끼게 된 것은 바로 유괴된 아이 부모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절절하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의 부모를 연기한 설경구, 김남주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답답한 상황을 보다 못해 분노를 폭발하게끔 이끌어내는 등 감정이입에 최선을 다해주었다고 본다. 연기자가 아닌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가진 부모로서 느끼는 그 마음 그대로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되었다.  

특히 원래 마스크가 다소 차가워보이는 설경구는 무뚝뚝해 보이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 자식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표정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로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진정 실제 아이 부모의 심정처럼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유괴 사건 등의 경우 해결책 마련 등에 대한 자신의 책임감때문에 아버지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어머니보다 더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연기에 임하는 것 같았다. 물론 김남주의 연기도 훌륭했다고 보지만 자칫 어머니에 비해 비중도가 약해질 수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더 중점적으로 잘 부각시켜 준 것 같다. 아마 영화촬영 이후로도 연기에 대한 감정에서 벗어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았을까 싶다.  
 


가정의 가장이자 아이의 아버지로서 기둥이 되고 버팀목이 되는 우리의 아버지들, 그들이 가족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들은 어머니보다는 약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런 영화들을 통해서 부성애는 과연 어떠한 것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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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4주


어린 나이에 데뷔한 하이틴 스타들의 그늘은 다른 어떤 배우들보다 짙고 어둡다. 

아역시절의 명성이 청소년기, 청년기에 이르면서는 퇴색되기 마련. 

그 과정에서 방황과 고민을 거듭하다 더 깊은 수렁 속에 빠져버리게 된다.  

        

톰 크루즈나 나탈리 포트만처럼 꾸준히 성장하며 대스타가 된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맷 딜런이나 드류 베리모어 같이 한때의 전성기에 이어 그보다 더 깊은 침체기를 맞고 방황하다 다시 재기에 성공한 케이스가 있는가 하면  

         

아예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한채 조용히 사라진 스타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 어느쪽이든 너무 일찍 부와 명예의 맛을 알게된 하이틴 스타들의 행보는 순탄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는 술과 마약에 물들게 되면서 어긋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여기 아역스타로 데뷔, 한때 연기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주연급을 도맡아 하던 3명의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서 추모하고 싶다.  


 

리버 피닉스(River Jude Phoenix : 1970~1993) 

 
 

브래드 렌프로(Bradley Barron Renfro : 1982~2008) 

 
 

코리 하임(Corey Ian Haim : 1971~2010)

  

 


 

 

리버 피닉스 하면 당장 떠오르는 영화는 바로 거스 반 산트 감독의 1991년작 <아이다호>이다.  

<허공에의 질주>라는 훌륭한 작품에서도 진가를 보여주었지만..  

역시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인상깊었던,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가 그의 인생과도 연결고리가 이어지는 듯해서 더 와닿았던 영화가 바로 <아이다호>였다.  

그것도 샤프하면서도 깔끔한 그의 외모와는 언뜻 맞지 않는 듯한 배역이다.  

그가 맡은 마이크는 기면발작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으며, 돈을 받고 몸을 파는 남창인데다 어머니가 그리워 그녀를 찾아 정처없이 방황하는 불우한 청년이다.  

특히 그는 어머니를 떠올리려고 할 때마다 기면발작이 발생하면서, 육체적인 고통을 느껴야만 곧 정신적인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결국 어머니도 찾지 못한데다 든든한 동반자였던 스콧마저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버리면서 홀로 외로이 차가운 길 위에서 잠들게 되는 마이크.  

그 쓸쓸한 모습의 엔딩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게 된 것은  

바로 2년쯤 뒤에 리버 피닉스 자신의 삶조차 유명배우 조니 뎁이 운영하는 바 앞의 차가운 도로 위에서 영원히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마약 등의 약물과용이 원인.  한창 인기를 누리던 23살 청년의 삶은 그 인기에 비해 더욱 외롭고 힘들었던 것 같다.  

<아이다호>는 갈등과 방황 속에 접하게 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 낸, 그래서 더 슬프게 다가오는 작품이 되었다.  

한가지 더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된 희귀질환인 기면증은 <메멘토>에 등장하는 단기기억상실증만큼이나 흥미로운 소재.  

인터넷으로 통해 알아본 결과 실제 기면증 환자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길을 가다가, 대화를 하다가도 그냥 갑자기 온몸에 힘이 풀리고 제어할 수 없는 잠의 유혹으로 빠져들게 되는 실로 무서운 병인데 이 영화에서 마이크의 불우한 삶을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된다. 

 

<아이다호>는 로드무비다.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어딘가 계실 어머니를 찾아 그들은 떠난다.  하지만 그들의 기나긴 여정은 허무하게 끝이 난다.  

그리고 마이크는 항상 그러했듯이 다시 혼자가 된다.  

그것은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를 일.  

방황하는 젊음,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 등이 차가우면서도 냉정하게 그려지는 <아이다호>는 단연 리버 피닉스의 경력 중에서도 최고의 영화라 생각된다. 

 


 

브래드 렌프로는 1995년 <굿바이 마이 프렌드>로 일약 스타로 떠올랐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덱스터와 그의 곁을 지키는 에릭. 아름답고도 슬픈 두 소년의 따뜻한 교감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었다.  

영화 속에서 결국 덱스터는 죽고, 에릭은 슬픈 눈망울로  덱스터를 떠나보내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는 덱스터의 배우 조셉 마젤로가 계속 활동하는 반면 에릭 역의 브래드 렌프로는 헤로인 중독으로 인해 26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꾸준히 이어질 것만 같던 그의 연기활동도 결국 아역배우 징크스를 탈출하지 못하면서 꼬이고 말았다.  

12살 어린 나이에 1994년 <의뢰인>의 아역 배우로 데뷔해 다음해 이 작품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이렇다할 연기 활동을 하지 못했고, 이후 그는 가십거리의 기사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신세가 되었다.  

마약 소지, 절도, 미성년자 음주 위반, 급기야 헤로인 구입 혐의로 수감생활까지 하는 등 성인이 되어가면서 자신의 삶을 조절하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하던 끝에  

그도 결국 2008년 자택에서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그의 삶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역스타의 경우 어느 한 작품으로 인해 두드러지게 부각되면 그 이후 그와 비슷한 캐릭터에 갇히게 되어 쉽게 연기 변신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가 출연한 여러 영화들 중에서도 유독 우리가 브래드 렌프로의 대표작하면 항상 <굿바이 마이 프렌드>를 떠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그도 이 영화의 아우라에서 벗어나질 못해 평생 굴레에 갇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는 <슬리퍼스>,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판타스틱 소녀 백서> 등 괜찮은 영화들이 있음에도 이들 영화의 명성에 비하면 그의 출연 비중은 다소 무게감이 없어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관객들은 그를 처음 보았던 <굿바이 마이 프렌드>에서처럼 영원히 에릭과 같은 소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길 원하는 다소 무리한 요구를 바란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도 성장하게 되고, 그러한 요구를 들어주기는 불가능한 일.  

그런 현실의 고통을 잊고자 계속해서 헤로인 중독에 의존하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크다.

 

불우했던 개인사가 있었다고 해도 <굿바이 마이 프렌드>는 역시 브래드 렌프로의 최고의 작품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두 소년이 보여주는 우정은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잊고 지냈을 순수했던 시절의 맑은 영혼간의 교감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를 깨닫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10년 3월, 80년대 많은 인기를 모았던 또 한명의 아역스타 출신 배우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코리 하임. 1986년 <루카스>에 출연했을 당시 15살이었지만 그보다 더 앳되어 보이는 동안이 인상적이었던 그 소년.  

최근 모습을 보았을때 누군지 못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역시 약물 과용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는 <루카스>, <로스트보이> 등으로 주가를 올린 전형적인 80년대 하이틴 스타였다.  

일찍 술과 마약, 파티 등 호화로운 생활에 길들여진 이후 90년대 변화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잊혀져간 아까운 배우.  

특히나 1986년 찰리 쉰, 케리 그린, 위노나 라이더와 함께 나온 <루카스>는 시끄럽게 떠들기만하는 3류 코미디 하이틴물과는 차원이 다른 작품으로 아이들의 성장통 그리고 사랑과 우정, 질투에 대하여 진솔하게 다가가는 수준작이었다.  

우연히 테니스를 치는 전학생 메기에게 반한 루카스, 그러나 메기는 루카스와 친한 축구부 주장 캐피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있다.  

그녀의 환심을 사고자 무리를 해서라도 축구부에 참가하게 되는 루카스. 온갖 멸시와 조롱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려는 그의 모습에 많은 이들은 감동을 받게 된다.  

루카스가 경기 도중 정신을 잃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 이후 여러 가지 사정을 알게 된 메기. 병실에서 나누는 루카스와 메기의 대화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메기 : 무슨 생각해? 
루카스 : 그 녀석들이 다시 돌아올때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 궁금해졌어 
메기 : 누구? 
루카스 : 매미들 
메기 : 나도 잘 모르겠어 
루카스 : 넌 33살이 되겠고... 난 31살하고도 반이 될 거야... 
(매미가 17년을 주기로 태어난다는 의미가 담겨있음) 
메기 : 그래... 
루카스 : 그때까지 우리가 서로 알고 잘 지낼 수 있을까? 
메기 : 모르겠어.. 
루카스 : 난 그러길 원해.. 
메기 : 나두... 
  


어릴 적 친구들이 20대를 거쳐 30대가 되어서도 꾸준히 연락되고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이들이 과연 몇 명이 될까?  

다행이랄까 나같은 경우는 10여년전부터 새롭게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연락되어 지금도 자주 만나게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정이란 것.  

그것은 사랑이든 우정이든 누구에게나 소중한 가치가 될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가치에 대해서 두 사람의 멋진 대사를 통해 의미깊은 장면을 만들어주었는데,  

실제로 코리 하임이 31살하고도 반이 되었을때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짐작컨대 10대후반부터 순탄치 않은 방황을 겪었던 그의 30대의 삶은 이런 대사를 했다는 기억조차 잊었을 만큼 무력해지진 않았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그는 31살보다는 더 살았지만 결국 앞서 소개했던 요절한 두 하이틴 스타와 같은 길을 떠나게 되었다. 

 

<루카스> 역시 앞서 소개한 <아이다호>, <굿바이 마이 프렌드>처럼 친구와의 우정, 인간과 인간과의 교감을 잘 표현해주는 영화이다.  

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의 생활과 삶, 그리고 그들 사이에 겪게 되는 갈등 등을 시끄럽지도, 산만하지도 않고 비교적 잔잔하게 그려낸 점이 더 괜찮은 영화이다.  

여기서도 아이러니한 것이 주연급으로 출연한 코리 하임과 케리 그린은 80년대 이후 크게 빛을 보지 못한 반면  

같이 출연한 신인배우 위노나 라이더와 찰리 신은 90년대에도 꾸준히 자신의 커리어를 높여갔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들 또한 각종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지만. 



아역 시절 큰 인기를 누리다 어느날 갑자기 마약중독으로 젊은 나이에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의 삶을 본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까지 발생되고 있는 연예인 자살률이 부쩍 증가하는 것 그리고 인기 있는 스타들이 마약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 역시 이해가 가능한 일이겠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감춰진 허무함과 외로움, 그리고 인기라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기에 느껴지는 두려움, 연예인의 인기는 마치 하루살이같은 삶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도 꾸준히 많은 어린 학생들이 연예인이 되기를 원한다.  

비록 허무함과 외로움이 자리잡더라도 겉으로 보여지는 그 화려함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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